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5, 6코스 '함께' 걷자 4만보

닐니리 만보 엄마의 제주 역사 여행 (3) 안해 본 짓 하기

by 광쌤

'4만보를 걷다니...!!! 올레 두 코스를 연달아 걷다니!!!'

간세다리 엄마가 말이야!

(간세다리 : (제주 방언) 게으름쟁이)


오늘 엄마의 '목적 걷기'는 미녀 교사의 제안으로 시작됐어. '간세'가 이정표 역할을 하는 올레길 탐방!! 간세다리 엄마의 간세의 올레길 투 코스 걷기인 셈이야.

올레길 상징 간세


걸으면서 역사 탐방도 할 수 있고, 딱이길래 덥석 수락해버렸지뭐.

그런데 말이야..

걷고 보니 목적 걷기의 컨셉이 바뀐 듯 해!

'안 해 본 짓 하기'로 말이야.

내용이 궁금하다고?


소설에도 5단계가 있잖아. 이제 '전개'로 가보자고!




올레 5코스와 6코스

[전개]

안 해 본 짓 하기 (1)

동호회 게스트


엄마는 주로 아주 가까운 사람들하고 올레길을 걸었던 것 같아. 그저 순례하는 기분으로 조용하고 묵묵하게 걷다가 멈춰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지.

에이, 이건 좀 허세! 지치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그렇게 걷는 게 내 스타일이라는 뜻이야. 하지만 오늘은 달라. 미녀교사 선생님께서 늘 자랑하시던 오름 동호회 '오르락' 팀과 함께 한 날이거든. 두근두근 설레고 걱정도 됐어. 걷기 만렙 회원님들 사이에서 자꾸 낙오되면 어쩌나, 버릇처럼 꾀부리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야.


우와, 드디어 시작이야.

인증샷을 찍는다길래 머리와 옷매무새를 만졌는데, 요새는 출발지에서 발을 내밀고 찍는 게 트렌드인가 봐! 엄마 포함 열일곱 명의 멋진 분들과 강아지 망고까지 힘차게 출발하자는 의지의 운동화 샷! 멋지지?

올레 5코스, 시제 시작이야!


안 해 본 짓하며 사는 것도 꽤 셀레고 신나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 순간이기도 해. 누군가에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야.


"도전은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며, 도전의 극복이 인생을 의미 있게 한다. -조슈아 J. 마린-"


제주 올레 5코스 걷기가 시작됐어. 제주시는 분명 33도 안팎의 햇빛 쨍쨍 타들어가는 파란 하늘 날씨였는데, 출발지인 남원 포구의 날씨는 비가 방울방울 맺힌 그렇고 그런 날씨였어.


험하고 질퍽거리는 날씨에 올레길 걷는 것 역시 '안 해본 일 중 하나'가 되겠구나!


멈춰버린 시계처럼 엄마식 세상의 시간은 잠시 멈춘 듯한 기분이야.


낯선 사람들, 파도 비가 온 세상에 내리는 풍경, 오랜만에 걷는다고 좋아라 헤헤거리는 묵직하지만 가벼워 보이는 육신까지 더해져 새로운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어.


파란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한 번씩 깨달음을 주는 신비한 시크릿 로드인 셈이지.


온몸으로 날리는 파도 비도 꽃가루처럼 느껴지고, 무엇이든 오케이 예스맨이 될 수도 있는 시작의 가뿐함과 열정은 진심 마법과 같았어.


그리고 중간중간 코스마다의 추억 이야기로 걸음걸음에 음표가 달리는 기분이었지.


"어, 여기는 아이들하고 '동백낭 할망' 읽다가 와본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네!",

"어, 여기는 음..암... 추억 돋네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하호호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로 채워져 가는 올레길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꾀돌이 간세다리인 내가 계속 걸을 수 있는 파워 워킹 노래 같았어.


"괜찮아요?, 걸을 수 있겠어요?"


