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바스찬 Nov 24. 2024

"반가워"

Piacere

오늘의 할 일은 단순하지만 태호에게는 중요한 일과였다. 집에서 점심을 차려먹고, 커피와 간식을 곁들여 잠시 여유를 즐겼다. 바닥에 누워 1분 정도 요가를 하며 몸을 풀었고, 그 후에는 근육통으로 고통받기 40분. 그 시간 동안 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태호는 그 고통 속에서도 계속 생각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 책상에 앉아 손가락을 풀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하는 소리는 그의 생각을 따라가며 점점 더 빠르게 이어졌다.


그는 매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튜의 춤, 그의 열정, 그리고 방송에서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분명히 좋은 영화 시나리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태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쓴 글이 공모전 대상을 받고 엄청난 상금과 명성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 생각에 실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건 그냥 시작일 뿐이야. 내가 원하는 건 이제 다가오고 있어.’


태호는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그의 상상 속에서, 공모전에서 우승하는 순간, 상금과 명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떠올리며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더욱 현실처럼 다가오는 듯했다. 태호는 자신의 손끝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나오는 것을 들으며, 점점 더 확신에 차게 되었다. ‘매튜처럼, 나도 나만의 무대를 만들어 갈 수 있어.’


TOMATO_CATCHAP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태호의 닉네임은 "TOMATO_CATCHAP"였다. 그가 왜 이 닉네임을 선택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냥, 토마토와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런 말농담 같은 이름을 지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매튜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다. 그런 모습은 마치 영화 미저리에 나오는 음침한 주인공처럼, 혼자서 계속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적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시나리오에 대한 아이디어와 매튜에 관한 메모를 끊임없이 작성하며, 그렇게 자신의 작품의 뼈대를 하나하나 완성해갔다. "이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일 수 있어..." 태호는 생각하며 글을 썼고, 그렇게 세 시간이 흘렀다.


책상 위에서 볼펜으로 '탁탁탁'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호는 턱을 괴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침대에 눕기로 했다. 머리를 식힐 겸 잠시 동영상을 보려 했다. "이건 정말 재밌는 영상이네..." 태호는 그렇게 영상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 영상은 그를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었고, 어느새 그는 그 자리에 잠이 들어버렸다.


방 안은 깜깜하고 고요했다. 태호는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했을 때, 어느덧 밤 9시가 넘은 시간임을 깨달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곧장 컴퓨터를 켰다. 매튜가 오늘도 방송을 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사이트에 접속했지만, 어쩐 일인지 매튜는 접속하지 않았다. 태호는 실망감과 분노가 뒤섞인 채로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썅!!" 그가 내지른 소리는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밖에서 개가 짖는다.


"왜 접속을 안 해...?" 태호는 심장이 빠르게 뛰며,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사라져가는 걸 느꼈다. 매튜와의 대화에서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획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태호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심호흡을 했다.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태호는 신발을 급히 신고 집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자, 연기가 나며 잠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담배를 한 모금 물고, 태호는 휴대폰을 확인하며 오늘도 휴무일이어서 여유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자 조금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쭉 펴고,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렸다. 그가 침을 거하게 뱉으며 위풍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태호는 그 상태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술과 간식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순간, 그는 마치 오늘 하루에 대해 다시 한 번 리셋을 하듯, 무언가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일단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결심한 듯 했다.


새벽 1시,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매튜는 접속하지 않았다. 태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 앞에 앉아 공책을 꺼내 들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매튜의 이름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적기 시작했다. "매튜... 매튜... 매튜..." 그는 몇 번이고 그 이름을 적으며, 어쩐지 자신이 왜 이렇게 계속 생각하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점점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뭔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매튜가 왜 갑자기 방송을 하지 않는 걸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태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매튜의 춤이나 방송을 보며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너무 자주 봤던지, 이제는 그의 부재가 유난히 신경이 쓰였다.


태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마우스로 메시지 창을 열었다. 손끝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매튜, 괜찮아? 무슨 일 생긴거 아니지?"

"Matteo, tutto bene? Non è successo niente, vero?"


"그냥, 갑자기 너가 생각나고 그러네. 오늘 원래 쉬는 날인건가...?"

"Così, all'improvviso mi sei venuto in mente. Oggi è il tuo giorno libero, giusto...?"


