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 10주차
명성을 쟁취하고 유지하려는 욕망은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다시 말해,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보다 자신이 지금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중한다. 일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일 자체다. 그런데 명성은 이러한 인식을 방해한다. 연기자는 연기 자체보다 유명한 배우가 되겠다는 목표에 집착한다.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보다 출판해서 널리 인정받겠다는 목표에 집착한다. - 아티스트 웨이 279p -
글을 쓰면서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독자는 남편이다. 요즘 말로 T 성향(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중시하고, 사실에 기반한 문제 해결을 선호하는 특성)을 지닌 그는 빈말에 서툴다. 한창 소설을 쓸 때도 그랬다. 틀린 글자에 밑줄을 긋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개선할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여러모로 미숙했던 나는 그의 말을 제안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날 선 비판이자, 재미없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핀잔으로 들렸다. 혹독한 마감 앞에서 고독했던 나, 내게는 그런 말이 아니라 거짓말 같은 칭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억지로 뱉는 그의 거짓말을 듣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소설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다시 글을 쓰는 요즘, 남편은 내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청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명쯤은 있었으면 했다. 매주 발행하는 글에 무조건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이, 곁에서 '좋아요' 좀 눌러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대수롭지 않게 부탁을 받아들인 그. 그는 발행된 에세이 몇 편을 읽더니 내게 말했다.
“잘 썼네. 근데 글이 길게 느껴져. 좀 짧게 써보면 어때?”
2년여 만에 만난 독자는 여전했다. ‘잘 썼네’ 한 마디 붙여놓고, ‘근데’라는 부사 뒤에 본심을 말하는 사람. 그의 이 핀잔 같은 제안은 처음 듣는 말이 아니었다. 퇴고 중인 소설을 읽을 때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너무 길다, 전개 속도가 느리다, 반복이 많다, 압축하면 좋겠다.' 등 냉정한 독자의 말이 가슴께를 파고들었다.
근래 브런치에서 읽었던 글을 떠올려봤다. 확실히 문장이 짧고 경쾌한 느낌까지 들었다. 삽입된 이미지를 바라보며 스크롤을 내리면, 어느새 끝나 있는 이야기.
'진짜 너무 긴가? 요즘 사람들이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지….'
독자일 때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하얀 종이 위에 글자로 빼곡한 책을 펼치면, 읽기도 전에 눈이 따가웠다. 어쩌다 스크롤이 긴 페이지라도 만나면, 미련 없이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영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 보기는 상상도 못할 일이 되어버렸고, 영화 한 편을 보려면 굳은 다짐이 필요한 요즘. 나도 그러했다.
문득 내가 관심에도 없는 이야기를 길게만 쓰는 사람 같았다.
어쩌면 나조차 읽기 힘든 글을 지루하게 써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백 개가 넘는 글을 발행하고도 작은 숫자의 구독자와 낮은 조회수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브런치 홈에는 글 몇 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가가 수도 없이 많다. 구독자가 세 자릿수를 넘는 작가, 짧은 글과 그림으로 재미를 주는 작가, 독특한 경험으로 마음을 울리는 작가. 깊은 밤하늘, 쏟아질 듯이 빼곡히 매달린 별처럼 매력적인 글이 넘쳐나 보인다. 염탐하듯이 드나들다 보면 내 것이 아닌 모든 게 멋져 보였다. 심지어 구독자가 작으면 작은 대로 멋지다고 생각하다니- 우습다. '명성'이라는 욕망은 어디까지 침투한 걸까?
복잡할 땐 과거를 떠올려 본다.
처음 '글'이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썼던 나의 모습은 어땠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했던 그때. 심란한 마음을 파헤치려 가감 없이 속마음을 휘갈겨 쓰고, 나를 채근하고 또 위로하는 방법으로 글을 썼다.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마음을 쓰고, 쓰면서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 지루하게 읽히더라도 상관없었다. 아니, 사실은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다. 글은 쓰는 행위에 생겨난 결과물일 뿐이었다. 소설을 쓸 때도 다르지 않았다. 호흡이 길고 읽기 지겨울 정도로 전개가 느리더라도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쓰고 싶었다. 이름이 없는 내게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마구 채워 넣고 싶은 마음을 놓고 싶지 않았다.
명성이라는 마약이 침투하면, 얼른 이젤이나 타자기, 카메라나 점토 앞으로 가라. 도구를 집어 들고 창조적 놀이의 즐거움에 빠져들어라. 그러면 명성이라는 마약은 금세 힘이 빠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마약을 해독할 치료제는 창조적 노력뿐이다. 창조적 즐거움에 빠져들다 보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게 된다.
- 아티스트 웨이 280p -
그래도 짧은 글이 부럽다고? 가볍게 써보고 싶다고?
그럼, 그렇게 쓰면 되잖아!
마침, 요즘 휴대전화 속 갤러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안부를 살피게 되는 도마뱀, 레미.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레미가 우리 집에 온 지 두 달이 넘었다.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가 신비로웠다. 눈꺼풀이 없어서 긴 혀로 눈알을 닦는 녀석. 살아있는 게 의심될 정도로 멈춰있다가도 순식간에 날아오르듯 점프를 하는 녀석. 틈날 때면 가만히 바라봤다. 볼수록 나와 얼마나 다른 생물인지 느끼게 된다. 하루하루 새로운 녀석의 이야기라면, 나도 짧고 가볍게 쓸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툭- 하고 제목이 먼저 떠올랐다. 표지는 제목에 맞춰 별이 반짝이는 까만 하늘에 도마뱀의 실루엣이 두둥실 떠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금세 이미지를 만들고, 단숨에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하는 브런치북을 열었다. 사진 몇 장을 골라 후다닥 첫 화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놀듯이 쓰자고. 복잡한 이야기는 다 던져두고,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순간을 기록하는 용도로만 쓰자고, 웬만하면 퇴고도 하지 않기로, 그렇게 마음먹었다. 후루룩 써낸 이야기를 발행하는 순간, 가슴 속 헛헛함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직 내가 왜 쓰고 싶은지 모르겠다. 나는 커다란 목적도 없이 그때그때 욕구에 따라 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쓰고 있었다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썼던 시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생각이 아닐까? 지루하도록 길게 쓰는 순간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고 믿고 싶다.
'잠든 아티스트를 위한 시간'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살아가던 내가, 어떻게든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애쓴 흔적일 뿐이다. 책을 읽고 쓰는 행위로 회복하고 싶었다.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일'은 어떻게든 지치지 않고 하루하루 써내려 가는 것이다. 그 외의 나머지는 덤이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 전보다 늘어난 구독자, 덮어 뒀던 내 소설을 밖으로 꺼내고, 주변에 다시 글을 쓰고 있다고 알리는 일까지- 그 모두는 쓰는 행위를 뒤따라온 즐거운 덤일 뿐이다.
다시 명성 중독이 덮쳐올 때면, 집에 있는 귀여운 레미를 바라보며 가볍게 툭툭- 털어버리자.
그리고 아침마다 모닝 페이지를 쓰고, 매주 세 편의 글을 발행하자.
냉정한 독자 앞에서는 제멋대로 쓰는 철면피 작가로 남도록 하자.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