자꾸만 뒤쳐지는 나를 보며 묻는 만렙 회원님들의 걱정 어린 말들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길의 모양처럼 충분한 위로가 되었단다.


수줍수줍한 수국처럼 남몰래 어색해서 괜한 헛기침을 했었는데 돌담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수국수국 웃고 있는 꽃들처럼 어느새 어색함은 사라졌어.


'꽃인가 사람인가!', '보호색이네!'

영화 <건축학 개론> 촬영지로 유명한 서연의 집 앞을 지나다가 수국 인증샷을 찍는데 워후 얼굴이 터져버릴 뻔했지 뭐야.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지 않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와 금세 거리낌이 없어진다는 게 말이야. 이렇게 수국들처럼 옹기종이 붙어서 수국수국 떠들며 시. 공간을 공유하지 못하면 가족들이어도 서먹서먹해지게 마련이니까 같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아.


올레길은 참 신기해.

이 생각 저 생각이 자꾸만 나니까 말이야. 이렇게 조금 더 걸으면 뜻밖의 응원을 받을 수도 있거든.


'너른 바다를 떠다닐 때는

먹물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라도 적들을 만나면

뿜을 준비를 하고,

말려진 생은 햇빛에 빛나고,

품었던 독은 사라져 버렸다.


나도 살았었다.

살았고 또 살아갔다.

이제 인생의 추억도

날아갈 것은 날아가고 남을 것은 남고,

비추어질 것은 비춰져서

그렇게 새롭게 탄생되기를


- 인생 이모작 서사시 혜담연-'



'더 늦기 전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진기를 들었습니다.'

<마음 빛 그리미> 갤러리에서 발견한 작가님의 뜻밖의 위로는 오늘의 나의 도전과 앞으로의 걸음에 대한 응원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래, 지쳐도 계속 걸어가 보자.

올레길도...

인생 길도...




[위기]

안 해 본 짓 하기 (2)

낯선 음식점


6코스 시작이다!

처음에는 분명 엄마도 5 코스만 걸으려는 생각이었어. 엄마 스타일대로 말이야.


그런데 만렙 회원님들의 빠른 걸음과 에너지는 금세 5코스를 걷게 해서 힘이 남아도는 기분이었지. 꽤 신나더라고! 그래서 ENFP 답게 무지성으로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10명으로 작아진 6코스 팀에 합류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실수였을까?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에서의 30분 이상 딜레이 되는 음식 써빙은 피로를 배로 만든 것 같아. 심지어 똥맛이었거든. 알다시피 엄마 입맛은 성격처럼 참 무던한 편인데도 오래된 바다를 풀어놓은 듯한 그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구나!


이 역시 엄마가 잘 안 하는 짓 중 하나야. '평점 보고 음식점 가기'

음식 맛은 정말 최악이었어.

그런데 있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 식당의 음식이 맛있지도 않고 고만고만했다면??


아마도 커피를 세워놓고 '치유의 시간'이라는 제목을 지어가며 하하호호 웃는 전우애는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아. 무엇이든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고, 애매할 거라면 확실한 게 낫다는 생각도 했지. 아마도 엄마는 단골집만 가는 사람으로 살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새로운 음식과도 싸워보면서 전투력을 키워봐야겠어. 지나고 보니 그 맛도 잊을 수 없지만 즐거운 추억이 아니었나 싶구나.




[절정]

안 해 본 짓 하기 (3)

올레길 두 개 코스 걷기


절정이 너무 빨리 오는 것 아니냐고? 사실 위기는 음식 맛이 아니었거든. 진짜는 올레 6코스 초반에 포진되어 있는 '제지기 오름'이었어.

'높이 400미터?'

'에이, 그쯤이야!! 이거 왜 이래, 나 매일 만보 이상 걷는 여자야!'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올라간 것부터 잘못이었어.


