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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진 Aug 03. 2021

닭싸움 챔피언스리그

어느 날, 아빠가 아는 사람이 줬다며 닭 세 마리를 데려왔다. 토종닭이라고 했다. 아빠와 마당에 나가 쇠봉을 박고 녹색 철망을 둘렀다. 닭장이었다. 아빠는 나무를 잘라서 여닫이문도 만들었다. 

"꼬끼오!"

"꼬꼬댁 꼭꼬!"

온 집이 시끄러워졌다. 아침이면 수탉은 날이 밝았다고, 암탉은 알을 낳았다고 정신없이 울어댔다. 한때 할아버지 덕분에 날달걀을 몇 번 먹었다. 몸에 좋다면서. 계란을 삶거나 프라이를 하면 퍽퍽한 노른자보다는 탱글탱글한 흰자가 맛있는데, 날달걀은 반대였다. 흰자는 비릿했고 노른자는 고소하니 맛있었다. 하지만 닭을 키우면서부터는 그 신선한 달걀을 꺼내서 먹지 않고 곧바로 엄마에게 갔다 줬다. 닭똥이 잔뜩 묻은 달걀 껍데기를 본 뒤로 입을 댈 수 없게 됐다. 

어떤 날은 2개, 어떤 날은 3개. 알을 낳는 개수가 조금씩 늘 무렵, 아빠가 이제 닭이 알을 품게 둬보자고 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삐약삐약. 

뽀송뽀송한 솜뭉치들이 닭장을 돌아다녔다. 깃털에 얼굴과 다리만 삐져나와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한동안 매일같이 닭장을 들여다보며 눈으로 병아리를 쫓아다녔다.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닭처럼 커버렸으니까. 누가 봐도 외모는 닭인데 삐약삐약 소리를 낼 때는 솔직히 징그럽기까지 했다. 아직도 자기가 귀여운 줄 아나. 자기들도 더 이상 예쁨 받지 못하는 걸 알았는지 곧 둔탁하고 거칠게 울어댔다. 

하루는 목청이 찢어질 듯한 울음이 들려왔다. 

"에구, 나 죽네. 나 죽어!"

닭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소리가 하도 절박하게 들려서 아빠를 따라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수탉 한 마리가 털이 죄다 뽑히고 피투성이가 된 채 도망 다니고 있었다. 

"이놈들!"

성한 수탉이 세 마리가 되는 게 문제였다. 닭장에 수탉은 한 마리만 있어야 했다. 암탉과 한 마리씩 커플을 이루면 좋으련만 닭의 세계에선 이긴 놈이 다 갖는 거였다. 세 마리는 치열하게 쌈질을 했고 금세 서열이 정해졌다. 1위는 제왕처럼 닭장을 누비다 한 번씩 3위를 괴롭혔고, 2위란 놈은 1위 옆에 착 붙어서는, 수시로 3위를 쪼아댔다. 

"아빠, 쟤 죽을 것 같아요."

거의 매일같이 털이 뽑히고, 피를 뚝뚝 흘리는 서열 꼴찌 닭. 우리 가족은 불쌍한 꼴찌를 위해 닭장의 서열을 바꿔주기로 했다. 1, 2위에게는 강력한 페널티를, 3위에게는 강력한 베네핏을 제공한 다음 싸움판을 벌였다. 

먼저 서열 2위의 다리 한쪽을 끈으로 묶은 다음 서열 3위와 싸움을 붙였다. 거동이 불편해진 걸 아는 2위는 금세 꼬리를 내렸고 서열 꼴찌로 밀려났다. 내친김에 신흥강자가 된 꼴찌를 서열 1위까지 올려주기로 했다. 

"자, 이제 네가 챔피언 해봐."

"어? 어!"

서열 1위는 한쪽 다리가 끈에 묶이고도 타이틀을 내어주지 않았다. 거의 날았다고 할 만큼 높이 떠서는 뾰족한 발톱과 닭발로 도전자를 단숨에 제압했다. 도전자는 맥도 못 추고 컥컥거리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결국 1위의 두 다리를 모두 묶었다. 주최 측의 비리로 꼴찌는 디펜딩 챔피언을 꺾고 닭장 내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삼일천하였다. 

이후 1위가 된 닭은 '아빠 닭'으로 불렸다. 닭대가리 하면 흔히 머리가 안 좋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사실은 닭이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닌가 싶었다.  모이나 물을 주러, 아침에는 알을 꺼내려 아빠가 닭장에 들어가면 다른 닭들은 "꼬꼬댁" "푸드덕" 하며 도망치기 바쁜데 아빠 닭은 아빠에게 다가왔다. 아빠가 팔을 내밀거나 하면 신통하게도 애완용 새처럼 아빠의 팔이나 어깨에 내려앉아 아빠를 지그시 쳐다봤다. 닭장 밖으로 꺼내놓아도 다른 데 도망 가지 않고 강아지처럼 아빠 뒤만 졸졸 따랐다. 

"오, 자기 이뻐하는 줄 아나 봐요."

"와! 엄청 똑똑하네!"

온 가족의 칭찬 속에 수탉은 날로 늠름해졌다. 

그러나... 닭의 서열의 법칙을 무시하고 비뚤어진 사랑을 준 탓일까? 녀석은 지나치게 기고만장해졌다. 급기야는 닭장 밖에서도 제왕 행세를 하려 들었다. 아빠한테 말고는.

어느 날, 아빠에게 다가오는 동생을 본 그 녀석.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려 해?'라는 기세로 동생에게 돌진하더니 종아리를 부리로 쪼았다. 동생은 종아리에서 선홍색 핏방울을 흘리며 닭똥 같은 눈물울 뚝뚝 떨어뜨렸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기어코 넘은 그 녀석은 결국 그날 그 시로 볼 수 없게 됐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닭대가리였다. 모름지기 사람이든 짐승이든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 덧붙이자면 편애도 금물. 아빠 닭의 죽음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 우리 인간들은 그의 희생으로 거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서 잠시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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