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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Jun 13. 2023

ㅇ하고 ㅇ하고 ㅇㅇ하고 ㅇㅇ하다.






약하고 역하고 유약하고 유연하다.





약한 게 싫어. 간파 당하는 게 싫긴 해. 누가 내 마음을 다 알면 사실 좋다가도 어느 순간은 꺼름칙하지. 왜 아는 척이야? 왜 날 아는 척이야? 나도 날 모르는데. 나의 연약한 모습이 보이는 게 사실 싫을 때도 있다. 요즘 힘들어 보이던데. 괜찮아? 그게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고. 내가 약해 보이나 싶어 걱정 될 때가 있는데. 요즘은 후자. 강해 보이고 싶다.


그러나 누굴 위해서?





역하다. 더러운 건 역하다. 어젯 밤 사슴벌레를 봤는데 길 바닥에서 껌이 붙은 한 쪽 다리를 이끌며 원으로 돌고 있었다. 으악! 징그러! 그러나 징그러워 하는 내가 더 징그러웠어. 더러워! 인간은 더러워! 더러운 것은 역하다.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받길 원하는 것은 욕심 플러스 멍청한 사람이야.


온 집 안을 깨끗이 청소를 해야겠다. 온 몸을 다 닦아야 겠다. 온 사람들에게 내 깨끗한 마음을 보여주고. 오물들을 버리고. 분리수거 하고 싶다.


저 이제 향긋해졌어요. 하면서 향긋한 사람들의 틈에서 웃으면서.


징그럽고 역겨운 감정은 밤의 미로에서 헤매라고. 그렇게 꿈 속에서 혼나는 꿈을 꾼다. 그렇게 꿈 속에서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한다.


언젠가 상사가 나에게 말했다.


아이가 잘못을 하는 건 언제든지 괜찮지만 어른은 그래서 안되는 거라고. 어른인데 남탓 하는 건 정말 안 좋은 거라고. 어른이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아니오. 저는 어른이라고 꼭 그렇게까지 의젓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당신도 14살 여자일 때가 있었잖아요?


어른이 그렇게 비정하고 무정하고 의젓해지고 돈을 벌고 책임감 있고 아이들에게 하나도 상처 안 받고 고철같은 교육자라면 난 교육자 따윈 안 할 겁니다.


나는 독일의 발도로프 학교의 숲 에서 뛰고 아이들과 같이 우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에선 교사를 아마 못 할 거에요.





유약하다는 말은 부드럽고 약하다 라는 뜻이다.


나는 부드러운 소프트 크림처럼 누군가에게 달게 먹혔다가 시멘트 바닥으로 하강하며 지글지글 익고 싶다.


누군가는 여름이 싫다고 했다. 나는 여름이 좋다. 너무 뜨거워서 타 죽을 것 같은 열기와 까매지는 피부가 좋다. 맥반석 달걀이 될 것 같은 따뜻함과 아득해지는 정신. 물을 뿌리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 목 끝에서 흐르는 땀. 달리면 느껴지는 미풍. 지쳤지만 밤이 오지 않는 7시의 밤. 그 모든 게 너무 좋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연처럼 부드럽게 추락하고 싶다. 나를 조립한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한 번 추락하고 나무막대기가 부러져서 아이를 울리고 싶다. 나는 이 정도로도 최선을 다했어. 너는 내가 우주 끝까지 날아가길 바라지만 나는 안돼.


이 추락이 나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잖아.


나는 분해되고 잘개 찢어지고 불에 타서 녹아서 다른 걸로 제조될 수도 있고 공기 중으로 흩어져 질소들과 함께 숨을 쉴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난 정말 우주에 가는 거 아니겠니.






유연하게 생각하자.




약해 보이는 게 싫고 역한 마음을 버리고 유약한 마음으로 버틴다고 마음 먹어도


나는 매일 매일 쓰레기를 생산하는 인간이다.

(저 분리수거 해야 할 것들을 오늘 다 해치우겠다.)


나는 매일 매일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기쁨을 줄 수도.)


내 말은 언제까지나 고여있을 순 없다는 것이다.


기분은 상승과 하강을 왔다 갔다 한다. 컵으로 되어 있는 놀이기구 같다. 빙글빙글 거린다. 어지러우면서도 재밌다. 토할 것 같다가도 재밌다.



역한 마음과 약한 마음과 유한 마음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즐거움과 누군가는 나를 알고 있다는 즐거움.


순수한 기쁨!


타인에 의해 좌절된 슬픔!


감정의 스펙트럼이 나를 ㅇ하고 ㅇ하게 만들어 내가 ㅇㅇ해진다고 해도 나는 ㅇㅇ하게 삶을 살아 볼거야.


할 수 있겠어?

ㄴre: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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