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 7주차
집에 이사를 오기 전부터 가장 공들여 생각했던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침실도, 거실도 아닌 붙박이장 하나 없이 텅 빈 작은 방이었다. 가로 3.4m, 세로 3.0m의 작은 공간을 내 방으로 만들고 싶었다. 온전히 나만 쓸 수 있는 책상에, 할 수 있다면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싶었다. 아쉽게도 그 모두를 실현할 수는 없었지만, 책상은 원하는 대로 배치할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긴다면 아기자기한 책장과 작업 선반을 두고 꾸밀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셈이었다. 그랬던 작은 방의 문이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굳게 닫혀있었다. 마치 집에 없는 공간인 것처럼 스쳐 지났고, 가능한 한 잊으려 했다. 글을 다시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하지만 알고 있다. 잊을 수 없을뿐더러 계속 모른척하고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여태껏 에둘러 표현했던 '굳게 닫힌 방'에 대해 꺼내보려 한다.
이직이 잦았던 나는 종종 백수로 지냈다. 덕분에 항상 고용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인생의 보너스 같은 쉼표를 종종 가질 수 있다는 건, 때론 안정감보다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길어도 몇 개월에 그쳤던 쉼표가 운 좋게도 1년이 넘는 시간이 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마침표가 없는 백수가 되었다. 백수의 일과는 간단했다. 눈 뜨자마자 지난밤 준비해 둔 재료들로 김밥을 말았다. 남편의 출근길 배웅을 한 뒤, 눈곱도 떼지 않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숨을 들이마실 수 없는 물속, 수업 내내 팔다리를 격하게 움직이는 탓에 금세 호흡이 가빠졌다. 리듬이 깨진 날에는 배가 부를 정도로 물을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속이 편안했다. 어떤 날에는 숨 쉴 수 있는 밖보다 더. 개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광활한 자유시간이 펼쳐졌다. 여유롭게 김밥을 먹으며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남서향 집에서 하루를 보내면, 푸른 하늘부터 붉게 무르익는 모습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커다란 창 앞에 앉아 있으면 하루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아마도 내 생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웠을 그때,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한 모임에서 호기심에 썼던 소설이 끝을 모르고 길어졌다. '소설의 완성'은 하루를 낭비하듯 살아가는 백수가 붙잡기 딱 좋은 핑곗거리였다. 소설의 소재는 '꿈'이었다. 아마도 소설을 구상할 때쯤 보았던 심리학 책에서 영감을 받은 듯했다. 숙면을 방해하는 줄로만 알았던 꿈은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무의식이 전하는 메시지'라는 은유가 특히 흥미로웠다. 등장하는 인물, 배경, 사건, 작은 물건 하나까지도 무의식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했다. 지독한 악몽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고, 개꿈 따위는 없으며, 모든 꿈은 꿈꾼 이를 위한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매일 밤, 책상에 앉아 꿈이라는 시나리오를 고심해서 만드는 무의식을 상상하다 혼자 웃었다.
그리고 한 인물이 떠올랐다.
악몽을 꾸는 여자, 일상에 지친 그녀는 지독한 꿈 때문에 제대로 잠들기도 쉽지 않았다. 점점 자신을 옥죄어오는 꿈은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선명해졌다. 괴로워하던 그녀의 앞에 의문의 조력자가 등장한다. 어쩐지 그는 그녀에게 벌어지는 악몽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는 수상한 남자의 조언이 석연치 않다. 하지만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의 손을 잡는다.
라는 짧은 상상으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직업, 나이, 현실의 고통과 악몽까지- 처음 마주하는 이야기가 내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그 신기한 감각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쓸수록 복잡한 사연이 생겨났고, 이야기가 자꾸만 불어났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커다란 흐름을 발견했다. 조력자에 불과했던 수상한 남자,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그 남자였다. 그는 꿈을 매개로 여러 사람과 마주했다. 내가 주인공으로 알았던 인물도 그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끝을 모르고 커지는 이야기에 당황하다가, 또 멋대로 그가 마주친 사람들을 상상했다.
