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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스찬 Nov 20. 2024

"안녕하세요"

Ciao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오늘 여기 처음 와봤네요."

"Ciao, piacere di conoscerti. Oggi sono venuto qui per la prima volta."


방송에는 오직 노래 소리만이 은은하게 흘러나왔고, 마이크는 침묵을 지켰다. 태호의 인사글이 채팅창에 조용히 올라간 뒤 약 2분이 지나자, 매튜의 영어 인사가 화면을 가로질렀다. 태호는 그의 인사를 받아들이며, 그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잠시 망설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낯설지만 묘한 온기가 감돌았고, 태호는 한 순간의 침묵이 끝없이 이어질까 두려워졌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단어들이 빙빙 돌았지만, 그 어느 것도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매튜의 인사에 답하는 것은 단순한 한마디의 말이 아닌, 두 사람의 첫 연결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기에.


그런데, 매튜는 "BRB (Be Right Back)"라는 짧은 문구만 남긴 채,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방송을 꺼버렸다. 태호는 화면 앞에서 순간 얼어붙었다. 정말, 저렇게 갑작스럽게 끝을 맺을 수도 있는 걸까? 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꺼진 방송 창은 여전히 컴퓨터 화면 한구석에 박혀 있었고, 그 존재감이 묘하게 무거웠다. 마치 무언가 잔잔한 파장을 남기고 떠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키보드에서 타닥타닥 울리던 소리가 멈추자, 방 안의 고요는 더 선명해졌다.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희미한 바람 소리조차 이 고요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느껴졌다. 태호는 무언가를 하려던 손길을 멈추고, 잠시 눈앞의 화면을 바라보다가 매튜의 채널을 구독하고 "좋아요"를 눌렀다.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그와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컴퓨터 전원을 끄고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태호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도 그의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왔다. 이윽고 그는 눈을 감았고, 빛과 화면의 잔상이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그 밤, 태호는 꿈에서조차 매튜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Be Right Back." 하지만 그는 돌아올까? 아니면 그저 짧은 작별이었을까? 꿈결에서조차 그는 그 질문에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태호는 7시에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떴다. 두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한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더 무거워진 듯했고, 간밤에 채 3시간도 못 잔 탓에 온몸에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 순간, 알림이 화면에 떠올랐다.
[매튜님(이)가 친구 요청을 보냈습니다.]


순간, 태호는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정말 매튜가? 어젯밤 그가 방송을 갑자기 종료한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의아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 속에서 피어올랐다. 왜일까? 그는 분명 낯선 인터넷 방송인일 뿐인데. 하지만 그 알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연결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태호는 짧은 시간 동안 알림 창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기분은 단순히 호기심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일까?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대답을 찾기 전에 정신을 차렸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이러다 늦겠네..." 태호는 휴대폰을 서둘러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향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매튜라는 이름이 맴돌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호기심에 갑자기 빠져든 탓일까. 태호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도 계속 멍한 상태였다. 머릿속은 매튜의 친구 요청 알림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스스로도 답답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도 그의 시선은 허공을 떠돌았다. 주위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들려오는 소음이 태호에게는 마치 흐릿한 배경음처럼 느껴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지만, 매튜의 요청 화면을 다시 확인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저 스크린을 켰다 껐다 하며 시간만 흘려보냈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흐릿한 얼굴을 보며 태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지... 그냥 한 번의 우연일 뿐인데.'


하지만 그 의문은 곧 다른 감정으로 덮였다. 마치 커다란 퍼즐 조각이 머릿속에 던져진 것 같았다. 매튜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왜 자신에게 친구 요청을 보냈는지 그 모든 게 답이 없는 미스터리처럼 느껴졌다. 멍한 상태로 이어진 출근길은 태호에게 유난히 길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버스가 멈출 때마다 정신을 차리려 애썼지만, 머릿속 매듭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만이 그의 머리를 맴돌았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가득한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상자들과, 그것을 포장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은 긴장된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한복판에서 태호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컴퓨터 앞에 선 그는 화면을 바라보며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굳어 있었다. 눈 밑에는 깊게 내려온 다크서클이 그의 상태를 말해주는 듯했고, 살짝 벌린 입과 초점 없는 시선이 그를 더욱 지쳐 보이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연이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태호 씨, 오늘 무슨 일 있어요?"


