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지인 J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아기를 낳을까요? 말까요?”
그녀는 결혼 4년 차인데 아직 아기는 없다. 때가 되었고 결혼했으니 아기를 낳으라는 사회의 짐을 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할 때 그때 낳겠다며 여태 임신을 유예해왔던 터였다.
J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나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잘 생각해서 대답해야 한다. 섣불리 아무 말이나 쏟아내면 안된다.’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이런 질문 자체가 웃기는 질문이 아니냐,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고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과거 노동 사회에서는 자식이 생산재의 몫을 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철저히 소비재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집안에 노동력으로 기여하기를 바랄 수 없고, 늙은 부모 봉양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니 말이다. 오로지 잘 먹이고 잘 키워 사회에 내어놓으면 제 밥벌이하며 잘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며 만족하고 안심하는 그런 시대이다.
나 역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하거나, 시시각각 상황에 맞춰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럴진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손해 보는 장사 안 하겠다며 세상 이치에 빠삭하고 영악하게 살아가려고 아득바득하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서는 평상시의 계산법과는 다른 셈을 적용하게 된다. 밑 빠진 독처럼 끝도 없이 돈과 품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온갖 좋다는 것을 갖다 쏟아 부어대니 유전자의 농간은 당췌 이해할 수 없다. 젊음을 저당 잡힌 채무자가 됨에도 불구하고 어마무시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희안할 뿐이다.
난 제대로 사리분간 하지 못하던 20대에 임신을 했다. 부모가 되는 교육 따위는 받지도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결혼했어도 젊은 나이를 좀 더 즐기다가 임신하라고 조언했지만, 결혼 3개월 만에 아기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될 준비가 덜 된, 덜 영근 인간이었는데 덜컥 엄마가 되었다. 아기를 출산할 때도 영 어설펐다. 책도 보고, 주변의 이야기를 잘 새겨들었음에도 아래로 힘을 주라는데 맥없이 눈에 힘을 주어 눈의 실핏줄이 다 터졌었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키우는데 우왕좌왕했다. 아기가 왜 우는지를 몰라서 달래다가 같이 우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너무 힘들었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는 모든 과정이 신비로웠다.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 꿈만 같았다. 아기가 매일매일 조금씩 커 가는게 눈에 보여 아까웠다. 조그맣고 귀여운 아기로 오래오래 있어 주었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도 있었다.
그러다 슬슬 말썽부리고 반항하는 사춘기가 되었을 때에는 너도 죽고 나도 죽자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저버리고 싶었다. 누가 부모가 되는 길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조건 결혼했으니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세상이, 주변이, 부모가 강요했고, 나 역시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부모가 되는 고행을 부부가 함께 의지하고, 손을 맞잡으면 좋았으련만, 또 그 와중에 둘 사이에 합의가 되지 않아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며 싸우기 일쑤였다. 나의 육아는 그렇게 엉망진창이었고, 힘에 부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시절들이 다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지독히 자기중심적이어서 나쁜 기억은 싹 털어내고 기쁘고 행복했던 것만 남긴다더니 정말 그런 것일까? 덜썩 커버린 아이가 아주 소소한 귀여운(?) 짓만 해도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사춘기 때 탈탈 털린 멘탈 덕분이겠지. 그 녀석은 나의 기대를 조금도 남김없이 털어내어 버렸으니까.
그래서인지 이제 우리는 사이가 아주 좋다. 작은 것에도 칭찬하고 기뻐할 줄 아는 엄마가 되었고, 그 녀석은 작은 일을 하고도 당당하게 칭찬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이런 고행을 겪었음에도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왕 세상에 태어난 거 남들 하는 경험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이거 내 진심이 맞을까? 그렇게 호되게 당했는데도?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내 인생이 온통 행복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사실이 아니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분명 시야가 넓어졌고, 이해심이 깊어졌다. 사람을 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더 이상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쟁이도, 다른 사람을 틀 안에 가두고자 하는 통제광도 아니다.
나도, 아이도 각자 자신의 세상에 뿌리를 제대로 내린 독립된 존재로서 가치있게 살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바른 사고 방식을 가진 J가 따뜻하고 강인한 마음으로 그녀의 아이를 키워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구 위에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리는 감격스러운 순간에 동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