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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Jun 19. 2021

달무리 맨드라미 서커스

M세대를 위한 퀴어소설




"달이 영어로 뭐였지?"




나는 네가 묻는 말에 무우운 이라고 말했다. 너는 나의 입술이 삐죽 내밀어 진 게 오리같다며 웃었다. 노란색 달과 노란색 오리. 하얀색 달무리와 하얀색 깃털. 오리와 달을 잘 엮네. 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 뿐이라 답한다. 달무리가 또렷하네. 그렇게 말하는 너도 오늘 감성적이라며 내가 말했다.


"난 달보다 달무리가 더 좋더라"


왜냐고 물었다.


"달이 되지 못한 빛줄기 같아서

너다운 대답이었다.


너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더 가슴에 남는다고 말했다. 유명한 강의, 성공한 작가, 뛰어난 스포츠선수. 그런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고. 오히려 실패해서 달이 되지 못한 빛줄기의 사연이 더 궁금하다고 말했다. 네 꿈은 다큐멘터리 작가였고 오늘은 네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TV에 나오는 날이다. 지상파도 아니고 케이블방송 중에서도 가장 어중간한 신생 방송사였고 목표 시청률대는 일퍼센트인 방송국 번호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본방송으로 너의 이름이 나오길 기다렸다. 하등 재미없는 농사꾼의 이야기였다. 벌레를 잡고 밭을 갈고 또 벌레를 잡았다. 오래 전에 흥했던 가수 윤해선이 나왔다. '지상에서 열리는 축제'를 부르던 윤해선이었다. 윤해선은 여름인데도 긴 소매의 바람막이를 입었다. 그녀는 땀을 흘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윤해선은 마을회관에서 '해당화'와 '나의 피앙세'를 부르고서 '지상에서 열리는 축제'까지 불렀다. '오늘은 다 같이 웃어봐. 사랑도 사람도 이제는 가라고 해봐. 오늘은 그냥 웃는거야. 웰컴 투 마이 하우스'. 88년도의 강변가요제 출신 스타들 사이에서 위트있는 가사를 섞어 쓰며 마이너틱한 팬덤을 지녔다.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서 집안이 파탄이 나고 이혼을 하였고 밀레니엄 세대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아무 기사도 없이 사라졌다. 윤해선이란 이름을 알게된 것도 경윤 때문이었다. 경윤은 윤해선의 테이프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핸드폰으로 이어폰을 나눠서 노래를 듣는데 윤해선의 나의 피앙세가 흘러나왔다. '나를 사랑하지 말아요 허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춤이라도 출까요 셸 위 댄스' 신나는 비트에 신디사이저의 미끄러운 피아노 소리가 주를 이뤘다. 가만히 듣다가 가수의 이름을 물었다.


"윤해선. 근데 이 사람 이혼했어. 정말 사랑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있잖아 미연아. 꼭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살 수 있는걸까? 정말 모르겠어. 혼자서라도 춤은 출 수 있잖아. 셀 위 댄스라고 꼭 누군가한테 말해야 하는걸까."


그 때 나는 춤은 둘이서 추는거 아니야? 라고 대답했었고 지금은 그 대답을 후회한다.

춤은 혼자서도 출 수 있다.


윤해선은 혼자서 춤을 추고 있었다. 80대 노인들 앞에서. 밭을 메다가. 새참을 지어오다가.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노인정에서 그녀 혼자만 빛나고 있다. 저기서 경윤도 그녀의 춤을 봤을거다. X세대 윤해선은 지상에서 열리는 축제를 몸소 실행하고 있었다. 윤해선이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다고 했을 때 경윤은 기뻐했을까 아니면 실망했을까. 가려진 사람이 다시 스타덤으로 오르는 순간을 경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사랑을 원하던 여자가 다시금 재혼을 해버렸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 예상대로 윤해선에 대한 기사가 여럿 올라왔다. 그녀는 검색어 14위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옛것의 부활을 원했고 경윤의 소중한 스타는 다시 도마에 올랐다. 경윤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알게 된 건 PD의 이름이 김호원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10대들은 윤해선의 90년대 무대영상을 보며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모양 귀걸이와 미니스커트에 반했고, 그녀가 유명 MC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나온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나는 네가 절망하지 않길 바랬다. 네가 발견했던 아름다운 사연이 이제는 더 인기를 얻었을 뿐이라고. 네가 먼저 발견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전화든 문자든 통 연락이 되질 않았기에  바로 전해주질 못했다. 달무리 같은 사람이 좋다던 경윤은 이미 달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달무리를 서성이는데 그녀는 그 무리 틈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물론 경윤은 인정하지 않을 거지만.


