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쓰고 싶은 이야기

아티스트 웨이 9주차

by 리을
예술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 과정은 당연히 재미있어야 한다. 여정이 곧 유일한 도착지다. 창작 작업은 결국 시간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창조적 놀이다. 이 놀이의 중심에는 신비로운 즐거움이 자리 잡고 있다. - 아티스트 웨이 253p -


내 전공은 건축학이다. 굳이 ‘건축학’이라고 밝히는 건, 직업병에 가깝다. 설명 없이는 도무지 넘어갈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냥 건축이라 부르는 전공은 건축공학과와 건축학과로 나뉜다. 쉽게 말하자면 공학은 건물을 짓는 일이고, 학은 지어질 건물을 설계하는 일이다. 나는 건축학과에 5년 동안 있었고, 13년 가량 관련된 일로 돈을 벌고 있다. 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건축 언저리에서 보내고 있지만, 애정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외려 언젠가는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탈건의 마음만 키워왔을 뿐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기회만 된다면 뒤도 보지 않고 훌쩍 떠날 자신이 있다.


그런 내가 글을 쓸 때 건축에 관해 쓰고 싶지 않았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잠시라도 ‘탈건’하고픈 마음에 펜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넓고 이야기는 많았다. 굳이 종이 위에까지 싫어하는 일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피했다. 아니, 냉정하게 딱히 남기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다. 그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한 일에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저 매일 최선을 다해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며, 다른 생각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


아주 가끔 직장 생활 이야기를 쓸 때도 있었다. 대신 ‘건축’이라는 글자는 탈탈 털어내고, 사람과 있었던 에피소드만 건져내 담았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인연을 맺고 또 끊을 수밖에는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게 싫을 정도로 미워했던 사람도 있지만, 멀어져도 서로 안부를 물으며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도 생겼다. 다행히 내게는 그런 인연이 몇 명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중의 한 사람과 만났다. 그는 전 직장 상사로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일 이야기를 함께 했던 사람이다. 서로 다른 회사에 다닌 지 벌써 몇 년이나 흘렀지만, 만나는 게 낯설지 않았다. 오랜만이라 더 반갑게만 느껴졌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일 이야기를 할 때,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대화가 훨씬 수월하다.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차, 관계, 원칙과 변칙까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개운치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라면, 말없이 본론부터 꺼낼 수 있다. 그런데 눈앞에 앉은 사람이 등을 맞대고 함께 수년간 일을 했던 사람이라면? 첫 마디에 하고 싶은 말 모두를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끔 그의 첫마디 말에 눈치채는 것처럼.


담아뒀던 이야기 몇 개를 꺼내니 금세 배가 불렀다. 둘 다 술을 즐기지 않는 터라 2차로 갈 카페를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약속 장소가 대학교 캠퍼스 근처였다는 게 떠올랐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밤. 어쩐지 커피보다 산책이 끌렸다. 그렇게 선선한 바람에 이끌려 캠퍼스 후문을 넘었다.


가로등이 켜진 캠퍼스는 이름 모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운치가 있었다. 사그락거리는 발소리와 불빛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지만, 주변을 거니는 학생들 덕분에 적막하지는 않았다. 어쩐지 자꾸 대학생 때가 떠올랐다. 함께 걷던 상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다. 이야기가 자꾸만 이십여 년도 더 지난 곳으로 흘렀다. 그리고 나보다는 더 감상에 젖은 상사의 옛이야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건축학과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는 과정, 연고도 없는 곳에서 직장을 잡고 또 옮기기까지. 무수한 우연과 인연 속에서 선택이 그를 이 자리에 서 있게 했다.


한 사람의 생애가 그리 애틋하게 들린 적이 또 있었을까.


듣는 내내 먹먹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려다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쉬워 내버려뒀다. 잊고 싶지 않았다. 메모하고 녹음하고 싶은 무례한 마음을 접어두고, 그 순간에 머물렀다.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 따뜻한 색감의 가로등 불빛 아래로 연신 기분 좋은 바람이 스쳤다. 어느새 고즈넉한 의자에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 동안 듣고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웃음이 섞이고, 또 가끔은 아련함이 묻어나는 순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상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 앉자마자 메모장 앱을 열었다. 가슴이 간질해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뭐라도 적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의미도 모를, 떠오르는 말을 한참 적어내다 한 문장과 마주했다.


꼴도 보기 싫었던, 아니 취급도 하기 싫었던 나의 건축 이야기가 못 견디게 쓰고 싶어졌다.


어째서일까?


‘건축’이라는 글자만 같을 뿐, 그의 이야기에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함께 일할 때도 그랬다. 고비를 넘기기 위해 순간을 견디는 나와 다르게 그는 열정적으로 문제에 앞장섰다. 마음가짐도 능력도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사람. 그런데 어쩐지 자꾸만 그의 이야기에서 내가 비쳤다. 학교를 도망칠 정도로 싫어했다가, 결국 전공으로 돈을 벌고, 지금은 그 언저리에서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 그 지리멸렬한 일상에도 아련하고도 먹먹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라고, 자꾸 묻게 된다. 어쩌지- 슬라임처럼 말랑해진 호기심이 또 멋대로 움직인다. 금기처럼 여겼던 단어에 신비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이 스친다.


언젠가.

지금은 아닌, 그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


깊은 밤, 선선한 바람 아래서 그가 그랬듯-

이야기하듯 담을 수 있다면, 그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