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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Apr 12. 2024

고슴도치 딜레마, 우쥬 플리즈 꺼져줄래?

쇼펜하우어

[작전명:계단] 3화

:feat. 쇼펜하우어 '고슴도치 딜레마'



"계단, 효과는 있어?"

쪽 찢어진 데다가 생기다 만 눈으로  내 몸뚱이를 위아래로 훑으며 진상 그녀물었습니다. 네 몸을 보아하니 영 틀렸다는 듯이. 오늘도 역시나 비호감. 웩.


"계단이라도 오르려고요."

바빠서 운동 다닐 시간이 없어서  요거라도 하면 낫겠다 싶은 마음으로 사무실 갈 때라도 계단을 타고 있다고 꾸역꾸역 대답했습니다. (말 섞기는 싫었지만요.)


 그녀는 고 찢어진 눈으로 다시 한번  몸을 두세 번 훑고는 영혼 없이 "고생 많네"라 말하며 총총총 사라졌고, 그 뒤통수마저 '얼마나 가나 보자'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진짜 극혐...)

아이 짜증 나!

그녀가 떠난 이후 기꺼이 오르내렸던 발걸음은 급속도로 무거워졌고, 호흡도 거칠어졌으며,  의지마저 꺾여서는 오만 사가 귀찮아져 버렸습니다. 실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초콜릿 하나를 까서 오물오물 녹여 먹으니 살 것 같았습니다.


앗! 초콜릿은 1g에 5~6㎉

(괜찮아요, 계단 한 번 더 다녀오죠 뭐)






그녀는 비록 고놈의 눈은 쪽 찢어졌지만 타고난 마른 체형에  예뻐요.  하지만 성격이 개떡이.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나를 싫어한다는 겁니다. 자꾸만 머릿속에 끼어드는 그녀의 목소리를 떨쳐내려 구석에 있는 계단을 타기로 했습니다.


계단 하나, 둘, 셋...

'새로 산  명품 가방을 자랑했던 날, 내 반응이 시큰둥해서? (아, 내가 브랜드를 잘 모르는 걸 어쩌라고), '좋은 게 좋은 거죠. 못되게 굴 필요가 있냐'는 말 때문에?(혼자 착한 척하지 말라고 면박을 줬었지.)'


아, 진짜 내 계단에서 꺼져줄래?


계단 열, 열 하나, 열둘...

'내가 그동안 뭐 하며 살았는지는 왜 궁금한 건데?, 한심하다는 듯 비아냥대는 표정은 뭔데?'


(하... 다시 세자!)

계단 하나, 둘, 셋...

'이거 좀 부탁할게' 그래, 그때는 친한 척 난리 더니... 예전엔 좀 친했었는데... 진짜 언제부터지?


에이, 오늘은 틀렸습니다.

책상 앞에 털썩 주저앉아 아이스라테를 한 잔을 들이켜니  들키기 싫었던 복잡한 마음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사실 그녀가 미워진 것은 제가 먼저입니다. 그래서 미워했습니다. 웃음기는 제가 먼저 거둬들였고, 미워하자 마음먹은 뒤로는 먼저 다가가는 일 따윈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거절이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기대감 대신 밀려드는 섭섭함과 실망감이 켜켜이 쌓여 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점점 마주치기도 싫었고, 불편한 마음이 들어 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원래부터 진상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그녀는 어떤 계단을 걷더라도 상관이 없었고, 나는 홀로 외진 계단을 돌아 돌아 걷고 있는 셈입니다. 마음이 편하단 핑계를 대면서 말이죠.



독설 철학가 쇼펜하우어 선생님의 ‘고슴도치 딜레마’가 생각났습니다.


고슴도치는 추운 날씨에는 달라붙어 하나가 되지만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기 시작하면 멀어졌다가 다시 추워지면 한 덩어리가 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죠.


현명한 사람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불을 쬐지만, 어리석은 자는 불에 손을 집어넣고 화상을 입고는 고독이라는 차가운 곳으로 도망쳐 불이 타고 있다고 탄식한다. -쇼펜하우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시에 찔리는 줄도 모르고 상처투성이가 되고는 그 아픔을 참지 못하게 되면 ‘고독’으로 도망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네,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이 나이 먹도록 ‘홀로서기’와 ‘함께하기’ 사이에서 이토록 방황을 하게 될 줄이야. 그녀 말이 딱 맞네요. 그동안 뭐 하며 산 것이며, 무엇을 배운 것인지...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쇼펜하우어-


그래서 계단을 오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온기와 가시를 동시에 전해 왔다는 것을 바로 알고, 온기에만 푹 빠져서는 그 온기가 필요 없어졌을 때 비로소 분명하게 보이는 '다연발 로켓 화포' 신기전 급 가시에 헤롱 대던 날들을 날려버리기로 합니다.



계단 하나, 둘, 셋...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하여 제주도 말로 오소록 한(으슥한) 계단을 오르내리고 나니 숨은 가빠졌지만, 머리는 맑아지는 그런 기분이 드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단으로 인한 자동 힙업에 마음 업이 저절로 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다 그녀를 만나면 웃어주면 됩니다. 물론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요. 딱 거기까지입니다. 되도록 내 시간에는 '우쥬 플리즈 꺼져 줄래?' 마인드로 살아가려고요. 쇼펜하우어 슨생님께서 뭐라 하시든 내 마음대로. 하하.


하하- '이너 피스'가 더 필요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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