그 말은 마치 얼어붙은 태호를 깨우는 소리 같았다. 태호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움찔했다. 어쩐지 지연의 물음은 단순한 관심 이상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태호는 이를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기며 급히 대답했다.


"아... 네, 괜찮아요. 그냥... 화장실 가서 세수 좀 하고 올게요."


그러고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컴퓨터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고, 지연은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태호가 문을 닫고 사라진 뒤에도 그의 자리는 여전히 공허하게 느껴졌다.


화장실로 들어간 태호는 찬물을 가득 받아 손바닥에 끼얹고는 거칠게 얼굴을 문질렀다. 찬물이 얼굴을 적시는 순간, 어젯밤부터 이어지던 묘한 감정들이 잠시나마 흐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물기를 닦고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그는 여전히 답답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태호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한숨을 길게 내쉰 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알림 목록들을 스크롤하던 그는 곧 익숙한 알림 창에 시선이 멈췄다. 


[매튜님(이)가 친구 요청을 보냈습니다.]


그 문구가 그의 눈앞에 선명히 떠올랐다. 어젯밤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그 알림. 태호는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손가락은 화면 위에 멈춰 있었지만, '수락'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그때였다. 회사 건너편에서 들려오던 컨베이어 벨트의 단조로운 소리가 멈추고, 교대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기계의 윙윙거리던 소음이 사라지자, 공장은 일순간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태호는 그 흐름에 섞이지 않았다. 그는 화장실 앞에 그대로 서서 휴대폰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태호는 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


‘대체 왜 이 친구 요청이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걸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길래?’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마치 매튜의 알림이 그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던져놓고 떠나버린 듯,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왜 이런 생각들이 자꾸 드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한 인터넷 방송인의 갑작스러운 친구 요청일 뿐인데, 왜 이토록 자신을 흔드는지.


'하...' 태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화면을 껐다. 하지만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 순간에도 그 알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건 분명 그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이 감정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스스로를 답답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휴대폰을 쥔 손을 꽉 움켜쥐고, 여전히 복잡한 감정에 얽매인 채로 천천히 화장실을 나섰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러 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태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묵직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태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온종일 쌓인 피로를 씻어내고, 타올로 머리를 휘감은 채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캔을 따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시원한 탄산 냄새가 그를 잠시나마 편안하게 했다. 컴퓨터를 켠 태호는 책상 위에 맥주를 내려두고 시나리오 작업 파일을 열었다. 화면 가득 펼쳐진 글자들 사이를 마우스로 넘기며, 그는 묵직한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붙잡으려는 듯, 손은 키보드 위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방 안은 키보드 소리로 가득 찼다. 그 리듬감 있는 소리는 태호가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글을 쓰며 어느새 조금 전의 피곤함도, 답답했던 기분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컴퓨터 화면 한쪽에서 알림이 튀어나왔다.


[매튜님(이)가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하세요!]


태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화면을 응시하던 그의 시선이 알림 창에 고정되었다. 매튜의 이름. 매튜의 방송. 그 짧은 문구가 태호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했다. 


'다시 시작했어?'


어젯밤 갑작스럽게 꺼진 방송, 그리고 오늘 아침 친구 요청. 모든 게 태호의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얽혔다. 맥주 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그는 잠시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클릭 한 번이면 방송에 들어갈 수 있었다. 클릭 한 번이면, 어쩌면 그가 그토록 신경 쓰던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도 있었다. 태호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마우스를 잡았다. 화면에 떠 있는 알림 창 위로 커서가 이동했다. 그의 심장은 어느새 조금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태호는 마우스를 움켜쥔 채 잠시 숨을 고르다가, 결국 결심한 듯 클릭했다. 화면이 전환되며 매튜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혹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태호는 화면 너머로 펼쳐질 매튜의 세계를 마주하기 위해, 숨을 죽였다.


이번에는 확실히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태호는 방송 화면 속 매튜를 바라보며 인사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매튜의 팔로 향했다. 화면 한쪽, 매튜가 팔을 움직이는 순간 그곳에 새빨갛게 부어오른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태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건 뭐지? 어디 부딪혔나...? 아니면 누가 때린 건가?'


