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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스 Oct 02. 2023

압구정에서 20년 살면서 느낀점들

우월감이 만들어낸 환상의 도시

일명 '부촌(富村)'이라고 불리던 압구정에 재건축이 확정되면서 이제는 부촌을 넘어 '환상의 도시'라는 별명까지 생겼다고 한다. '압구정동 주민들 특징'이라는 SNS 콘텐츠들이 돌고, '압구정동에 살고 있다'는 말이 하나의 스펙과 명함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재테크 열풍과 함께 동네 이미지가 바뀐 건 분명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09/14/ICU33YNFX5HYHL2W3434S7IFD4/?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어쩌다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약 20년째 압구정동에 살고 있다.

20대 중반까지도 우리 동네에 대해서 별다른 메리트가 없었다. 오히려 낡고 오래된 아파트라서 불편해서 깔끔한 동네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취업을 하자마자 회사 앞 동네에서 3년간 자취를 했고, 결혼준비를 하게 되면서 다시 본가에 들어온 지 약 3개월이 지났다.


30대 초반이 되어 돌아온 압구정동은 여전히 똑같았다. 하지만 이 동네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어느 정도 경제관념이 생기면서 바라본 압구정동은 어떻게 보면 환상의 도시가 맞았다. 근로소득만으로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가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압구정동에 사는 주민들을 관찰해보고 싶었다. 편하게 지내던 동네 아주머니부터 어린 친구들까지. 은밀하게 살펴보고 몰래 정리해 본 관찰 일지를 나누고자 한다.

본가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풍경

1. 동네부심이 대단하다.

첫 번째로, '압구정동 프라이드'는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즉, 지역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진짜 돈이 많은 부자들은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말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압구정동은 예외였다.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그래도 최소 30~40억이 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다. 그리고 재건축 이후 집값이 더 뛸 거라고(동네피셜 100억까지 보고 있다) '확신'을 하고 있다(물론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재건축에 잡음이 많은 상황이지만, 재건축 방향에 대한 싸움이지 진행여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처음에 이 소문을 듣고는 좀 재수 없었다. 어차피 결혼해서 이 동네를 떠날 입장이라서 그런지 배도 아팠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만약 주민이라면 지역 우월주의를 갖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이 모든 근거는 동네 주민분(어머니 또래)들 입에서 직접 들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다


2. 입지가 좋긴 좋다.

압구정동에 살면서 여전히 불편함이 많았다. 아파트 단지들의 외관은 심하게 노후되어 있고 여름철이 지나도 초파리가 득실득실하다(지금도 잡고 있다). 그에 반해 주변 물가는 너무 비싸다. 기본김밥 한 줄에 8천 원인 동네가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공교롭게 결혼준비를 하면서 느낀 점은 압구정동의 입지는 깡패라는 것이다.

서울권은 물론이고 가까운 경기도도 차가 막히지 않는 한  1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워크인으로 최고의 상권들을 찾아갈 수 있다. 현대백화점 본점, 압구정 갤러리아 명품관, 압구정로데오 거리가 산책 삼아 걸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전 자취방이 강서구에 있었다 보니, 강남권까지 교통이 아무리 좋다한들 번거로운 건 사실이었다. 그만큼 웬만한 건 강남에 모여 있으니까. 본가에 살면서 결혼준비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3. 고가 명품만 들지 않는다.

압구정동에 동네부심은 강해도 명품부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지 안에서 현대백화점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데 이 버스 안에서 압구정 주민들을 압축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이때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명품을 잘 들진 않는다는 점이다. 간혹 샤O이나 에스O스 백도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중저가 명품이나 에코백을 들고 타신다(장 보러 가실 수도).


주민들의 옷장을 본 적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몇 십 년간 봐왔을 때 동네부심에 비해서는 소박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4. 모두가 세련되진 않다.

압구정동 주민의 평균연령은 꽤 높다. 신도시가 아니다 보니 대체로 아들딸이 20-30대인 부모님들이 살고 계신 경우가 많다. 1990년도 즈음 어찌어찌 살기 좋은 동네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대박이 난 케이스도 많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고든 패션이든 가진 부(富)에 비해 세련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다.

재건축 조합원 세미나에 다녀온 엄마는 다시는 그런 자리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해관계가 얽히는 자리에서 각자의 품위와 가치관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동네 수준과 어울리지 않은 고성방가와 언행이 오갈 수 있다. 소득 수준과 별개로 사상은 다양하니까.




이제 곧 압구정동을 떠나는 입장이지만 나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라서 이 동네가 바람대로 잘 되기를 바란다. 부디.. 분쟁들도 잘 해결돼서 빨리 우리 부모님도 깨끗한 단지에서 사셨으면 좋겠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후 다시 이 동네를 찾아온다면 또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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