"미안해, 혹시라도 바쁜 날이었는데 내가 방해한거면 사과할게. 미안."

"Scusa, se magari oggi eri impegnato e ti ho disturbato, ti chiedo scusa. Mi dispiace."


그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태호는 다시 한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문득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매튜에게 끌리는지, 혹은 그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매튜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궁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커져갔다. 태호는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그가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바랐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태호는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눈을 비비며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매튜는 접속하지 않았고, 그의 메시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태호는 한숨을 내쉬며, 매튜에 관한 메모를 잠시 끄고는 생각에 잠겼다.


‘부모님한테도 하루만 연락 안 하면 이렇게 집착하지 않았는데…’


그 말이 떠오르자, 태호는 자신이 왜 이렇게 매튜에게 집착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매튜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됐지? 매튜는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그러자 순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했던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매일 연락을 자주 하던 어머니, 친구들에게도 그저 하루 연락을 놓친 것만으로 불안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자신을 보며, 태호는 조금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어머니의 까또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 속에서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가 그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어머니는 늘 내게 따뜻한 말을 해주시고,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셨지…’


그는 옛날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순간들,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애쓰셨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매튜에 대한 집착이 점점 줄어들고, 대신 과거의 따뜻한 기억들이 마음속에 차오르며 태호는 잠시 그 기억 속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점심, 태호는 눈을 힘겹게 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어제의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쭉 펼치며 이불을 정리했다.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진동하며 알림이 떠올랐다. 태호는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화면에 뜬 알림은 [매튜님(이)가 비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였다.


태호는 정신이 번쩍 들며, 곧바로 컴퓨터 책상에 앉아 사이트에 접속했다. 매튜는 접속 중이었지만, 방송은 아직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야.’ 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로 매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잠시 급한 일이 생겨서 시간이 조금 걸렸어."

"Oggi è successo qualcosa di urgente, quindi ci è voluto un po' di tempo."


"그리고 누군가 휴대폰을 훔쳐갔어. 정말 당황스러웠어."

"E inoltre, qualcuno ha rubato il mio telefono. È stato davvero sconvolgente."


"이런 미친... 어떻게 됐어?"

"Accidenti... cosa è successo poi?"


"다행히 다른 공기계가 있어서 그걸로 급하게 개통했어 ㅎㅎ"

"Per fortuna avevo un altro vecchio telefono, così l'ho attivato in fretta. Ahah!"


"오늘 너무 피곤해서 그냥 쉴 거야. 내일 놀러 와주면 재밌게 놀자. 같이 이야기하면서 좋은 시간 보내자"

"Oggi sono troppo stanco, quindi mi riposerò. Se vieni a trovarmi domani, divertiamoci insieme! Passiamo del tempo parlando e godendoci il momento."


태호는 매튜의 채팅을 보고는 아득바득 이를 깨물며 분노를 토해냈다. "개새끼..." 그가 분노를 표출한 이유는 매튜가 자기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 시간이 얼마나 귀한데...’ 태호는 불쾌한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정보를 얻으려고 했지만, 결국 헛된 시간만 이틀을 날린 것 같아서 더욱 화가 났다.


그러던 중, 태호는 갑자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휴대폰을 도난당했다고...? 공기계를 개통했다고?’ 그런 말이 왜 갑자기 들려온 걸까? 그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생각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탈리아의 시간이...?' 태호는 급히 인터넷을 켜서 '이탈리아 시간'을 검색했다. ‘이탈리아 시간은?’ 검색결과, 한국과 이탈리아는 무려 8시간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 지금 한국 시간이 12시 25분이면... 이탈리아는 새벽 4시 25분? 그게 말이 되나?’


참고용 이미지

이 순간, 태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이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 오늘 푹 쉬고 내일 보자"

"Va bene, riposati bene oggi e ci vediamo domani."


