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사내 경고장
“이선임 제정신이야?”
점잖은 PL(프로젝트 리더)님의 호통 소리에 옆팀 앞팀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내 아웃사이더인 내가 동물원 원숭이 입장이 된 건 불과 2시간 전에 발생한 일 때문이었다.
2020년 4월 9일 16:30
시약병(화학 물질이 담긴 병)들을 정리하던 중에 내 발 밑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묵직하게. 바닥에 두었던 시약병이 깨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들고 있는 박스의 바닥이 터지면서 병이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보호구를 착용한 상태라 몸에 화학 물질이 튀진 않았지만, 실험실 바닥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재수 없는 날이었다.
1리터가 넘는 액체가 유리와 섞여 바닥에 흩어져 버렸다. 나는 단지 실험실 청소를 하려고 했을 뿐인데.. 번거로운 사고를 쳐버렸다. 일단 침착하게 시약을 바닥에서 닦아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 일이 없었던 상태로 실험실을 복구시켜야 했다. 가장 먼저 키친타월 재질의 휴지로 닦아봤지만 물질이 끈적여서 높아 잘 안 닦였다. 물에 적셔서 닦아내야 할까?라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시약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왜 이러지? 갑자기 불길한 기억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아, 이거 인화성 물질이다."
*인화성 물질: 쉽게 연소가 이루어지는 물질, 불이 잘 붙고 폭발 위험이 있음.
인화성 물질은 화학 물질 중에서도 고위험 물질에 속한다. 이런 물질의 경우는 휴지로 닦아내면서 발생하는 마찰에 의해서도 불이 붙을 수 있다. 그리고 함부로 물이나 기타 물질과 함께 닦아내서도 안된다.
더 이상 혼자서 처리하면 안 되는 문제였다. 먼저 주변에 있는 동료들에게 SOS를 청했다. 하지만 인화성 물질을 제대로 다뤄본 사람이 없었다. 머리를 맞대고 구글링을 한 결과, '아주 조심히 흡수하듯 누르며 닦아내야 한다'는 취급 방법을 찾아냈다. 동료들이랑 같이 구글에 나와 있는 매뉴얼대로 바닥에 흩어진 시약을 조심스레 닦아내기 시작했다.
하필 그때 팀장님이 실험실로 들어오셨다.
제길. 우리끼리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행동을 멈추고 팀장님께 상황을 보고 드렸다. 팀장님은 시약 이름을 물어보시더니 오피스로 다시 돌아가셨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돌아가신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찰나에 팀장님이 실험실로 다시 들어오셨다.
"이선임, A 물질로 닦아야 반응성이 없어진다는데?“
A 물질은 주로 인화성 물질을 약화시키는(Quenching: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강한 물질의 반응을 제거하는 과정) 목적으로 쓰인다. 그럴싸한 피드백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양을 써야 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투입해야 하는지 등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당장 A 물질을 사용해야 할지는 망설여졌다.
사고를 친 마당에 망설임은 사치였던 걸까. 이미 팀장님은 A 물질을 찾아와 바닥에 뿌리시기 시작했다. 실험실에 있던 모두가 A 물질로 흩뿌려진 시약을 닦아내기 시작했다(물론 내가 제일 열심히 동참했다).
끈적이는 시약에 액체가 더해지니 외관상으로는 더 잘 닦이는 모양이 되었다. 연구원들끼리 새로운 실험을 하듯이 깨알 디스커션까지 나눴다. A 물질이랑 이 시약이 만나면 어떤 구조일까?부터 인화성 물질을 이래서 사용하면 안 된다 등등. 그날의 사고는 농담을 나눌 만큼 별거 아닌 일이 돼 가는 듯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불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놀라 혼비백산으로 실험실을 뛰쳐나갔다. 인화성 물질에 불이 붙었다? 일단 튀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도망갈 수 없었다. 사고를 친 이상 대처도 내가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침착해야 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불행 중 다행히) 바로 옆에 소화기가 있었고, 어렴풋이 나는 기억으로 안전핀을 뽑아 분말을 쐈다. 이어서 도망갔던 동료 두 명도 다른 실험실에서 소화기를 찾아와 같이 진화를 도왔다.
