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동산의 희로애락, 도틀굴&먼물깍

닐니리만보 엄마의 제주 역사 여행 (6)

by 광쌤

33도의 땡볕 무더위...

'5시 이전 만보는 절대 안 돼!' 원칙이 깨진 날이야.


"쌤, 동백 동산 가보셨어요? 3시 30분 '벙'인데 괜찮아요?"

오름 동호회 '오르락' 번개의...

베스트 드라이버 미녀교사의 벙에 의한...

나의 목적 있게 걷기를 위한...


땡볕 걷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단다.


여전히 설레는 출발 컷!!

돌하르방의 격려와 함께 6명의 원정대의 짧지만 굵고... 더운 걸음이 시작됐어!


[동백 동산을 걷는 이유 (1)]

-누군가에게는 '희(喜:기쁨)'

땡볕에 계속 서 계실 돌하르방님들께 죄송스럽게도 금세 그늘의 장막이 드리워졌어. 폭신폭신 낙엽 양탄자는 덤이고 말이야. 반짝반짝 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들은 행여나 반복되는 이 길이 심심할까 봐 최선을 다해 일렁였어.


더운 여름날...

자연의 비호 아래 가볍게 걷을 수 있다는 것, 이곳을 걸어야 할 최고의 이유가 아닐까 해. 기쁨의 콧노래와 사뿐사뿐 발걸음이 자동 앙상블을 이뤘지!




[동백 동산을 걷는 이유 (2)]

- 누군가에게는 로(喜: 노여움) 혹은 애(喜: 슬픔) '도틀굴'


새소리, 바람 소리에 흥이 오를 즈음 '도틀굴'이 나와서 잠시 멈춰야 했어.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들어봤지?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 전후 가장 큰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아마도 엄마의 목적 걷기에서 자주 다뤄질 거야.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사건이니까... 그래야 다시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도틀굴'은 굴의 입구를 트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대.

이곳은 4.3 사건 당시에 '중산간 마을 소개령'과 '초토화 작전'으로 선흘 주민들이 은신했던 곳이야. 좁은 입구에 스산한 기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의 숨죽여 쉬던 입김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어. 슬프게도 한 노인이 위협에 못 이겨 굴은 발견 되었고, 숨어있던 약 20명의 사람들은 모두 학살되었대.



동백동산은 주변에서 발견되는 '구실잣밤나무', '야생 오미자', 식수 등과 함께 선흘 주민들을 품어주던 곳이었을 거야. 그 당시 사람들이 동백동산을 올라야 했던 이유는 아마도 공포와 슬픔에서 새어 나오는 분노이자 생존이지 않았을까?



[동백 동산을 걷는 이유 (3)]

- 누군가에게는 락 ( : 즐거움) '먼물깍'


먼물깍에 도착했어.

꺄아악!! 너무 멋지지 않아?


파란 하늘까지 잔뜩 머금은 먼물깍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어! 게다가 이곳은 진짜 진짜 의미 있는 곳이거든.

*‘먼물’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이고 ‘깍’은 끄트머리라는 뜻이야.


과거에는 이곳이 생활용수나 가축 음용수로 이용하던 곳 이래. 알다시피 제주는 용암지대라 물이 고일 수 없는 환경인데 여기는 넓은 용암대지의 오목한 부분에 빗물이 채워져서 만들어진 습지이고, 제주도에 있는 5개의 ‘람사르 습지’ 중 하나이기도 하지.



‘람사르 습지’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대한 보호조치가 진행되는 곳으로, 멸종위기 등급의 동식물과 희귀한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는 습지라고 할 수 있단다.


*동백동산 먼물깍은 1100 고지 람사르 습지, 물영아리오름 람사르 습지, 설문대 할망이 쏙 빠져버렸다는 전설을 품은 '물장오리 오름 람사르 습지', 애월읍 삼 형제 오름 부근에 위치한 '숨은물벵듸 람사르 습지'와 함께 5 총사 람사르 습지야.



멋진 풍경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보존되고 있는 지역에 앉아서 '오르락'에서 처음 인사 나눈 미녀 회원분께서 나눔 해주신 샤베트 복숭아를 먹고 앉아 있노라니, 이곳이 진정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습지'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라고들 하지? 오늘 엄마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하나 더 배우고 온 기분이야.


자두 아니냐고?


응, 아니야. 하하..




[동백 동산을 걷는 이유 (마무리)]

- 각자 다른 이유를 품고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똑같은 길을 걷더라도 각기 다른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걸어가겠구나!'라는 생각 말이야.

동백동산 내에 있는 '자드부팡'

때로는 핫플인 카페를 방문하기 위해서 걸어오고...

누군가는 무심하게 쌓인 돌담 위에 이끼와 그 위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살을 보며 약간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 잠시 머물다 가기도 하지.

그리고 때로는 아직 지지 않은 수국의 보랏빛 향취를 담기 위해서 땡볕임을 잊기도 해.

낙엽 밟는 소리, 바람이 스쳐가는 소리,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 갈 수도 있고 말이야.


동백동산의 그늘과 땡볕이 이글거리는 바깥세상의 경계에 서서 이 동산이 품고 있는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해 생각해 봤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 이 길에 새겨진 사람들의 인생의 색깔은 다른 동백나무들 보다 조금은 늦게 핀다는 이곳의 동백나무들을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야.


쑥쑥 자란 나무들 사이에 가려진 체, 과거 선흘 사람들의 땔감이 되어주며 견뎠던 시간들을 숨긴 채 여전히 그늘이 되어주는 동백나무들의 희로애락이 조금은 애달프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땡볕으로 다시 나아가야겠지?

그래, 가보자!

희로애락 다 쓰면서 살다 보면 동백동산처럼 근사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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