상처의 모양은 단순한 찰과상 같지는 않았다. 태호의 마음속에는 이상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어젯밤부터 이어지던 묘한 감정들이 다시 한 번 그를 움켜쥐었다. 결국 참지 못한 태호는 메신저를 열었다.


"팔에 무슨 일 있어요? 누가 때렸나요, 가다가 넘어지셨나요?"

"Cosa è successo al tuo braccio? Qualcuno ti ha colpito, o sei caduto?"


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화면 속 매튜는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고, 대신 배경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만 화면을 채웠다. 매튜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어딘가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태호는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으세요?"

"Stai bene?"


그러나 이번에도 매튜는 읽지 않았다. 화면 속 그는 그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노래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그의 눈빛은 어딘가 멍해 보였다. 태호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의 가슴이 두근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태호는 답답함이 짜증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매튜가 그의 메시지를 계속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 뭐 하는 사람이지? 어제는 갑자기 방송을 꺼버리더니, 오늘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는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 충전했던 20만 원이 떠올랐다. 그는 키보드를 두드려 메시지 창과 함께 후원 창을 열었다. 짧고 간결한 메시지와 함께 돈을 쏘기 시작했다.


[10개] “괜찮으세요? 저한테 얘기해도 돼요.” / "Va tutto bene? Puoi parlarmene se vuoi."

[10개] “팔 상처는 왜 그러신 거죠?” / "Perché hai una ferita al braccio?"

[10개] “무슨 일 있으시면 꼭 말하세요.” / "Se c'è qualcosa che non va, per favore, parlane con me."


하나둘 메시지를 남겼지만, 매튜는 여전히 읽지 않았다. 화면 속 매튜는 그저 노래가 흐르는 배경에서 무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태호는 점점 더 답답하고 기분이 나빠졌다. "대체 뭐가 문제야?!" 그는 속으로 소리쳤다. 결국, 태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래, 신경 끄자. 뭐 하러 이런 데 에너지를 쓰고 있어. 이런 아이디어도 별로네."


방송 화면을 꺼버린 태호는 억지로 다른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는 컴퓨터에 펼쳐진 시나리오 문서를 다시 열어 아이디어를 정리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그에게 나름의 안정감을 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약 30분 정도 흐른 것 같았다. 그때, 갑작스러운 알림 소리가 울렸다.


[매튜님(이)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태호는 스스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쓰며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집중은 이미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눈은 자꾸만 메신저 창을 힐끔힐끔 보게 되었고, 머릿속은 온통 매튜의 메시지로 가득 찼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키보드를 힘주어 내리쳤다. 


"젠장,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태호는 숨을 고르며 메신저 창을 열었다. 화면에 떠오른 매튜의 메시지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답장 못해서 죄송해요, 팔은 그냥 긁힌거에요"

"Scusami per non aver risposto. Il braccio è solo un graffio."


짧고 담백한 답장이었지만, 태호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매튜의 말투는 평범했지만, 태호는 어딘가 그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를 느꼈다. 메시지를 읽는 순간에도 묘한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별거 아니라고? 그런데 왜 어제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지?’ 태호는 다시금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더는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일단 간단히 답장을 보내기로 했다.


"다행이에요, 저는 누가 당신을 때리거나 그런 줄 알고 놀라서 물어본 거예요."

"Meno male, mi sono preoccupato e ho chiesto perché pensavo che qualcuno ti avesse colpito o qualcosa del genere."


"저는 댄서예요. 원래 댄서에게는 몸 어디에나 상처가 있죠. 요즘 굉장히 힘든 자세들을 연습하고 있거든요."

"Sono un ballerino. È normale per un ballerino avere ferite ovunque sul corpo. Ultimamente sto praticando delle posizioni davvero difficili."


"아, 그렇군요. 정말 멋지네요. 그런데 어제도 사실 방송을 봤는데, 갑자기 급하게 끄셔서 무슨 일 있으셨나 걱정했어요."

"Ah, capisco. Davvero impressionante. Però ieri ho visto la tua trasmissione e l'hai interrotta all'improvviso, quindi mi sono preoccupato che fosse successo qualcosa."


"화장실 갔다가 밥 먹었어요. 여기는 방송을 그냥 켜놓고 나가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Sono andato in bagno e poi ho mangiato. Qui non posso lasciare la trasmissione accesa mentre esco. Per questo ci è voluto un po' di tempo."


