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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May 15. 2023

쓰지 않은 날

쓰고 싶은 마음을 부르기

하루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어렵다. 어제와 그리 다른 것 같지 않은 오늘이라 어렵고, 또 구분 지으려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떤 이름도 가능하지만, 또 가능성이 너무 많아 곤란해진다. 특히 정답도 없는 주관식이라 움츠러든다. 이쯤 되면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돌아봤을 때 뭘 했는지 까마득한 하루들을 숱하게 보내고 나면 달라진다.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땐 대조되는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쉽다. 평일과 주말, 비 오는 날과 맑은 날, 약속이 있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처럼. 조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다면, 지키고 싶었던 일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다. 집밥을 먹은 날과 배달을 시킨 날, 책을 읽는 날과 표지도 보지 않은 날, 운동을 한 날과 마음만 헬스장에 보낸 날처럼. 요즘의 나는 소설을 쓴 날과 쓰지 않은 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쓰지 않은 날로 많이도 채웠다. 5월에 결혼하는 두 친구의 청첩장을 받았고, 오랜만에 여섯 명의 친구와 밤새 수다를 떨었다. 만화카페에서 몇 시간을 뒹굴뒹굴하고, 새벽 5시 반에 시작하는 온라인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친구와 몇 달 만에 만났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 공원을 걸으며 쉼 없이 이야기 했다. 주말이면 산에 올랐다. 백양산, 금정산, 장산, 시루봉, 영축산까지 부지런히도 땅을 밟았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여행했다. 무려 8박 9일간의 서울 여행. 남편의 서울 출장과 강남에서 하는 친구의 결혼식이 한 주에 걸쳐져 있었다. 고민 끝에 교육받는 5일 동안은 남편과 함께 보내고, 나머지 3일은 친구 집에서 보내다, 마지막 날 결혼식을 보고 준비된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것으로 정했다. 제일 작은 캐리어를 열고 짐을 꾸렸다. 우선 읽고 싶었던 책 세 권과 필요한 옷가지를 챙겼다. 그러다 문득 북한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설득해 등산화, 등산복도 넣었다. 글을 쓸 수 있도록 노트와 탭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혼식에 갈 옷도 넣어야 하는데, 도무지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옷, 가방, 구두를 넣어 친구 집으로 택배를 보냈다. 어깨에 무거운 백팩을 메고, 그에 못지않게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등산 스틱을 한 번 더 둘러멨다. 욕심만큼 늘어난 짐을 포기하지 못했고 한가득 짊어지고 기차로 향했다.


높고 커다란 공간에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우중충한 하늘이 보이는 유리창 쪽 '서울역'이라는 글자가 거꾸로 보였다. 어쩐지 간질거리는 느낌이 피어난다. 짐을 싸는 중에도 실감 나지 않았던 '여행'이 서울역이란 글자에 살아났다.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계획이 없는 여행의 묘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남편이 맛있게 먹었다는 어복쟁반을 시켜,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따뜻한 육수가 찌릿한 속을 달래준다. 낯선 공간에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보내는 소중한 사람과의 식사 시간. 이미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았다. 나머지 순간은 행복한 덤이었다.


비가 온 뒤의 북한산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질척이는 땅, 깎아지르는 듯한 암벽에 기어가듯 올라가야 하는 정상, 콧물이 줄줄 나올 정도로 매서운 바람 그 모두를 웃고 넘길 만큼 좋았다. 걷는 내내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연둣빛 나뭇잎이 반짝이고, 젖은 숲에서 시원한 향이 풍겨 나왔다. 날 좋을 때 다시 오르고 말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카페에 들렀고, 크라임씬 방 탈출 카페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재즈바에서 베이스 기타 소리에 뭉클하다 심장을 두드리는 드럼 소리에 언젠가 꼭 드럼을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몇 년 만에 방문한 놀이동산에서는 아홉시간 넘도록 어린아이처럼 놀았다. 달달했던 5일이 순식간에 흘렀다.


