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걸음, 내일의 한 문장

아티스트 웨이 11주차

by 리을
운동은 우리가 자신의 힘을 의심하는 상황에서도 그 힘을 불러내 준다. 창조적 프로젝트가 우리를 좌절시킬 때 모든 것을 포기하는 대신, 우리는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는 법을 배운다. -아티스트 웨이 302p-
운동은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라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실현하거나 실행에 옮기는 행위”다. -아티스트 웨이 304p-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던 오른발을 멈추자, 차창 밖의 풍경도 멈춰 섰다. 차 문을 열고 왼발부터 땅을 내디뎠다. 뒷좌석에 있는 가방과 외투를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여느 때와 같은 퇴근길, 회사에서 나올 때 가벼웠던 발걸음이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두 발로 내 몸을 지탱하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졌다. 오른발의 까딱거림으로 시속 100km를 움직이다 멈춰서 그런 걸까. 주차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짧은 길이 멀고도 험했다.


가까스로 도착한 집. 분명 달리는 차 안에서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하지만 걷는 것도 버거워진 나에게 그 모두는 순식간에 뒷전이 되어버렸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가방과 외투를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멍하니 서서 커다란 창을 바라본다. 부쩍 추워진 날, 서쪽으로 지는 해가 집안 깊숙한 곳까지 마중 나와 있다. 훈훈한 공기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커다란 창 바로 밑에는 폭신한 이불이 펼쳐져 있다. 하루 내내 따끈한 햇살에 구워진 이불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다. 노곤함에 취해 허우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럴 수는 없다.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 내려놓았던 외투를 다시 집어 들었다. 뭉그적거리며 안방에 있는 옷장 앞에 섰다. 옷장을 뒤적이다 짜증이 불쑥 솟구쳤다. 이럴 때는 옷 하나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가까스로 움켜쥐고 있는 마음을 내던지고 싶었다. 다행히도 인내심이 끊어지기 전에 찾아냈다. 얇은 긴팔 티셔츠와 움직임이 편한 바지를 입었다. 두께가 있는 바람막이를 걸치고, 목이 긴 양말을 골라 신었다. 서랍 구석에서 러닝 벨트를 꺼내 들고 헤드셋을 썼다. 현관으로 향하려다 거실에 멈춰 섰다. 다시 그 안락한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 같은 풍경을 두고, 나갈 생각을 하니 몸이 움츠러들었다. 쌀쌀한 바람이 끊임없이 이마를 두드릴 것 같고, 콧구멍으로 파고든 찬 공기가 갈비뼈 속을 휘저어 놓을 것만 같았다.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까딱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순간, 매번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해 '포기'라는 달콤한 도파민을 맛봤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아니어 한다.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옷장 앞에 섰다. 이마가 걱정이라고? 모자를 쓰면 된다. 찬 공기가 갈비뼈를 어쩐다고? 마스크를 쓰면 그만이다. 후다닥 장비를 착용하고 거실을 다시 가로질렀다. 이럴 땐 그냥 재빨리 몸을 움직여야 한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할 테니' 하는 그런 뻔뻔함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대꾸도 없이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나는 가까스로 현관 앞에 섰다. 서늘한 공기에 옆구리가 움찔거렸지만, 모르는 척 운동화에 발을 욱여넣었다. 눈을 질끈 감고 집을 벗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나긴 과정 끝에 나는 찬 바람 앞에 우뚝 섰다. 다행히 바람은 매섭지 않았다. 언제나 상상 속의 고통이 더 큰 법. 가만히 있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흥겨운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팔다리를 쭉쭉 뻗어냈다. 분명 하루 종일 움직였는데, 가벼운 스트레칭에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살살 달래가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움직임을 이어갔다.뻣하던 몸이 살짝 유연해진 기분이 들 때쯤, 앱으로 달리기 프로그램을 고르기 시작했다.


발목 부상으로 두 달간 깁스를 하고, 또 두 달간을 조심스럽게 지냈다. 덕분에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몸을 쓰는 감각도 잊어버렸다. 등산하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때가 아득하게만 느껴질 정도로. 짧은 고민 끝에 20분간 퐁당퐁당 달리는 프로그램을 '오늘의 훈련'으로 골랐다. 5분간 달리고, 2분간 걷고, 다시 달리기를 네 번 반복하면 E.N.D! 그 정도면 해볼 만했다.


