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길게 놓고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도 될 소위 '시절 인연'에도 인간관계 유지 명목으로 이렇게 저렇게 붙잡고 더해 나가려 했다. 특히 나는 일정 부분 '착한 아이 콤플렉스' 틀에 갇혀 내면이 곪고, 끙끙거리게 했던 수많은 관계들. 그러한 인연들.
어느 순간 그러한 인연들이 일정부분은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고 조용히, 서서히. 그 관계들을 보냈고 여전히 흘려보내고 있다. 관계 자체를 위한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으며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만큼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부분 같다.
두 번째는 (부끄럽지만)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어 샀던 명품.
내가 구매욕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 다행히 명품이래 봐야 많이 사 본 경험은 없지만 결혼할 때쯤 남편에게 받은 첫 똥가방 명품백 이후로, 그 후 가방을 살 땐 명품관을 기웃거리고 구매했었던 모습에서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방의 내구성이 어떤지, 어떠한 명품원단을 썼는지를 꼼꼼히 보는 사람도 아니었다.명품관 직원이 허여멀건한 장갑을 끼고 조심히 가방을 다루어 주시는 만큼 나는 구매 후 소중히 잘다루지도 않았다. 쉽게 말해 난 그러한 명품을 소유할 만한 자세가 안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저 명품 소비가 내 소비 수준이라도 되는 양 착각했던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깨닫고 과감히 멈췄다.
덧붙여 난비싼 옷을 사봐야 드라이클리닝을 하라는 라벨도 대부분 무시하고 세탁기에 넣어 휙휙 돌리고 뽀송하게 건조기에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난 막 빨고 막 건조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드라이클리닝이 필수인 그러한 비싼 옷은 나의 생활 방식과는 사실 맞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는 물건으로 보여지는 '소비수준 부자' 말고 '진짜 부자'의 길로 가고 싶다는 목표로만 살고 있다. 스스로 정신 차린 후 타인의 시선에 휩쓸려 살 법한 소비 금액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내 통장에 말이다.그 통장은 더하기가 복리로, 어쩌면 곱하기로 변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두둑한 통장 들고 백화점 가서 물건가격에 크게 개의치 않을 정도의 소비가능 수준이 되고 나면 뭐.... 목에다가 명품이고 뭐고 주렁주렁 매달고 쇼핑해 볼까싶다.
당장은 이고 지고 언제 쓸지 모른다며 짱박아 두었던 덩치 큰 물건을 당근에다가 내어 놓아 처분되었을 때의 그 개운함을 즐긴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고, 집안의 여백의 미를 추구하며 산다. 과거에는 자주 쓰지도 않던 향수까지 화장대에게다 주~~ 욱 진열해 놓고 혼자 뿌듯해했던 시기가 있다. 당시 향수를 꼭 뿌리고 다녔던 것도 아니고 써봐야 주로 꽂힌 향수 달랑 하나인데 말이다. 어느 순간 이따금씩 쓰는 향수 하나만 남겨두고 집 밖으로 다 보내 버렸다. 향수를 시작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언제가 쓸지 모른다며 쟁여 둔 제대로 묵은 살림살이 많이 정리했다.
먼지 쌓일 것도 없고 너무 개운하다. 쌓아두지 않으니 한 번씩 물건이 집 안에 들어오는 걸 반기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은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가면 심플해 보이는 집이 왜이렇게 아늑하고 좋아 보일까? 뭘 올려놓지 않아서다. 살림살이는 뺄수록 집의 깨끗한 분위기가 더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작 더 신경 쓰고 더해야 할 건
건강, 가족과의 이런저런 따뜻한 추억, 나의 통장 잔고(feat. 통장 잔고를 불려 나갈 무언가의 노력) 밖에 없었다. 내 주먹보다도 작았던 나의 아이들의 발이 언제 이렇게 커졌나 싶을 만큼 커가고 있고, 남편의 눈가에는 주름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