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마감

아티스트 웨이 8주차

by 리을
손실을 극복하려면 일단 그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아픔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드러낸 적이 거의 없기에 고스란히 창조성을 가로막는 상처로 남아 성장을 방해받는다. 그 일은 너무 아프거나 너무 바보 같아서, 혹은 굴욕적이라고 여겨져 나눌 수가 없어서 안으로 곪는 것이다.
- 아티스트 웨이 217p -


D-day, 브런치 북 프로젝트 응모.


오랜만에 마주하는 글쓰기 마감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해 둔 원고를 발행하고, 마지막으로 퇴고하고 싶었에세이 원고 앞에 섰다. 활자를 읽어주는 앱으로 단단하고 깊은 음색의 여자 성우를 택했다. 그녀가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작은 방 가득, 내가 쓴 글이 맑게 울렸다. 불안에 떨면서도 어떻게든 소설을 써냈던 나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던 내가, 소리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벌써 네 번째 퇴고를 치고 있는 글은 친숙하고도 낯설었다. 자잘한 오탈자를 고쳐내고 나니 더는 손대고 싶지 않았다. 부족했지만 충분했다.


바로 에세이 분야에 하나, 소설 분야에 하나를 응모했다. 간단한 클릭 몇 번으로 응모는 허무할 정도로 금세 끝났다. 시간은 대략 오후 12시. 미뤘던 장을 보고, 충동적으로 친구를 만나러 갔다. 여유로운 마감, 어쩐지 자꾸만 아등바등했던 지난 마감이 떠올랐다.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달라 보이는 두 번째 마감은 첫 번째 마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까.


글쓰기에서 한껏 달아났던 나는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잠든 아티스트를 깨우는 시간'이라는 에세이를 쓰고 있다. 책에 이끌리듯 풀어내고 있는 글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불안에 떨면서 어떻게든 소설을 완성하려다 난 생채기, 그 소설을 외면하다 스스로 만든 자국, 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다 채 아물기도 전에 터져버린 상처까지, 내내 어두운 곳에서 묵혀두었던 상처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쓰는 내내 첫 번째 마감을 넘어 만들어진 소설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다시 쓰고 있는 나는 어째서인지 쓰지 않았던 나날을 자꾸만 종이 위로 불러냈다.


한 걸음씩 내딛듯이 글을 쓰다, 7주 차 '굳게 닫힌 방'에서 둘러 표현했던 상처에 대해 쏟아내 보기로 했다. 호기로운 마음과 달리, 문장 하나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예상보다 큰 상처가 깊숙한 곳에 있었다. 제때 봐주지 않아 곪아있는 상처를 발견하고는 문득 겁이 났다. 자꾸만 무거워지는 이야기를 보고, 읽는 사람들이 달아날까 봐 걱정스러웠다. 긴 호흡을 일부러 짧게 줄이고, 중간중간 생략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상처를 꺼내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가벼울 수 없었다. 아니, 가벼워서는 안 된다. 쓰는 나에게도, 읽는 누군가에게도, 가볍게 전달되고 싶지 않았다. 지난 2년간의 기억이 만개가 넘는 글자로 나타났다. 잔뜩 날 선 글자들을 깎아내다 보니, 칠천여 남짓의 글자가 남았다. 그렇게 '굳게 닫힌 방'은 두 회차로 나누어 연재했다.


