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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May 09. 2022

조선왕조 금쪽이 실록을 시작하며

프롤로그

"내일 우리 딸 역사 시험이 있어. 야, 근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나. 물어볼 때마다 민망해 죽겠어!"

"엄마는 이것도 모르냐면서 짜증을 내잖아. 나쁜 노므스키!"


각 학교의 시험 시즌 때면 자주 오는 친구들의 근황 문자였다.


학창 시절로부터 멀어진 엄마들 공식적으로 '역사 시험 광복절'을 맞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답을 척척 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 엄마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에 답을 못하는 순간 자신의 미래가 없어지는 것 마냥 은근히 당혹스럽다. 


"저 왕 다음에는 누가 왕이 되는데요?"

"으악,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요?"


시험 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수시로 팩트 체크를 해오기 때문에 식은땀은 자주 주르륵 흐른다.

사실 아이들은 어른이라면 다 알 거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대참사인데 역사 교사인 나 역시 종이 찢긴 '막대그래프 수치'와 '이온 어쩌고 식'을 아이가 들고 올 때면 손사래를 치는 게 현실이기에 백 번 이해가 된다.  벼락치기로 밀어 넣었던 지식들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망각의 쓰레기장에서 재가 된 지 오래가 아니던가!


2021년 7월 1일 여름방학 때였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보며 낮술을 한 잔 하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교사와 엄마로서 이십 년 가까이 열심히 살기는 했지만 무언가 고여있는 느낌이 밀려왔다. '기쁨이'가 춤을 추는 밝은 빛 삶을 살기 위해 좋게 좋게 살아온 일상이 갑자기 흔들리며 푸르 둥둥 '슬픔이'가 자꾸만 고개를 드는 날이었다. 우물쭈물 살다가 또다시 10년이 후루룩 지나갈까 봐 겁이 났다. 그 순간 줄리의 대사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My blog is going to change the world!"


무작정 영화 속 줄리를 따라 블로그를 시작해버렸다. 내 삶을 조금씩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밑에 달린 하트 하나에 바보같이 설레버렸다. 그러다가 내 본캐인 역사 선생님 기질이 글에 슬슬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고, 쓸 때마다 신이 났다. 그래서 매일매일 무엇을 쓸까 고민을 하며 지내다 보니 훨씬 더 바빠지고, 일상이 흥미로워지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두 달쯤 지난 9월 1일, 반갑고 신기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선생님, 역사 인물 블로그 너무 재미있어요. 한국사 편지 함께 읽으면서 관련 내용  올려주시면 함께 공유하고, 다른 분들도 함께 볼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 글 너무 재미있어요."


이 댓글이 인연이 되어 아이와 함께 역사책도 읽고, 관련 글도 올리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진짜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시기였던 것 같다.


"아이에게 이 글 공유했어요."

"저 혼자 고민하던 부분이었는데 우와, 진짜 도움이 많이 되었네요."


<삼국유사> 속 만파식적과 처용의 이야기로 코로나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바람 궁수 쿠키로 고려 김윤후 장군 썰을 풀면서 너무도 신이 났던 시간이었다.


2022년 4월

 나에게 처음 손을 내밀었던 '맘 독서 클럽' 이웃님에게서 강의 콜라보 제안이 왔다.


"엄마들이 역사 수업을 너무도 원하셔요. 이번에는 <조선왕조실록> 읽기를 계획 중인데 어떠세요?"


갑자기 급 끓어오르는 열망, 욕망, 희망...

'삼망'에 휩싸인 나는 각종 실록을 쌓아 놓고 눈싸움을 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토론 활동, 댓글을 달아주셨던 이웃님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성계와 이방원은 왜 사이가 안 좋았을까?'

'세종대왕의 치세는 충녕대군 시절 창의 융합적 교육의 결과일까?'

'세종 급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문종은 왜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을까?'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의 둘째 증후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갑자사화는 부모의 불화와 일탈로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니었을까?'

'숙종의 불도저급 성격은 어화둥둥 금지옥엽 어린 시절 때문일까?'

'영재교육의 아이콘 세자들의 교육법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헬리콥터 맘 문정왕후의 욕심은 아들 명종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을까?'

'각종 콤플렉스가 왕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사도세자의 기행은 칭찬에 박했던 아버지 영조 때문이었을까?'


오호라!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금쪽이 들의 육아 상담까지 받을 수 있다니!

결국 왕들 역시 그저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시간을 겪었느냐가 중요했다니!


역사는 그저 글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삶이자, 걸어갈 길,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부모는 처음이기 때문에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물론 모범 답안도 필요하다.


이제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 아이들 때문에 역사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다가 역사가 궁금해져서 열혈 학생이 되어가는 어른들과 함께 말이다. 더불어 사춘기가 되면서 멀어져만 가는 아이 때문에 한숨짓는 부모님들과 '조선왕조실록' 탐험을 떠나보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역사 선생님과 함께 역사를 통해 자신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그려볼 것이다.


<캐리비언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처럼 거침없이...

<언차티드>의 네이선 드레이크처럼 역사 속 썰들과 함께 모험적으로...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처럼 판타스틱하게...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주말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신나는 여행을 떠나볼 것이다.

실록을 연결고리 삼아 육아와 삶을 한땀 한땀 엮어가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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