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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Jun 10. 2024

불안 음미






내가 가지고 있는 버릇 중 하나는 실제로 만난 인간을 인물로 만들어서 나에게 말을 걸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제는 모기향을 상가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혹시 불씨가 다 꺼지지 않아서 상가가 불에 활활 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것은 보통 근거없는 망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불안이 팽창한 결과인데 이럴 때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이성적인 사람을 소환해서 내게 말을 걸게 한다.


“발로 밟아서 제대로 껐잖아. 뜨겁지도 않았고. 그리고 만약 불이 난다고 해도 화장실에 있는 경보 시스템이 울릴거야. 근데 그건 정말 일어날 가능성이 없고 발로 밟은 담배를 휴지에 떨어뜨려도 불이 안 나는 거랑 같아.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기차 안에선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소설이 합평을 받는데 개 망작 소리를 듣고 너가 꾸는 꿈은 헛되고 너는 시간을 낭비 중이고 너는 병신이고 너는 쓰레기고 너는 살 자격이


까지 나의 작은 불안이 커져버리면 나는 얼른 나를 항상 신뢰하는 채현이를 소환시킨다.


“수지, 너는 인생을 성공하기 위해서 사는 거야? 아니잖아.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실패하는 건 네 자유야. 우리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야. 이 모든 과정이 사실은 정말 꿈을 이룬 것보다 더 중요해.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다 괜찮은 거야. 아무도 너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거야. 판단한다고 하면 그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받지마. 그들의 생각에 좌초되지 마. 너는 너야!”


이 작은 불안증은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나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고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항상 노력 중이다.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왜 자꾸 써서 올리냐면 누군가의 약간의 도움이 필요해서고 나는 나의 나약함이 마냥 싫지는 않아서이고 남몰래 공감하는 자가 위로를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어짜피 글이란 건 읽는 사람만, 읽기 때문이다.


당신!


굳이 읽어줘서 고마워 윽윽


기차 안에서 문득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는데 나는 숨을 크게 쉬고 싶을 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걸 알았다.


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유월을 살자!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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