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구가 불러온 대테러
크고 격앙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자 마자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가쁘다.
아무래도 지금 위험한 상황임을 내 몸이 감지한 것 같다.
아침 회의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부장으로부터의 질문에 그녀가 대답한다.
대답이 요점에서 멀어진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점점 미궁에 빠진다.
그러다가 그녀가 화를 낸다.
알고 싶었던 것은 단답형이었을뿐... 서술형이 아니었는데...
그녀는 왜 길고 길게 감아 돌아 이야기를 했을까?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왜 그것을 저격이라고 느꼈을까?
그녀의 말대로 집단이 개인을 공격했을까?
조직 내에 문제가 생겼고, 함께 해결해 나가기 위해 사건의 정황을 알고 싶어서 질문한 것인데
왜 그녀는 그것을 공격이라고 생각했을까?
같은 시간을 공유했는데 그녀의 기억과 나의 기억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왜곡이 되어있는 것일까?
그녀가 부장으로 재임하던 그 시절.
갑자기 2년전의 내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잔뜩 움추린 몸, 귀에 꼽힌 이어폰,
누구의 이야기도 접근도 거부하겠다는 작은 몸부림.
매일 혼자 거울을 보고 연습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겠다 하고...
이런 공격이 있을 때 찌그러들지 말고 차갑고 당당하게 대응해야겠다 하고...
이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난 당찬 사람이 아님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그 시간을 버티고 살아가려면 그 방법 밖에는 없었다.
나를 방어하려는 최소한의 액션, 그러나 내 깜냥의 최대한의 준비.
그녀에게는 보잘것 없이 미미한 존재일 뿐인 나였겠지만 개미만한 목소리라도 내고 싶었던 저항감이었겠지.
그러다가 어느날 그녀가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로 이야기를 걸어며 다가오면 나름 뿌듯해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아이러니한 감정. 이미 감정의 노예가 되어있었던 내 모습.
뒤돌아 생각해보면 역겨운 감정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마치 내가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었던...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느꼈던 감정이 있다.
갑자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을 중언부언함.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방식으로 말하고 있지?
허황되고 유려하나 요점이 없는 내 말들의 조각들. 낯설고 싫었던 그 표현들. 그러나 벗어나지 못하고 맴맴 도는 말속에 내가 갖혀버리고 마는 패턴.
갑작스레 생겨난 내 대화 방식이 너무나 어색하고 낯설고 괴이하게 느껴졌던 그 감정을...
그녀의 말을 제3자의 귀로 들어보니 알맹이 없이 주변만 맴맴돌고, 맥락에서 벗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말.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말이 나에게 투사가 되어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왜곡이라는 강력한 독성물질을 갖게 되었을까?
부장을 향하여 당신이 최고 권력자냐며... 착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서 느껴졌다.
그녀 자신이 최고권력자가 되고 싶다고. 내가 그 자리에 있고 싶다고.
최고권력자가 되어 마음껏 휘두르고 싶은데 당신이 있어 방해가 되니 꺼져달라고...
최고권력자가 되지 못해 약이 올라 미칠것 같다고 하는 그녀의 속마음을.
인정욕구, 낮은 자존감이 불러온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오늘 다시 한번 느낀다.
남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여버리는 초민감자인 나는
그녀와 같은 성향의 사람과는 절대 같이 할 수 없음을, 같이 해서도 안됨을.
따라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