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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May 09. 2023

ON/OFF 버튼

좁은 시야, 관찰, 관심에 대한 이야기

하늘이 맑은 날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곁눈질로 그 맑은 하늘을 보았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엄마와 있을 때는 별다른 소재 없이도 말이 끊이지 않는다. 어제 했던 말을 반복해도 또 웃을 수 있고, 이야기하고 싶은 무언가가 자꾸만 떠오른다. 평소처럼 수다스러웠던 그날, 버스 정류장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다. 짤막한 인사를 건네고 주머니에 있는 이어폰을 먼저 꺼냈다. 이동하는 순간에 음악을 듣는 건,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버스 뒤편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제일 좋아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차선책으로 맨 뒷자리 창가 쪽에 앉았다.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맑은 날 뒷자리에서 바라봤던 바다는 그려진다. 맑은 날이면 유난히 더 반짝이던 바다, 하늘과 맞닿아 생기는 수평선도 유난히 선명해진다. 산을 둘러 가는 길은 절벽과 맞닿아 있었다. 난간도 없던 시절엔 버스가 절벽 가까이 붙으면 저 아래 해변으로 밀려 들어오는 파도까지 투명하게 보였다. 몇 년을 봐도 질리지 않던 그 길을 그날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절벽을 지나 도심 속을 달리는 버스, 내부는 이미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무표정한 사람들, 높은 건물이 가득한 풍경, 조금 전의 바다가 꿈처럼 느껴졌다. 몽롱함에 취한 나는 옆에 앉은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에 현실로 돌아왔다. 무미건조하게 시선을 돌리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눈앞에서 하차 벨을 누르고 가방을 고쳐 맨 사람은- 엄마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진 줄 알았던 엄마.


다른 버스를 탔다고 여겼던 엄마는 사실 나를 뒤따라 올라탔다. 그리고 내리기 직전까지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 그 사실을 한참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고. 이어폰을 껴서, 날이 너무 맑아서, 바다 풍경이 좋아서… 수없는 이유가 머리를 스쳤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자연스레 곱씹게 되는 일이 되어버렸다.


'남들보다 관찰력이 떨어져서 그랬나?'


관찰력, 사전적 의미로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능력을 뜻한다. 공부할 때도 그러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관찰력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겼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필요한 부분을 잘 찾아내서 빠르게 처리하는 쪽에 속했다.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건넬 줄은 몰라도, 사람의 표정이나 불편한 기색은 곧잘 읽는 편이라 눈치도 갖추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찰'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그랬던 걸까? 


답하지 못한 질문을 숙제처럼 지니고 다녔다. 그러다 비슷한 사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반전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든지, 돌아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서프라이즈 파티에 깜빡 속는다든지, 예상할 수 있었던 몸의 증상을 못알아차린다든지, 가끔 누군가와 왔던 장소나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뭐지? 뭔가 부족한데, 딱 꼬집어 집어내지 못했다.


"시야가 좁은 것 같아."


남편이 내게 가끔 했던 말이다. 썩 기분 좋은 말이 아니었다. 아니 기분 나빴다. 적성 검사에서도 '통찰력, 문제해결 능력'이 가장 높았던 나로서는 일에 대한 전반적인 시야가 갖춰져 있기에 문제가 생겨도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여기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는 정반대의 말. 강하게 부정하고 듣는 즉시 흘려버렸다. 그랬던 그 말이 이상하게 자꾸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남편과 대화하면서 도드라졌다. 우리는 정치적인 사건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견해가 비슷하다. 하지만 언쟁이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언쟁이 끊이질 않는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분석(비슷한 행태가 10년 넘게 반복되면 의식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일이)된다. 하나는 크게 봤을 때 견해는 같지만, 디테일이 다르다. 각자 문제라고 생각하는 요소의 비율이 다르다든지, 해결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일의 순번이라든지 그런 세부적인 것들이 달라서 다툰다. 두 번째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태도이다. 예를 들면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 생기면,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해석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남편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이런 식으로 여길걸? 