구구절절 상처에 관해 쓰다가, 문득 잔뜩 쌓여있는 소설책 박스에서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나를 위해 여태껏 한 권의 책도 허락하지 않았다. 야속하기도 하지. 그래서였을까? 손안에 들린 책 한 권이 어떻게 이토록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까? 가만히 바라보며 괜히 표지 위를 매만졌다. 제목을 정하려 고민했던 날, 기꺼이 표지를 만들어준 친구가 몇 가지 안을 내게 선보였던 날, 표지에 담을 소개 문구와 가격을 고민하느라 또 다른 친구에게 상담했던 날까지, 겉면만 쓸어내도 잊은 줄 알았던 날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용기를 내 소설책을 펼쳤다. 그 용기가 무색하게 프롤로그의 첫 문단은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도무지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첫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 읽어내려는 나를 붙잡고, 그냥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다. 2년 전에 마친 글을 헤집고 싶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 이 세계관을 벗어난 나는 제목조차 생소한 독자였다. 그곳에 연필을 들이대봤자, 다시 이 책의 작가가 될 수는 없었다. 참지 못하고 손대는 순간, 그저 악성 댓글을 다는 독자에 불과할 것이다. 부끄러움을 꾹 참고 첫 문단을 넘어섰다. 또 두 번째, 세 번째 문단을 넘었고, 어느새 프롤로그는 끝나 있었다. 희미하게 이야기를 향한 문이 나타났다. 볼품없이 보여도 엄연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작은 문, 그 문이 나를 불렀다. 내친김에 첫 번째 에피소드까지 쉼 없이 읽었다. 읽는 내내 두 입술을 말아 깨물다, 미소 짓다 또 입술을 깨물었다. 생소하고 아련하고 또 자꾸만 간지러운 기분에 애꿎은 입술만 옴싹거렸다. 오묘한 그 느낌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독자일 수도 그렇다고 작가일 수도 없는 지금의 내가 빚어낸 복잡한 감정이었을 거라 짐작만 해볼 뿐이다.


역시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창피했지만 읽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지 않았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읽을 만했다. 혼자만의 추억으로 남겨두기엔 아쉬웠다. 소설을 마음껏 휘갈겨 쓰던 나는 사라졌지만,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은 욕구는 살아남아 있었다. 역시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좋겠다. 보여지길 원하는 마음, 그 마음도 작가의 일부는 아닐까? 마침 우연히도 브런치 북 프로젝트까지 두 달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원작의 흐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고치고, 브런치에 연재한다면 응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마감과 함께, 다시 내 소설을 읽고 다듬어 보여주는 작가가 되었다. 부족한 묘사를 고쳐내고, 반복되는 장면을 덜어냈다. 대사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회수하지 못했던 떡밥을 지웠다. 연재를 위해 다시 소설을 다루며 느꼈다. 첫 소설로 감히 상상도 못 할 분량으로 써냈던 나는, 그 열정만큼은 부끄럽지 않아도 될 정도로 뜨겁고 단단했다는 것을.


어느새 쓰는 일이 일상에 자리 잡았다. 연스레 작은 방을 드나들며 틈나는 대로 쓰고 고쳐냈다. 그리고 쓰는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불쑥 방 밖으로 뛰쳐나가 남편을 붙잡고 떠들었다. 재미있지만 쉽지 않다는 글쓰기에 대한 푸념, 제법 읽을 만했던 내 소설에 대한 감상과 나를 괴롭혔던 깊은 상처까지. 어린아이처럼 혼자 재잘거리며 웃다 또 울었다. 글자로 다 쏟아낸 줄 알았던 감정이, 입 밖으로 나와 공중에 흩어졌다. 흩어진 소리가 다시 귓가에 맴돌고, 상처는 숨길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눈앞에 또렷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욱신거리고 쓰라린 통증을 어떻게 감추고 있었던 걸까. 가여운 마음에 눈물 흘리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버려뒀다.


아무도 찾지 않는 소설을 다시 꺼내고, 궁금해하지 않는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는 없다.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쓰지 않고서는,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잘 보이는 곳에서 소독하고 약을 바르며 지켜봐 줄 수 있다면, 단단한 딱지 안에서 자라날 새살을 기다려 볼 수 있다. 비록 새살에는 사라지지 않을 흉터가 남게 되더라도, 딱지를 벗어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언젠가는 의식도 못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내 일부가 되어있겠지. 아픔으로 남은 마감이 두 번째 마감의 자양분이 되었듯 말이다. 다가올 다른 마감들도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