태호는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거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건 어쩌면 무례한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어본다고 해서 모든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만약 그 질문이 매튜에게 불편함을 주게 되면 그동안 이어졌던 대화나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태호는 알고 있었다. 의자에 기대면서 담배를 피우고, 기지개를 피며 ‘괜히 물어보고 하다가 더 상황이 안 좋아지거나 싸우면, 그동안 얻은 이야기나 아이디어는 다 쓸모 없게 될지도 몰라.’ 태호는 그 생각에 잠시 멈칫하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매튜와의 관계를 더 깊이 알아가고 싶지만, 지금은 그를 너무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그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서 매튜와 여러 시스템을 통해 이야기들을 듣고, 그 내용을 그대로 활용해야만 더 질 좋은 시나리오와 설정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는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며, 매튜와의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며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들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태호는 매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물어보지 않으면서도, 그가 떠올리는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잘 캐치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런 방식으로 태호는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다음 날, 아침 7시. 어김없이 울어대는 알람 소리가 태호를 깨웠다. 그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휴대폰을 있는 힘껏 내려쳐 알람을 끄고, 다시 침대에 몸을 던지며 잠에 빠져들었다. 피곤함이 몰려오는 순간, 그의 몸은 다시 편안한 휴식 속으로 빠져들었고,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웅--- 웅---- '


휴대폰의 진동이 태호의 단잠을 깨운 것에 너무 짜증이 난 그는,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휴대폰을 확인했다. 화면에 뜬 것은 '회사에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 26통'이라는 충격적인 숫자였다. 태호는 잠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보며 시간이 점심시간이 넘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머릿속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이미 복잡해져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와, 씨!!”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한 채, 하루를 거의 다 보내버린 것 같아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일어날 때부터 불편했던 기분은 더욱 커져갔다. ‘어떻게 이렇게 일을 미룰 수가 있어?’ 생각에 꼬리가 꼬리를 물며 태호는 급하게 일어나 일을 처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태호는 급히 전화를 걸어 목소리에서 피곤함과 죄책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보세요, 아! 네네... 과장님. 네네.. 죄송합니다, 어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가지고 늦잠을 자버렸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사과의 말을 이어갔다. “네네.. 네... 내일... 내일은.. 네네... 네... 죄송합니다, 네... 예... 네네... 네.. 네.. 맞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네... 네네네.... 네, 감사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네네...”


그는 무수히 반복되는 사과와 함께, 어제의 실수와 늦잠에 대한 죄책감을 담아가며 대답했다. 어쩐지 목소리에서 점점 더 피로가 묻어나고 있었고, 그럴수록 마음 속에서 더욱 부담이 커졌다. 전화를 마친 후,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의자에 던졌다. ‘이젠 정말 제대로 일해야지…’ 태호는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태호는 욕조에 물을 담아 놓고 그 속에 몸을 담갔다. 물이 그의 몸을 감싸며 잠시 따뜻함을 전해주고, 태호는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써야 할까?’ 그는 여전히 머릿속에서 공포영화의 구상을 고민하고 있었다. 잔혹한 이야기보다는 소름돋는 이야기,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공포를 그려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어떤 걸 쓸까?’


태호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했다. 사람마다 가진 사연이 다르고, 각자의 경험이 독특하다는 걸 알기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일상’을 알아낸다면 조금 더 이야기의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내면의 공포와 갈등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생각하며 여전히 머릿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공모전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 시한이 다가올수록 태호는 더욱 절박해졌다. ‘내가 이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이 영화가 세상에 나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태호는 자신이 만든 영화를 관객들 앞에서 상영하고, 무대인사까지 하는 상상을 하며 기분을 달랬다. 그런 성공적인 삶을 떠올리며, 그는 욕조에 누워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 이건 나만의 이야기니까.’ 태호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금 그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목욕을 마친 태호는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뭐라도 적어야겠다.’ 그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은, 무조건 글을 써보며 생각을 넓혀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장르도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고, 스토리도 허술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일단 시나리오 작성에 돌입했다. 그러나 첫 번째, 두 번째 씬을 넘어가며, 태호는 다섯 번째 씬에서 막히고 말았다.


‘기승전결을 간단하게 풀어내는 건 가능하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갈지는 너무 어렵다.’


