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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Apr 30. 2023

검은 고양이

내 작품을 위한 하늘의 계획이 있다.

책상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두꺼운 주식 책(아직 읽지 못한)을 두 권 포개어 둔다. 그 위에 키보드가 달린 탭을 올린다. 두 권의 주식 책은 타자 치는 동안 손목과 목의 부담을 줄여주기에 딱 알맞은 높이다. 노트의 빈 페이지를 펼치고, 색색의 펜과 형광펜이 꽂힌 컵을 오른손 곁에 놔두면 집에서 소설을 쓸 준비는 끝이 난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렇게 작업 중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소설에 추가로 넣을 에피소드를 꾸리는 중이었다. 한창 에피소드를 풀어나갈 때와 다르게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손이 키보드 위로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럴 때면 줄이 없는 노트를 중앙에 두고, 마음에 드는 필기구로 낙서한다. 생각나는 단어를 반복해서 적기도 하고, 누구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러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렇게 몽글몽글한 생각을 적어낼 때는 주로 뭉툭한 연필이나 샤프를 잡는다. 어차피 의도적인 낙서라 지울 일도 없고, 실제로 지우개를 쓴 적도 없다. 그런데도 손은 펜보다 연필을 찾았다. 아마도 몽글몽글한 생각은 영영 지울 수 없는 상태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연필로 어리숙한 인물, 실수, 첫 손님, 꿈속의 꿈, 여러 개의 문과 같은 단어를 그리듯 써 내려갔다. 사각, 사각. 손에 잡힐 듯 말듯 맴도는 이야기. 좀 더, 좀 더 자연스럽게 연결해 줄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 순간 불쑥 어떤 형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엉겁결에 손이 그를 받아적으니, 종이 위에 낯선 단어가 적혔다. 초고를 절반 넘게 적으면서 한 번도 등장한 적 없었던 단어, 그래서 내가 적고도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던 단어. 정체는 바로 '검은 고양이'였다.


글을 쓸 때 거창한 무엇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짧게 스친 생각 아니면 어제도 오늘도 지난주도 반복하고 있는 행동 또는 누군가로 인해 느낀 감정과 같이 대부분 사소한 것에서 시작했다. 씹을수록 입안을 맴도는 쌀밥의 단맛처럼 사소한 일을 쓰다 보면 그러한 단맛이 올라왔다. 특히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쓸 때는 당시에 몰랐던 맛이 살아나는 신비로움을 여러 번 겪었다. 비단 보여주려고 쓰는 에세이뿐만이 아니었다. 나조차 다시 읽지 않을 일기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폭풍 같은 분노와 억울함도 한가득 채우고 나면, 그 뒤에 웅크리고 있던 다른 것이 흘러나왔다.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던 사춘기에는 커다란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쓰곤 했다. 물론 답답한 마음을 어디도 터놓을 수 없어서 한풀이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엉망진창으로 휘갈겨 쓰고 나면, 시작할 때는 짐작도 못 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무언가는 쌀밥의 단맛처럼 매력적이라는 것을.


거창하지 않은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소설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아니다, 어쩌면 에세이나 일기보다 훨씬 더 얄팍한 마음으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그저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평소 관심 있던 꿈이라는 소재를 붙잡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소녀가 정신없이 내달린다. 두려움에 질린 소녀의 뒤를 쫓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쉼 없이 거리를 좁혀온다. 매일 밤 겪는 지독한 꿈, 장소와 상황만 달라질 뿐 잠들기조차 무서운 악몽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 꿈이라는 단어가 악몽에 시달리는 장면을 만들었다. 자연스레 꿈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이 그려지고, 꿈과 엮일 현실이 세워졌다. 조력자라는 단어를 비롯한 새로운 단어들이 추가되자 희미하게 결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볍게 떠오르는 단어와 연결된 장면 쓰기의 반복, 그 별것 아닌 도구로 초고를 작성하고 있다. 신기한 점은 그 작업을 하면서도 일기나 에세이를 쓸 때처럼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걸 쌀밥의 단맛이라고 표현하기엔… 적절치 않다. 그렇게 다정한 감각이 아니었다. 불쑥 튀어나온 단어가 막혀있던 걸 뚫어내듯 시원함을 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앞서 생각해 둔 설정을 뒤엎는 경우가 많았고, 겨우 잡은 틀을 뒤흔드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그 혼돈 속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맛. 내 이야기를 쓸 때는 맛보지 못했던 묘하게 자꾸만 곱씹게 되는 맛이 존재했다.


그 맛에 이끌려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현재는 불안하게 흔들리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뼈대가 생긴 상태다. 커다란 에피소드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들 사이에 연결 고리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웬만한 단어가 찾아와도 휘둘리지 않았다. 쓸데없는 단어가 떠오른다면 쳐낼 힘이 생겼다랄까. 그랬다고 믿었다. 그날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헛웃음 지으며 무시하려 했다. 귀엽긴 하다만 뭐에 쓰려고. 다시 다른 단어를 써보지만, 머릿속에서 자꾸만 고양이가 방해했다. 어느새 뭉툭한 연필을 쥔 손은 고양이 눈을 그리고 있었다. 새까만 털의 고양이는 샛노란 황금빛 눈을 가졌다.


'중요한 건 균형이야, 균형. 또 날 불러내지 않기를 바라.'


얌전히 고양이 행세를 하는 그 녀석이 말을 했다. 얼굴을 씰룩이며 웃는 모습은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를 닮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모호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툭 던지고 사라지는 존재. 악당인지 길잡이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녀석은 내가 간신히 잡아놓은 뼈대를 휘젓고 다녔다.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녀석. 결국 백기 들고 펜으로 쓰고 말았다. '검은 고양이'라고.


검은 고양이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자니 이상하게 자꾸만 맥이 빠졌다. 겨우 잡힌 듯한 틀이 또다시 틀어졌기에. 내 낙담과는 상관없이 녀석은 활개를 치고 다녔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넘어서 주인공 곁에서 말을 걸고, 부족하다고 남겨둔 이야기에도 발을 들여놨다. 그리고 당당히 결말까지 끼어들어 목소리를 냈다.


‘뻔뻔한 녀석-’ 외쳐봤자 조금도 주죽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있는 게 훨씬 낫지?’ 라고 되받아칠 뿐.

‘그럼 좀 빨리 나오지 그랬니.’ 이번엔 대꾸 없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 넘기며 그루밍을 할 뿐이다.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금도 여전히 당황스럽다. 얌체 같은 녀석에게 중요한 역할을 줘도 될지, 쓸데없는 단어에 흔들려 흐름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긴 언제는 확신이 있었던가? 대답하기 싫은 자조적인 물음이 떠돈다.


그런데도 쓰려고 붙들고 있는 나를 위해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문구를 되새겨 본다.


 - 나를 위한 하늘의 계획이 있다.

 - 내 작품을 위한 하늘의 계획이 있다.


부디 이 모두가 하늘의 계획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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