"그랬군요. 걱정했는데 별일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Capisco. Mi ero preoccupato, ma sono sollevato che non sia stato niente di grave."


"맞아요. 몸도 마음도 많이 단련해야 하죠. 그런데 저는 춤을 출 때가 가장 행복해요."

"È vero. Bisogna allenare molto sia il corpo che la mente. Ma io sono più felice quando ballo."


매튜의 메시지에서 느껴지는 그의 열정은 태호의 가슴속에 묘한 울림을 남겼다. 그 순간, 태호는 자신이 왜 매튜에게 이토록 끌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매튜의 진지함과 그가 가진 꿈의 무게가 태호의 내면에도 어떤 불씨를 던진 것이다.


'이 녀석... 생각보다 열정은 있네?' 태호는 화면 속 매튜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궁금증이 스쳤다. '그렇다면, 그가 어떤 춤을 출지 한 번 볼까?' 그는 매튜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진지함이 단순히 말뿐인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그의 춤도 그만큼 진지하고 독특하지 않을까? 태호는 곧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럼, 춤 한 번만 춰주실래요? 얼마에요?"

"Allora, potresti ballare una volta per me? Quanto costa?"


보내고 나서 태호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며 어떤 반응이 올지 기다렸다. 매튜가 곧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냥 보여드릴게요. 안 그래도 심심했거든요."

"Te lo mostrerò semplicemente. Ero annoiato comunque."


매튜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음악을 고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곧 배경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매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메라가 그의 전신을 비추도록 위치를 조정하는 모습이 태호의 기대감을 높였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매튜는 몸을 자연스럽게 흔들며 춤을 시작했다. 그의 춤은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특정 안무를 복사해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만의 감각과 스타일이 녹아든 춤이었다. 하지만 그 춤이 점점 더 관능적으로 변해가자, 태호는 화면 앞에서 순간 멍해졌다.


매튜의 움직임은 대담하면서도 자유로웠다. 그의 춤은 단순히 기술적인 동작을 넘어서, 감정과 에너지가 섞인 퍼포먼스처럼 보였다. 그 안에는 섹슈얼한 분위기와 함께 독특한 매력이 담겨 있었다. 태호는 화면 속 그의 몸짓에 어딘가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댄서 치고는... 잘 추는 건가? 뭔가 좀 과한 것 같기도 하고...' 태호는 혼잣말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매튜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보면서.


춤을 추는 동안 매튜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고, 마치 세상 그 무엇보다 춤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몸은 피곤함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춤의 리듬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었다. 매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춤을 췄다. 마치 그 순간이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10분 동안 이어진 춤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짓은 때로는 강렬했고, 때로는 섬세했으며, 관능적이면서도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매튜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 순간, 태호는 마치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들어 박수를 치고 있었다. 혼자 있는 방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는 어색했지만,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다.


"이 녀석... 정말 춤을 사랑하는구나."


태호는 혼잣말을 하며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매튜의 열정은 춤을 통해 화면 너머로 전달되었고, 그 강렬함과 진솔함이 태호를 놀라게 했다. 그 순간, 태호는 매튜가 단순히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라, 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면 속에서 매튜가 숨을 고르며 가볍게 미소를 짓자, 태호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했어요. 굉장히 열정적이네요."

"Sei stato davvero incredibile. È stato molto passionale."


"감사해요. 저는 춤 출 때가 정말 좋아요. 그리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 같아요."

"Grazie. Amo davvero ballare. E tu sembri una persona molto gentile."


매튜의 메시지가 화면에 뜨는 순간, 태호는 잠시 멍해졌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멈춰 섰다. '좋은 사람?' 그는 매튜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속뜻을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그의 춤에 감탄해 몇 마디 말을 건넸을 뿐인데, 왜 이런 말을 듣는 걸까? 태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얼버무리듯 답장을 썼다.


"아녜요, 정말로 당신의 춤이 멋졌어요."

"No, davvero, la tua danza è stata fantastica."


그 답장을 보낸 뒤에도 그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무거움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매튜는 카메라 너머로 환하게 웃으며 태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사진이나 당신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Per caso, c'è un modo per avere una tua foto o per poterti vedere?"