- 아니, 그래도 이렇게 보는 게 맞아. 그런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 돼.

- 그런데 그 입장에서 보면, 알 수 있어.

- 그게 아니라…


어느새 남편은 다른 편이 되어 설명하고, 나는 그를 반박하는 말을 내뱉는다. 미묘한 구도가 감정의 극을 치닫기도 한다. 한창 언쟁을 벌이다 다시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그의 생각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상상했을 뿐이라고 했다. 침략당해서 조금 전까지도 전투를 벌였던 상대가 '사실 나는 같은 편이었어.'라고 전할 때의 기분이랄까? 그때의 그 허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다른 생각에 대해 파악한다는 넓은 마음으로 바라본다면야- 도움이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그런 관점에 크게 관심이 없다. 사건에 대한 판단과 뒷받침 해줄 증거가 명확하다면, 다른 이야기는 관점을 흐릴 이물질일 뿐이었다. 그래서 상극에 있는 가치관일수록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존재를 부정하진 않지만, 굳이 다가가서 서로의 단단함을 파악하고 상처 입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언제나 다른 편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상상하려 했다. 


그러던 내가 우연히 글을 쓰게 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라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 소설가 中


많은 작가가 '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찰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위의 문장을 읽고 한참이나 이질감을 느꼈다. 몇 번을 읽다 보니 그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 시야에는 철저한 ON/OFF 버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이나 해야 하는 일에 관해서는 ON 버튼이 켜진다. 그렇지 않은 일에는 존재를 알지 못할 정도로 OFF 상태가 된다. 특히 타인에 관해서는 더욱이 그랬다. 옆자리에 누가 앉아도 바라보지 않고, 미심쩍은 행동을 해도 굳이 질문을 해서 알려 들지 않는다. 견해가 달라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그런 사람으로 치부하고, 더 궁금해하거나 상상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거리 두기는- 생각해 볼수록 무관심과 비슷하게 보였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말에 숨어 실은 무관심했던 건 아닌지, 이유도 들으려 하지도 않았던 건 아닌지 되묻게 되었다.


얼마 전 결혼 준비를 하던 친구의 고민을 들었다. 이런저런 일에 안 좋은 감정이 쌓이다 며칠 전에 폭발하듯 내뱉고 말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크게 다투었지만, 어찌어찌 화해했고, 지금은 괜찮다는 해피엔딩인 이야기. 하지만 친구는 앙금이 남았는지 당시를 떠올리며 흥분한 듯 말했다. 조목조목 자신이 참고 있던 일에 대해 말하는 친구를 바라봤지만, 이상하게 전혀 와닿지 않았다. 들을수록 점점 차분해졌다. 왜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마도 멍청한 얼굴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주변에는 다른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이 함께 속상해하고, 공감해 주었다. 모두가 떠들썩한 상황에서 홀로 남겨졌다.


어색하게 눈알을 굴리던 나는 그 순간 ON/OFF 버튼이 떠올랐다. 그리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자세를 취했다. 이해되지 않는 친구를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넘겨두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그 감정선을 따라가 보기로 한 것, 의식적으로 OFF로 향하는 버튼을 어떻게 든 붙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몇 발짝 떨어져서 바라봤다. 표정, 손동작, 말투, 이야기하는 방식과 그것들에 담긴 속마음까지. 그리고 나와는 확연히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그려졌다. 짧지만 생소한 경험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있던 친구가 다른 방식으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이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과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리고 애써 본다고 뭐가 더 나아진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ON 버튼을 좀 의식적으로 켜보고 싶어졌다. '주의를 주의 깊게 둘러' 보면 어떤 것들이 모일지 궁금해졌다. 만나는 사람들을 그렇게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쓰는 것과 연결될까?


어쩌면 하루키의 말처럼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 멋대로 상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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