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치광이 나와도 떠난다 포켓몬 고 모험 in두맹이골목

닐니리 만보 엄마의 제주 역사 여행 (4)

by 광쌤


"더운데, 지금 가야 해?"

"응, 커뮤니티 데이는 2시까지라고요!"


33도를 웃도는 땡볕인데...

꿀 같은 주말인데...

그냥 집에서 영화 보며 팥빙수나 먹으면 딱 좋으련만...


아들아, 포켓몬 고가 웬 말이냐!

'혼자 죽을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며 큰 아들에게 물었다.

"큰 놈, 같이 가자! 운동 삼아..."

"(기겁하는 표정으로) 밖은 위험합니다."

나가기 싫다면 싫다고 할 것이지 비겁한 놈이라는 뜻을 가득 담아 눈빛을 쏴줬더니 큰 놈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제주에 미치광이가 돌아다닌데요!"

미치광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들이 보내준 사진에는 고슴도치인 듯 아닌듯한 짐승 한 마리가 있었다.




[제주 마을 한 복판에 나타난 산 미치광이]


검색해 보니 이 녀석의 정체는 '호저(포큐파인)'이라고 불리는 녀석이었다. 5월 말 제주시 조천읍의 한 사설동물원에서 탈출하여 한 달 가까이를 떠돌고 있다고 하니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기겁할 노릇이긴 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성산읍 신천리 도로 옆 하수로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나머지 한 마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동물원을 탈출한 녀석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동물원에서 귀엽고 신기한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것은 늘 감사한 일이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 녀석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컸었다. 심지어 공격만 하지 않으면 온순한 성격의 동물이라는데 이름이 '미치광이'가 뭐냐고!!


무사히 구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포켓몬 고 커뮤니티 데이]

여하튼 산미치광이 건 33도 날씨 건 막둥이 노른자는 거침이 없다. 야무지게 물을 챙기고, 당당하게 엄마의 핫스팟을 요구하는 최고의 포켓몬 트레이너이자, 영화 <언차티드>의 네이선 같았다. 물론 나는 핫스팟 노예다.

아들들과 함께 걸으며 포켓몬 고를 한 탓에 한 동안 나도 모험가 인디애나 존스 급이었다. 그래서 아들의 레벨보다 2개나 높은 36 레벨이다. 포켓몬 고 커뮤니데이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3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모나노? 모두나? 모로두?"


이름이 헷갈렸을 뿐인데 몇 번째냐며 이를 깍 물고 "모. 노. 두!"라고 알려주는 착한 막둥 씨와 함께 드래곤 타입 모노두 녀석을 포획하며 다녔다. 모노두, 디헤드, 삼삼드래가 포켓몬 가방에 꽉 차 갈수록 인내심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모험을 떠난 곳을 둘러보며 오늘의 진짜 '목적 있게 걷기'를 잊지 않고 챙기며 걷기 시작했다.



[제주 두맹이 골목]



제주시 일도2동에 위치한 이 골목은 '두무니머들'이라고 불리다가 구중문과 두문동 사이에 위치한 골목으로 2008년 공공미술 프로젝트 '기억의 정원-두맹이 골목'이라는 사업에 의해 얻어진 이름이다. 인간 삶을 둘러싼 환경으로 도시의 가치에 주목하면서, 도시를 새롭게 조명하는데 역점을 두어 추진된 골목길 재생 사업으로 탄생된 곳이다. 이를 위해 골목 안에 있던 폐초가를 철거하고, 쉼팡과 파고라를 설치하였으며, 골목길 초록 정원을 만들기 위해 꽃담을 조성하고 꽃 벽화를 그렸다.



"두무니머들? 그게 뭔데요?"

" 이곳에 돌이 많았었대. 그래서 '두무니머들'이라고 붙여졌는데 잡초와 가시덤불이 우거진 불모지였대."


"여기가 예전 제주성 근처 아니에요?"

"여기는 제주성 밖이라고 봐야 해. 원래는 빈 땅이었다가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되면서

두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대."

"몽실 언니다!"

"책 읽기 싫다고 몸부림치더니 몽실 언니 닮은 그림을 보니 반가운가 보구나!"


"운동회,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했는데... 올해는 신나게 했으면 좋겠어요."

"수국이 여기에 활짝 피었네!"


막둥이는 어느 사이 모노두 사냥을 멈췄고, 밀렸던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눌 수 있었다.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 윤동주의 시 중에서-"


가끔씩 감동을 주는 시구도 함께 해주었다.

사실 두맹이 골목은 내가 사는 곳과 아주 가깝다. 없어진 지 오래인 우체국, 자그마한 두맹이 도서관 등을 위해 오고 갔던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두맹이 골목'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차도 많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벽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걸으니 특별한 곳이 되었다.


벽화 속 아이들도 오늘따라 신나 보인다. 기분 탓이었을까? 영화쟁이라서 그런가, 이럴 때 꼭 영화의 한 장면이 스쳐간다.

"비법이란 없었어.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특별해지는 거야!"


드래곤 워리어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포'가 아무런 내용도 없는 용의 문서를 읽고 좌절했을 때 거위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이다. 벽화 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특별하게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그림들이 하나하나 다 살아나 보이듯 특별한 비법도, 애쓸 필요도 없다.


빨래를 하다가 잠시 던져놓고 가까운 길을 걸어보자.

산미치광이를 만나더라도 공격만 하지 않으면 되고, 더우면 그늘에 가면 되니까...

멀리 가지 못한다고 한숨 쉬지 않으면 그 숨이 모이고 모여, 엔돌핀이 돌지도 모른다.


포켓몬 고를 잠시 멈췄기 때문에 '레벨 37'이 되는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 또 인생에서 레벨이 쪼끔 올라간 기분이니까 그걸로 된 것이다. <쿵후 팬더> 포와 같이 이너 피스를 찾기 위해서라도 잠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웃으면 아이도 웃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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