고양이 세 마리가 살고 있는 친구 집에 도착했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자니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고르릉 거리는 소리에 나도 한껏 나른해졌다. 출근하는 친구를 배웅하고 고요한 집 안에 있자니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쉬웠다. 고민하다 결국 가방을 챙겼다. 작은 노트 하나랑 펜 두 개, 지갑, 물이 가득 담긴 500ml 생수병 하나를 넣었다. 햇살이 따갑도록 맑은 날, 일면식도 없는 동네를 무작정 걸었다. 지도에 보이는 작은 동산을 오르다 평상에 앉았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다니는 어르신, 선생님 손을 잡고 산책 나온 유치원생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는 아주머니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노트를 펼쳐 몇 글자 끄적이다 덮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친구의 집이 있던 동네는 은평구 끝자락이었다. 조금만 걸으면 경기도 고양시로 넘어갈 수 있는 곳. 40여 분을 걸어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에 도착했다. 운 좋게도 문화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약 50만 평의 규모로 조성된 이곳은 조선 왕가가 묻혀있는 곳이다. 1469년 예종의 능을 조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숙종과 그의 비를 포함하여 다섯 개의 능과 원, 묘가 있다. 한시간 반정도 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굴곡진 삶의 이야기도 오백 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땅 밑에 있을 뿐. 햇살에 반짝이는 잔디로 둘러싸인 묘가 아름답다. 왕이 걷던 어로를 따라 걷자 하얀 모래에 사박거리는 발소리가 퍼진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다시 한참을 걸어 다시 은평구로 돌아왔다. 가볍게 샌드위치를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구산동 도서관 마을'이라고 적힌 작은 표지판을 발견했다. 네모난 창이 귀엽게 뚫린 건물 사진에 호기심이 생겨 그곳으로 향했다. 큰길에서 골목골목으로 들어가기를 몇 번, 커다란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전체에 독특한 느낌이 돌았다. 계단이 여러 방면으로 나 있고, 한 층의 윤곽을 단번에 알기 어려웠다. 마치 골목길처럼 복잡하게 느껴졌다. 바닥이나 벽의 재질도 통일되지 않았다. 어떤 면은 새로 만든 것처럼 매끈했고, 다른 부분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구산동 골목에 모여 있던 여덟 채의 집을 도서관으로 만든 곳이었다. 그래서 오래되어 보이는 벽돌 무늬의 벽과 하얗고 매끈한 콘크리트 벽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오묘한 공간 아래 구석구석 사람들이 많이도 앉아 있었다. 맨 위층에서 아래를 바라봤다. 네모난 창에서 노을빛이 들어오고, 공간을 쓰는 사람들을 비췄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도서관, 그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끝까지 쓰는 용기'라는 책을 만났다. 아늑한 구석에서 몇 장을 읽었다.


쓰지 않은 날이란 이름 아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신나게 놀고 돌아와 보니 '쓰지 않은 날'이라고 굳이 부르려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분명 낯선 곳에서 글을 써보고 싶은 로망도 함께 가져갔던 것 같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혼자 남겨진 시간에 몇 번 노트를 펼치고 카페에서 또 친구 집에서 탭을 열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나를 가로막는 이유가 생겨났다. 유난히 좋은 날씨가 밖으로 불렀고, 상냥한 고양이가 자꾸만 손에 얼굴을 비볐다. 결국 싱숭생숭한 마음에 몇 글자 쓰지 못하고 접었다. 그냥 눈앞의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많이도 만났고, 하고 싶다 생각만 했던 일을 해냈다. 매일 밤- 손을 잡고 기꺼이 데이트했고, 친구의 소중한 순간에 함께 했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맛보고, 새로운 곳을 눈으로 담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남편의 생각, 몰랐던 친구의 사정, 관심도 없었던 역사, 전혀 관련 없던 동네의 도서관이 만들어진 이유가 마음에 들어왔다. 문득 손가락 끝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익숙한 책상에 앉아 주식 책 두 권을 받침대로 놓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싶어졌다. 끙끙거리며 매달리던 순간이 그리워졌다.


쓰는 날을 보내기 위해선 쓰지 않은 날도 필요했다. 정확히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험상 그랬다. 쓰지 않았다면, 굳이 자꾸만 '쓰지 않은 날'이라고 되뇌었다. 오늘은 쓰지 않았지만, 내일은 쓰고 싶다는 염원을 담겨있다. 지키고 싶었던 일로 부르는 모든 하루도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이 부러운 순간이 많았다. 업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은 당연히 멋지게 보인다. 하지만 요즘은 그보다 그렇지 않더라도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이 훨씬 부럽다. 유명한 작가, 아티스트, 연주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 예술을 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대단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혼자 끄적이는 소설을 지금 그만둔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쓰는 날로 돌아가려 하고, '끝까지 쓰는 용기'라는 책을 집어 드는 나. 이 하찮고 귀중한 마음을 부둥켜안고- 오늘도 쓴 날과 쓰지 않은 날 주변을 서성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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