태호는 그런 생각에 빠져들며 손끝이 멈추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마음속에서 점점 더 불안감이 커지며,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몸과 마음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일어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맥주 캔을 열고 자리에 앉아, 다시 생각을 이어가려 했다. ‘이건 그냥, 내가 풀어야 할 문제야.’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계속해서 적어보고, 지우고, 수정하고, 다시 적는 그 반복적인 작업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게 맞는 방향일까?’ 그는 계속해서 이 질문을 반복하며 다섯 시간이 지나갔다. 매번 생각이 꼬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언젠가 뭔가 끊어질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다시 시나리오를 고쳐나갔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었다. 태호는 지쳐버린 몸을 잠시 쉬게 하기 위해 헤드폰을 꽂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클래식 음악은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차츰 가라앉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러 가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휴대폰에서 알림이 떴다.


[매튜님(이)가 방송을 시작하였습니다.]


태호는 그 알림을 보고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그의 방송을 볼 수 있구나,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겠구나.’ 그 순간, 태호는 자신이 어쩌면 그 방송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 생각이 들자, 태호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동시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는 이상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그 미소는 긍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어쩐지 매튜와 다시 대화할 기회가 온 것 같아, 그는 좋은 마음으로 그의 방송에 들어갔다. 방송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매튜에 대해 더 알게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렜다.


매튜는 오늘도 단정한 옷을 입고 화면에 앉아 있었다. 넓은 방, 가구는 거의 없고, 하얀 배경이 수상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이곳은 그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태호는 그 모습을 보며, 잠시 그의 주변 환경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안녕"

"Ciao"


태호는 결국 매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매튜는 화면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무언가를 세팅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방송 준비를 하듯, 조용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노래 소리가 들려오고, 매튜는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가 태호의 메시지를 확인하자 손을 흔들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웃었다. 태호는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매튜의 생김새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덩치가 크지 않지만, 굉장히 다부진 몸매와, 누구나 유럽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한 젠틀맨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의 머리는 자연갈색이고, 눈동자는 까맣지만 빛을 받으면 갈색이 띠는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매튜는 정말 사진 모델처럼 잘생긴 얼굴을 가졌고,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얼굴에 빠져들었다.


‘정말 잘생겼네...’ 태호는 그저 매튜를 보며 자신보다 어린 아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귀여운 동생을 바라보는 것처럼, 태호는 매튜에게서 그런 순수하고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이상했지만, 매튜의 모습은 그에게 점점 더 관심을 끌었다.


"아침은 먹었어?"

"Hai fatto colazione?"


태호는 화면 속 매튜에게 물어봤다. 그 질문에 매튜는 오케이 손가락 제스처를 하며 자신이 먹은 빵을 보여주었다. 태호는 그 모습을 보고 살짝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래도 빵은 너무 적은 거 아니야?”

"Comunque, non è un po' poco solo del pane?"


매튜는 빵 봉투를 들어 보였고, 그 모습을 본 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그 정도면 내일까지 굶어도 배는 부르겠다.”

"Ah, capisco. Con quello sarai sazio fino a domani senza problemi."


 태호는 그 말에 짧은 웃음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 이후에 태호는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 갑자기 질문을 던지자니, ‘혹시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말이 없어진 태호는 그냥 매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저 화면 속 매튜만 지켜보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검은 방 안에서 밝게 빛나는 모니터 속 매튜의 모습만이 태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가 보여주는 무언가가, 그가 속한 세계가 태호에게는 점점 더 궁금하고, 동시에 그에게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태호는 그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고 싶었다. 그 순간, 태호는 자신이 점점 더 매튜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매튜가 채팅을 보냈다.


"너는 어디 사람이야? 너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해."

"Di dove sei? Penso che tu sia davvero una persona speciale."


태호는 순간 멈칫했다. 매튜의 말에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다. ‘한국이 아닌 일본이나 중국, 미국...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뭔가 자신만을 감추는 건 싫었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매튜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기를 바란다면, 태호는 우선 자신부터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손끝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한국"

"Corea"


라고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그 순간, 태호는 어떤 결정을 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열어보이면, 매튜도 마음을 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태호는 그렇게 간단한 답장을 보내며, 매튜의 반응을 기다렸다.


"한국에서 왔구나, 나 한국 사람이랑 대화는 처음이야, 반가워."

"Vieni dalla Corea, capisco. È la prima volta che parlo con una persona coreana, piacere di conoscerti."


순간, 그가 자신에게 반가움을 표현한 것처럼, 태호도 매튜에게 반가웠다는 감정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돌아올 때 나도 반가웠다고...’ 그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keyword
수, 일 연재
이전 02화 "안녕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