상상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았다. 기억으로 분명한 에세이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물론, 기억이 분명한 경험을 쓰더라도, 새롭게 깨닫는 경우가 있다. 몽글거리는 기억이 활자가 되면, 또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있었던 일을 쓰면서도,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에세이의 매력이다. 하지만 일어난 일은 '기억'을 벗어날 수 없다. 모든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소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소설은 미지의 세계에, 내가 만든 인물을 넣고, 타인이 되어 관찰해 볼 수 있다. 구상을 마친 사건도 종종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안중에도 없던 인물이 주인공이 되고, 갑자기 생각도 못 했던 동물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쓰고 있는 중에도 이야기는 제멋대로 변하며 움직였다. 가끔은 이야기 전체를 흔드는 거센 움직임을 마주할 때면 당황스러웠다. 나를 괴롭히려는 듯이 불쑥 솟아난 상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내 상상이 맞는 걸까? 다른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것은 아닐까? 철저하게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경계는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를 선사했다. 그렇게 기한도 없이 상상에 빠져 글을 썼다.
혼자서 쓰는 일은 고독하다.
아무리 즐겁다고 하더라도 기나긴 글을 무작정 쓰던 나는 자주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도 어떻게든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모임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쓰는 사람들을 만나고, 소설을 완성해 보겠다는 다짐을 입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독립 출판물 작가와 독자가 만날 수 있는 북페어가 그해 연말, 부산에서 열린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순간 키보드 앞에서만 발동하던 상상이 멋대로 현실을 침범해 왔다. 행사장의 책상에 앉아 내가 쓴 소설과 에세이를 올려두고, 독자와 마주하는 상상. 말도 안 되는 상상에 코웃음을 쳤다. 제대로 된 시놉시스도 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는 소설을, 6개월도 안 남은 시간 안에 완성하다니- 그것도 책으로 만들어 낸다니,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머릿속에 이상한 질문이 계속해서 떠돌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부터 하루에 4천 자씩 쓴다면? 모든 에피소드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면?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원고를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책으로 북페어에 나갈 수만 있다면…! 설렘으로 뛰는 심장과 달리 머리는 차갑게 물었다. 안락한 생활을 깨고, 무리하면서 도전할 가치가 있어? 그냥 재미로 쓰는 소설을 왜 책으로 만든다는 거야? 괜히 실패하고 좌절감만 맛보면 어쩌려고 그래?
나는 북페어 공고문을 읽고 또 읽으면서, 타협 없는 질문들 사이에서 며칠을 보냈다.
고민 끝에 나는 북페어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동전을 하늘 높이 던져 운에 맡겨보듯이, 주최 측이 결정할 참가자 선정에 맡겨보기로 했다. 참여하게 된다면 행사일까지 책을 만들어야 할 운명에 놓일 것이고, 선정되지 않는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북페어를 75일 남겨둔 날,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52일이 남은 날,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책상 하나의 절반, 0.5 부스가 이틀 동안 내게 주어질 예정이었다. 매대 위에 내 책을 올려둘 생각에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내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저 쓰고 싶다는 작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엄청난 일을 스스로 벌여놓은 꼴이었다. 나는 거대한 행사의 호스트가 되어, 게스트를 맞이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꼭 앉고 싶었던 자리에 어쭙잖은 내가 앉게 된 것이다.
하루 종일 작은 방의 책상 앞에 매달렸다. 집에서 집중이 안 될 때면, 가까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 시간… 시간이 모자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는 아홉 개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퇴고를 거친 에피소드부터, 생각만 겨우 나열한 초고까지 정신없이 펼쳐져 있었다.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도무지 잠들 수 없었다.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였던 걸까?
여유도 없이 마감 기한이 정해진 순간, 다시 한번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를 절감했다. 기억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지어진 에피소드는 견고했다. 에세이를 퇴고할 때면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글 전체의 흐름이 틀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은 달랐다. 상상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유한한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자연재해와 다름없었다. 불쑥 솟아난 상상에 지반이 흔들리고 쌓아뒀던 흐름이 무너져 내리는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경계를 알 수 없는 상상에 휘둘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매일 한계에 부딪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감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소설의 마감이 어떻게 가능한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기에도, 참고할 책을 찾기에도 전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아홉 개의 에피소드를 껴안고 헤매고 있었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꺼질 듯 흔들리다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