'남사면은 매우 가팔라서 곳곳이 벼랑져 있고~'


검색해보니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었어. 적어도 비가 오락가락하여 길이 질퍽질퍽한 날, 올레길 두 개를 연달아 걷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야. 심지어 나는 오랜만에 올레길을 걷는 왕쪼렙이었으니까.


구불구불 대부분 계단인 길을 올라가려니까 자꾸만 잡념이 생기는 거야.


'5 코스만 걸을걸!'

'아까 보말수제비를 먹는데 하필 'Don't forget to remember me' 노래가 나온 거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악마에 짜증이났어.

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 풍경만큼은 일품이었어. 거친 호흡이 잦아들 무렵에는 이곳에 대한 궁금증도 들만큼 잠시 여유도 생겼고 말이야.


'절이 있었던 데서 '절 오름', 일명 '제지기오름'이라고 하며, 이런 전설이 내려온다.


이 마을에 몇 가구가 모여 살아갈 때 이야기인데, 그중 일곱 형제 집안이 있었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안개를 만났고 외딴섬인 외눈박이 섬에 표류하게 된 거지. 거기서 헤매다 초가집을 발견했고, 거기에 사는 노파는 친절하게도 식사까지 대접했다는 거야. 막내는 그 친절이 이상했는지 먹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형들은 모두 잠에 빠진 사이 밖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래. 그 노파는 요괴였고, 막내는 형들을 깨워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지. 다행히 백발노인을 만났고, 섬에서 도망칠 수 있었어. 그 노인과 함께 고향에 돌아와 보목리에서 지냈는데, 알고 보니 그 노인은 신령님이셨어. 형제들은 당집을 짓고 노인을 모시고 살았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 사이 회원님들은 다시 파이팅을 외치셨어.


'걷기 딱 좋은 오름이었다!'

'너무 좋은데요!!'


역시 만렙들은 어나더 레벨이야! 다시 걷기 시작했고, 거짓말처럼 맴도는 노래가 있었어.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


제지기 오름 이후 그렇게 가파른 길은 없었지만 웃음기는 싹 사라졌고, 얼굴은 붉어져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어.

요즘 핫한 기사가 "올여름 놓치면 안 되는 제주 여행 장소"야. 그 핫플에도 포함되어 있는 '소정방 폭포'도 지나간 거야.


'음 7월 15일에 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일 년 내내 건강하다는 속설이 있어 물맞이 장소로 사랑받는다. 이 물을 맞으면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하는데, 물이 차가워 오랫동안 물을 맞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매일 경제 신문 6월 26일-'


다리가 아팠는데 발이라도 담그고 올걸. 무리한 탓에 신경통이 생겨서 주구장창 마사지 건을 돌리면서 자꾸만 촤~하고 쏟아지던 이 물줄기가 잊히질 않는구나.





[결말]



왼쪽 두 번째 발가락에 생긴 물집,

만보 미션 해결 못해 아직 백보도 못 채운 나의 만보계,

뒤뜅뒤뚱 신경통 걸음걸이...


지금 현재 엄마의 몸 상태야.

안 해본 짓을 한 대가지!


하지만 말이야.

자꾸 생각나.


"I messed up tonight
I lost another fight"


영화 <주토피아> ost 'Try everything' 가사처럼...

예전에는 점 엉망이었거나, 도전조차 안 했었는지도 몰라.


"I wanna try everything

I wanna try even though I could fail."


하지만 이젠 도전해보려고.

실패하더라도 엄마는 도전할 거야.


발가락 신경통보다는 풍성해져서 건강해지는 기억과 마음들이 더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야. 오름 동호회 '오르락' 회원님들과 함께한 엄마의 목적 걷기는 올레 5, 6코스 도장 깨기와 4만보를 채워버리는 위업과 함께 오래도록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구나! 더불어서 그곳에서의 배려와 친절, 넘치는 에너지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어.


다시 한번 외쳐봐야겠다!


"Try everything!"

브런치 작가 광쌤의 제주 역사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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