띠, 띠, 띠!


출발 신호음과 함께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기울어진 만큼 두 발에도 힘이 실렸다. 흥겨운 음악은 이 순간 빛을 발한다. 바닥을 박차고 찬 바람을 가르고, 드럼 소리에 맞춰 나가는 걸음이 상쾌했다. 아주 가끔은 날아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얼마 가지 못한다. 길어봐야 10분, 짧게는 몇 발짝 만에 선명한 감각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상쾌한 기분을 삼키고, 흥겨운 음악 소리를 뒤덮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 욱신거리는 어깨, 쉴 틈 없이 오락가락하는 흉통 그리고 곧 터질 것처럼 고막을 울리는 심장 소리까지- 온몸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턱끝까지 차오른 숨에 누군가가 외쳤다.


'멈춰!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몇 번이나 주저앉고 싶은 걸 참으며 뛰고 있는데! 무심한 누군가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만두라고 칭얼거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멀쩡히 잘만 움직이던 몸이 곳곳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감각의 홍수 속에서, 그냥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디뎠다. 달리는 매 순간 그랬다. 처음 장거리 달리기에 도전했을 때도, 쉬지 않고 30분을 뛸 수 있게 되었을 때도, 10km 마라톤을 한 시간 십일분이라는 기록으로 완주했던 때에도, 온몸이 내지르는 비명이 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달리는 그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고, 당장 멈추라는 목소리가 끈질기게 뒤따라왔다.


아직 까마득히 남은 오늘의 훈련, 주먹을 고쳐 쥐고 끈질긴 목소리에 답했다.


할 수 있어.

'아냐, 못 해. 오늘은 못 한다니까.'

할 수 있어.

'진짜야. 엄살이 아니라고. 허리도, 무릎도 아파.'

그럼 더 천천히 뛰자.

'안된다는데 왜 자꾸 그래!'

아니, 해봤잖아. 몇 년 동안 수도 없이 해왔잖아. 그때마다 힘들었고, 불편한 감각을 느꼈어. 하지만 속도를 줄이거나, 잠시 걷다가 다시 뛰면 할 수 있었어. 아무리 우겨도 안 믿어. 지금까지 완주했던 그 경험들을 나는 믿어.


악을 쓰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러자 다시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쿵쿵! 쿵쿵! 신나는 리듬에 맞춰 한 발씩 땅을 밀어냈다. 나의 달리기는 책의 묘사처럼 우아하지 않다. 달리면서 날아오르는 새의 움직임을 포착할 여유도 없고, 아이디어를 얻거나 무언가를 생각할 정신은 더더욱 없다. 어떻게든 주저앉고 싶은 나를 달래고, 조금이라도 견뎌보려 이를 악물었던 기억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나 더 많이 달리면, 기꺼이 그리고 여유롭게 뛰고 싶어질까? 지금의 나는 그런 순간을 상상할 수도 없다.






모닝 페이지를 쓰는 일도 비슷하다. 아침마다 힘겹게 눈을 뜨고는 '기꺼이'가 아니라 '마지못해' 책상 앞에 앉는다. 억지로 펜을 부여잡고, 노트에 무어라 휘갈겨 쓴다. 그렇게 한 쪽을 채울 때쯤이면, 달아나고 싶다. 그런 나를 다시 붙들고, 억지로 세 쪽을 꾸역꾸역 채워 넣는다. 한 편의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문득 떠오른 영감에 신이 나서 쓰다가도, 달아나고 싶은 순간은 매번 찾아왔다.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완성해도 쓸모없을 것 같은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달리는 순간처럼, 쓸 때마다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을 억지로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어쩌면 나는 달리는 순간마다, 글을 쓰는 순간마다, 주저앉고 싶은 마음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내게는 '경험'이 있다는 것. 어떻게든 견뎌내고 나아간 그 경험들이 사라지지 않고 쌓여, 다시 할 수 있다고 대꾸할 증거가 되어준다.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한 문장을 북돋아 줄 거라 믿고 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억지로 하루를 채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