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영화로운 다이어트> 회원님들과 함께 하루하루 미션을 클리어해나가다 보면 괜히 부지런히 살아지는 것 같고 기분은 좋아.
꾀돌이 엄마는 계단을 피해 둘레로만 도는 거 알지? 계단이 떡 버티고 있으면 '쏘리~ 씨유 레이러!' 인사를 남기고 쿨하게 돌아가곤 했지. 하지만 '목적 있게 걷기'로 애증의 계단을 걸어보기로 했어.
[계단 (1)]
시작은 가뿐가뿐-
야심 차게 사진도 한 장 찍는 여유를 가져보면서 말이야.
분명 열심히 걸었는데 뒤에서 어르신들이 논스톱 하이패스 걸음으로 엄마를 스쳐가는 가시는 거야. 아주 빠른 걸음으로...
도사처럼 구름을 밟듯 사뿐사뿐 걸어가셨어.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지는 이 기분은 뭐지?
사라봉 계단은 어렵지는 않지만 은근히 패배감을 주는 곳이야. 한 번에 오를 때도 있고, 반도 못 올라 가 헐떡대며 저질 몸뚱이를 탓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야.
인생이 그렇잖아. 쉽게 올라갈 때도 있지만 늘 그렇지는 않듯이 이놈의 계단은 또 한 번 나를 시험에 들게 했어.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면 안 되지. 정상에 도착해서 얻을 수 있는 선물 같은 풍경을 생각하며 걷고 걷다 보면 어느새 도착하잖아.
사라봉 정상에서
물론 도사님들은 쉬지 않고 슝 내려가셨지만 경치 감상 핑계로 잠시 멈춰 섰지 뭐. 역시 세상은 만렙 투성이야!
사라봉 정상에 사는 토끼님들은 '거 참 딱하오. 몸이 그렇게 저질 이시오 그래... 쯧쯧'하시며 두 눈을 딱 감아 버리시는 것 같구나.
아, 자존심 스크래치!
이대로 질 수 없지. 계속 가보자!
계속 걸어가 보자!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계단 (2)]
별도봉 산책로는 언제나 행복이야.
걷는 내내 콧노래가 나니까...
휘휘 돌아 걷다 보면....
저쪽에 가파른 계단이 보여.
멋진 풍경으로 볼 때는 좋지만 막상 올라가려면 그저 계단이 되는 곳이지.
가끔은 그냥 풍경 속에 스며든다 생각하면 가파른 길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아. 인생의 걸음걸음이 노래가 될지 눈물이 될지는 내가 선택하는 거 잊지 마.
[계단 (3)]
덥기도 하고 그냥 둘레길로 갈까를 고민하고 있었어.
그런데 최종 관문 별도봉 정상길 나무 계단들이 말을 걸어 오더라고.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냥 못 본 척하고 갈 줄 알았어!"
간다... 가...
척척 척척....
나무 하나하나에 발끝을 걸쳐가며 하나, 둘 걸어갔어.
그러다 나온 나름 엄마가 붙인 깔딱 고개...
숨이 차오더라.
자만심, 허세 다 사라지고... 오만상만 남았어.
엄마 특기지.
그래도 걸었어.
이 코스를 두 번 도는 분들도 계시고, 뛰는 분들도 계시는데 징징 거리는 소리 심하게 낼 수는 없잖아.
어엇, 뭐지?
매일 여기는 '힘들어서 패스!' 하고 쿨하게 통과하던 나였는데 생각보다 쉽게 올라가 지는 거야. 숨은 찼지만 금세 도착해진 정상에서는 구름 팡파르가 울려 퍼졌어.
저 멀리 원당봉은 다음엔 여기로 와... 하고 산뜻하게 웃어줬고 말이야.
한라산은 구름과 고군분투 중이니 인사는 생략하겠다고 하겠다고 했어.
평소에 피하기만 했던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여기까지 올라와 보니 바람이 꽤 특별하게 느껴졌어. 구름한테 특별대우받는 느낌이었고 말이야. 계단으로 걸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저도 동훈과 같은 나이를 살면서 때론 삶의 방향을 잡기 어렵고 막연할 때가 있어요. 그 와중에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고, 다른 어떤 것은 책임감으로 지켜야 하고...
사람이 점점 후져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느낌들이 나이대 특유의 고독이 아닐까요?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막막하고, 가끔은 반대로 '내가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해도 되나'하는 불안함도 느껴지는 시기인 것 같아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 대본집 1권 중에서 이선균 인터뷰 -
하루를 마무리하려는데 멋진 곰 작가님께서 좋은 글을 선물해 주셨어. 엄마는 인생에서 하염없이 계단을 걷고 있었나 봐. 하지만 가파른 계단은 애써 피하며 살았던 것 같아. 그래서 인생이 잠시 후져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달까? 분명 열심히 걸으며 살았는데도 불안했던 것은 그냥 둘레길 같은 삶만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