그 말은 태호의 심장을 세차게 뛰게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사진? 나를? 왜?' 그는 입술을 깨물며 화면을 바라봤다. 자신의 얼굴을 인터넷에 공유하는 일은 그에게 있어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특별히 잘생기지도 않았고, 그렇게 내세울 만한 외모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 저는 그런 거 잘 못해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사진 같은 건 별로예요."

"Mh... non sono bravo in queste cose. Sono solo una persona normale. Non mi piacciono molto le foto."


"괜찮아요. 부담 느끼지 마세요. 그냥 궁금했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일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Va bene, non sentirti sotto pressione. Ero solo curioso di sapere che tipo di persona sei e che espressioni fai."


태호는 매튜의 요청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얼굴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이 이렇게까지 부담스러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 불안했다. '혹시 그 사람이 방송인이라도 사실 해커라면...? 아니면,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태호의 머릿속은 온갖 염려로 가득 차 올랐다. 자신의 얼굴이 공개되는 순간, 그것을 악용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만약 내 얼굴을 보고 무언가 나쁜 일에 휘말리면...?'


그런 상상이 스쳐 지나가며 태호는 결국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죄송해요, 지금은 조금 힘들고 다음에 말해드릴게요"

"Mi dispiace, al momento è un po' difficile, te ne parlerò un'altra volta."


잠시 후, 매튜의 답장이 도착했다.


"괜찮아요, 그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Va bene, è una tua scelta."


그 답을 보자, 태호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매튜는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매튜는 웃으면서 카메라를 향해 다시 미소를 지었고, 태호는 그의 얼굴에서 뭔가 변하지 않은 여유를 느꼈다. 그러면서 매튜는 계속해서 춤과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멋진 춤을 추더니,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조금 민망하게도, 매튜는 키스를 하거나 윗옷을 벗어 자신의 근육을 드러내는 등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태호는 그 장면들을 보며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춤과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감을 표현하는 방식에 묘하게 끌리기도 했다. 그는 매튜의 행동이 단순히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호는 그의 자유롭고 대담한 모습에서 새로운 감정을 느꼈고, 그가 왜 이렇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유난히 더 시끄럽게 울린 알람 소리에 태호는 번쩍 눈을 떴다. 순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잠시 헷갈리기도 했지만, 고요한 아침의 분위기 속에서 그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는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휴무일이구나.’ 생각이 들자, 다시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몸을 늘어뜨렸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었고, 그 빛이 방 안을 부드럽게 채우고 있었다.


태호는 잠시 그 햇살을 느끼고 나서 천천히 일어났다. 창문을 열고, 침대 정리를 하며 몸을 풀었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의 긴장을 조금씩 풀어가던 그는 컴퓨터를 켰다. 오늘은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시나리오 아이디어 목록을 열고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매그니토 *가명 (23세) 이탈리아 - 춤과 열정. 방송을 자신의 무대로 이용함.


그는 매튜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그는 왜 춤을 시작했을까?" (타닥 타닥...)

태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탈리아에서 자라면서 전통적인 춤을 배웠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길거리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춤을 추기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의 가정환경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지도… 어려운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춤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려 했을 수도 있겠군." (타닥 타닥...)


그는 또 다른 추측을 이어갔다. "그에게 방송은 단순한 직업이나 취미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과 꿈을 펼칠 수 있는 하나의 창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방송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춤을 출 때와 비슷한 게 아닐까? 자유롭게,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그 감각." (타닥 타닥...)


태호는 매튜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삶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그는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을까? 이탈리아에서 춤을 배우고, 방송을 시작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들, 혹은 그가 겪은 순간적인 기회들... 그런 것들이 그를 오늘의 매그니토로 만들었겠지." (타닥 타닥...)


매그니토 *가명 (23세) 이탈리아 - 춤과 열정. 방송을 자신의 무대로 이용함. - 이탈리안의 열정? - 가정 환경... - 자신을 알릴 창구 - 오늘 점심은 스파게티

글을 쓰면서 태호는 점점 더 매튜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다. 춤을 사랑하는 그에게는 무엇이 있었을까, 왜 그는 그렇게 열정을 다해 춤을 추고 방송을 하는 걸까? 매튜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태호는 마치 그를 이해하려는 욕망이 생겨났다. 그 궁금증은 점점 더 강해졌고, 자신도 모르게 매튜의 이야기를 더 깊이 파고들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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