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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Apr 26. 2022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의 자아 찾기

 “엄마는 꿈이 뭐야?” 어느 날 갑자기 딸이 물었다.      


꿈??? 내가 꿈을 꾸어 본 적이 있던가. 학창 시절 대학 입시를 위해서 고민은 해봤지만 꿈이라는게 현실에 있기나 했던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직장과 집만 들락거리며 사는 나에게, 5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꿈이라고? 나에게 꿈이라는게 있긴 했었나? 딸의 질문은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      


  직장 잘 다니면서 퇴직할 때까지 조신하게 버티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던 평온했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의 취미생활과 특기, 최근 관심사 등을 되짚어 보며 무엇을 하면 좋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었으나 좀처럼 실력이 늘지도 않았고, 종이에 붓을 댈 용기도 좀체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글자들의 배치와 글씨의 굵기 조절, 심지어 글씨체조차 마음대로 써지지 않았고, 같이 배우는 사람들이 작품을 멋지게 만들어 내는 것을 부러워만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막 그만 둔 참이었다.      


  그것 외에도 뜨개질, 프랑스 자수, 요리 등등 워낙 다양한 데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해보았으나 어느 것에도 소질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단순히 흥미로만 지속하기에는 뒷심과 실력이 부족했고, 머지않아 시들해진 경험들이 계속됐다.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지 하며 맘 잡고 있었는데 다시 고민이라니.


  독수리는 수명이 70세 정도라는데 40살쯤 되면 부리와 발톱이 굽어져 더 이상 사냥을 하기 어렵게 되는데, 이때 독수리는 큰 결단을 한다고 한다. 그냥 그대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던지, 아무도 없는 절벽에 올라가 자신의 부리와 발톱을 뽑아 새로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남은 30년가량을 더 살든지.      


  독수리도 제2의 인생을 위해 고민을 하고 고통을 감내한다는데, 하물며 인간인 나도 이 시점에서는 제2의 인생을 위한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생각과 함께 꿈에 대한 고민에 더욱 깊이 빠지게 되었다.   

   

  다니고 있던 교회에서 주보의 한 면에 한 사람씩 자신의 일상을 글로 담아내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써야 하니 괴롭기 그지없었다. 이런 걸 왜 하느냐며 투덜댔지만, 목사님의 지령이라 대놓고 거스르진 못했다. 혼자 머리를 굴리고 쥐어짜면서 어째 저째 글을 쓰게 되었다.      


  소소한 일상의 글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도 없었는데도 읽고 난 분들이 ‘글이 너무 재미있다, 글을 읽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라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다. 왠지 나에게도 글을 쓴다는 재능이 조금은 숨어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작은 착각(?)이 시작되었다. 글 쓰는 시간을 통해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되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물론 글을 쓰는 것에는 항상 부침(浮沈)이 있다. 어떤 날은 엉망진창, 문맥도 맞지 많을 뿐만 아니라 머릿속이 뒤죽박죽인데 정리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글자씩 써가는데 나름 보람과 희열을 느꼈고, 글 쓰는 것에서 나름의 재미를 맛보았다. 그렇다면 내 제2의 인생은 글 쓰는 것으로 채워보면 어떨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꿈이라는 목표에 발을 내딛기로 했다. 실현 가능성의 여부는 아직은 거론할 단계가 아니니 우선 즐기는 것으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점 에세이 코너를 들락거렸고, 책을 사들였다. 작가마다의 개성있는 표현에 감동하고, 보석을 발견하기라도 하듯 멋진 표현들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글쓰기 강연을 찾아보게 되었고, 김신회 작가님이 개설한 강의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의 마감이 된다면> 제목 자체도 설레는데 강의를 처음 듣게 된 날은 너무 신나고 벅차고 떨려서 얼굴이 달아올랐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내가 글쓰기 강의를 듣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 신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숙제를 제출하고 나서 현실에 직면했다. 10명도 채 되지 않는 수강생 중에서도 글 잘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글 잘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건가? 너무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의기소침해졌다. 꿈은 함부로 꾸는 것이 아닌가?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제대로 된 실력을 모르고 오만방자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가족들은 나를 향해 약간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지만 그래도 응원해준다. 기분이 다운되어 있거나 우울해 보이면 딸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 차라리 글을 써 봐. 우울해하거나 속상해하지 말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등을 토닥토닥하며 살짝 밀어주는 기분이 들어 꽤 힘이 된다.     


  “당신이 쓴 글을 읽어보고 싶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라는 남편에게는 차마 글을 보여줄 수가 없다. 남편은 워낙 날카롭고 냉정한 사람이기에 날카로운 칼질과 같은 날 것의 비평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몰래몰래 읽어보는 눈치다. 그 사람이 절대 알 리가 없는데 가끔 글 속에만 뱉어 두었던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대화 소재로 꺼내는 것을 보면.     

 

  지금은 이렇게 지지부진하지만, 글쓰는 자체가 재미있는 걸 어쩌겠어. 쓰다 보면 언젠가는 실력이 늘겠지. 괜찮아지겠지. 언제까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지는 않겠지. 이러면서 조금은 뻔뻔하게, 조금은 현실을 회피하는 중이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상상해보며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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