천만다행으로 붙었던 불은 금방 꺼졌다. 하지만 실험실은 소화기 분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덕분에 나의 사고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버렸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실험실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이선임이 불을 냈다’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날의 사건은
모두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뒤늦게 출동한 안전팀과의 기나긴 인터뷰를 마쳤다. 회사에서 징계가 내려지겠지? 아니 혹시나 짤리려나? 정직(특정 기간 동안 출근 금지)되면 가족들한테 뭐라고 말하지? 등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오피스 자리로 돌아오니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인데도 팀원들이 모두 남아 있었다. 모두가 나를 기다린 것이다. 팀장님께서 나의 무거운 죄책감을 덜어주시고자 ‘불난 기념'으로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고깃집으로 향했다. 모두가 화재 사고를 안주삼아 맛있게 고기를 먹었다. 반면에 나는 만취상태가 될 때까지 술만 마셨다. 술로나마 그 악몽 같았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사건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동료들에게 여러 가지 위로의 말들을 들었지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그들이 이 늦은 시간까지 나 때문에 집에도 못 가고 (즉흥)회식 자리에 남아 있는 게 부담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 마음에 콕 박힌 동료의 말 한마디가 있었다.
그래. 내가 사고를 친 건 맞지만 조금은 억울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운이 안 좋았다'는 말보다 '나의 불찰만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다'라는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무엇도 나를 위로할 수 없다고 믿었던 순간에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있었나 보다.
그리고 일주일 뒤, 화재 사고 원인을 조사했던 책임님이 나를 조심히 불러냈다. 분석 프로그램 하나를 보여주시면서 작은 목소리로
“이선임이 불을 낸 게 아닌 것 같아“
라고 말씀하셨다. 분석한 테이블들을 가리키시며 결국 화재의 원인은 소량의 A 물질로 마찰을 일으키면서 처리를 했기 때문이었고, 물질 자체의 위험성보다는 닦아내는 과정이 화재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해 주셨다. 즉, A 물질을 뿌려서 닦은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다.
가슴이 철령 내려앉았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안도의 눈물이었는지 원망의 눈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사고 친 이선임'이라는 낙인이 조금이나마 흐려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함께 내가 스스로를 용서할만한 구실이 피어났다.
나는 경고장을 받고,
팀장님은 임명장을 받았다
회사에서 혹시나 징계를 내리지 않을까 매일 노심초사하던 중에 상무님께서 방으로 부르셨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다가왔구나' 싶었다. 상무님은 잔뜩 쫄아있는 내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셨다. '병 주기 전에 약부터 주는 걸까'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에 상무님께서 내 앞에 종이 한 장을 건네주셨다.
사내 경고장이었다. 징계를 내릴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되어 상무님께서 '경고 수준'으로 사고를 정리했다고 하셨다. '와.. 나 안 짤리는구나. 나 살았구나'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뻔했다. 이어서 한 마디를 덧붙히셨다.
“경고장을 받아만 본 사람이 경고장을 주려니까 기분이 묘하네. 이선임도 회사에 큰 인물이 될 사람인가 봐”
알고 보니 상무님께서도 경고장을 두 차례나 받아보신 이력이 있으셨다. 한없이 어렵게만 느껴지던 상무님이 잠시나마 가까운 동료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도 이 말씀은 나의 마음속에 부적이 되어 회사 생활의 큰 동력이 되어 주고 있다.
공교롭게 나는 2020년 4월에 상무님께 경고장을 받았고, 내달에 팀장님은 임원으로 진급하셨다. 인사발령 공지를 보고 팀장님께서 사고 당일 취중에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났다.
"이선임, 나는 이제 회사에 미련이 없다. 난 괜찮아."
어쩌면 팀장님도 나만큼 속앓이를 많이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급을 코앞에 둔 입장에서 이번 사건이 발목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마음고생했을 팀장님도 안쓰러웠고 나 자신도 안타까웠다. 그저 우리 둘 다 잘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4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사건은 나의 회사 생활의 변곡점이 되었다. 나에게 있었던 변화들 중 하나는, 상사의 지시를 따르긴 하되 내 생각을 발언할 줄 아는 배짱이 생겼다.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마음에 큰 부채감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사고 전보다 후에 내가 일을 더 열정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 이면의 동기는 '열정'이 아니라 '죄책감'이었다. 이 팀에서 사고를 쳤으니 일로서 갚아나가야겠다는 나만의 속죄 의식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사고는 여전히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아직도 뉴스를 통해 화재나 폭발 사고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초조해진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악몽'과 같이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고 현장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에 적어둔 상무님의 덕담(?)을 읽으며 그날의 기억을 각색해 본다.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