금성여고 뒤 주차장에서 경윤과 나는 야자를 자주 빼먹었다. 주차장 뒤에는 허리를 등지고 누울 수 있는 운동기구 두개가 있었다. 우린 하얀 조명 아래에서 수다를 떨었다. 윤경은 시험문제를 기출에서 그대로 베낀다느니. 영대는 왜 그렇게 화만 내고 재수가 없는 건지. 수능을 준비하던 때는 방송부 문을 몰래 열고 누워있기도 했다. 야자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윤은 마이크를 만지며 신기해했다. 여기서 너가 읽는거야? 점심시간에 하는 라디오 대본이 놓여져 있어서 너는 아나운서 흉내를 냈다.


"오늘의 최저온도는 12도 최고온도는 20도입니다. 오 이러니까 나 아나운서 된거같아."


PD가 되고싶던건 나였는데 너는 다큐멘터리 작가가 돼있다. 그 날 우리는 바닥에 누워 야자 1교시는 수다를 떨다가 2교시에는 잠을 잤다. 눈을 감고 있는데 작은 방송실에서, 누가 들어올까 문을 다리로 막고 있는 나를 향해, 네가 고개를 돌렸다. 윤은 그렇게 나를 몇 초간 바라보더니 잠이 다 깼다고 말했다. 나는 웅얼거리며 아직 졸리다고 말했다.


"그럼 듣기만해. 내가 오늘 주차장에 저녁먹고 혼자 갔었는데. 허리기구 그거 얼굴 피쏠리면 아플까봐 안하고 있었거든. 너는 해봤니? 아무튼 대답도 안할거면 잘 들어줘. 오늘 백팔십도 돌아봤어. 아니 백도 정도. 좀 무서웠거든. 근데 지하수 있다고 저거 먹어도 되는 물일까 하던 곳 있잖아. 뒷집에 사는 아저씨가 식수 아니라고 지나가다 말했던 거기. 응. 그 안쪽에 빨간색 꽃 하나가 펴있더라. 무슨 종류인지는 모르겠는데 꽃잎으로 올라가는 줄기가 되게 신기하게 생겼어. 마디라고 해야할까. 선이 많고. 잎이 꼬불꼬불해. 그 꽃 이름이 뭘까 궁금해. 근데 물어볼 사람이 없어. 아무도 그걸 발견한 사람은 없는것같아. 야 자냐?"

말이 끝나자마자 방송부 담당 선생님이 들어와서 우릴 혼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너는 내게 그 꽃을 보여줬지만 이름만은 알 수가 없었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그 꽃을 봤다. 시골관찰예능에서 유명 여자 연예인이 이 꽃 이름이 뭐에요? 라고 물었고, 유명 MC가 말했다.



맨드라미.


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연락이 없는 윤에게. 맨드라미 꽃이었다고. 네가 찾던 그 이름은.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일 떄문에 바쁘게 된 이후로 우리는 얼굴을 보질 못했다. 다른 사람은 전부 봐도 경윤만은 보질 못했다. 친구들이 한두명 결혼해서 결혼식에 갈 때도 경윤은 오지 않았다. 나는 맨드라미를 검색해보았다. 맨드라미는 7월에 피는 꽃이다. 맨드라미의 원산지는 열대 아시아이고, 맨드라미의 꽃말은 열정, 영생, 그리고 시들지 않는 사랑. 용도는. 관상용. 꽃들에게 시들지 않는 사랑은 그저 관상용이다.


심장이 쿠웅 쿠웅 소리를 내면 담배를 펴야 한다는 신호이다. 맨드라미의 꽃말을 찾고부터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가슴은 쿠웅 귓 속에선 삐이. 몸이 고장난 것 같았다. 나는 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왔는데 놀이터에 있는 그네가 너무 빨간색이어서. 검색해서 본 맨드라미의 색깔과 똑같아서 홀린듯 앉았다. 그네를 타기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바람을 느꼈다. 경윤. 너는 지금 어디있을까. 야외에 있을까. 아니면 집 안에 있을까.


이경윤. 그애는 세상이 소홀히 대한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이다. 너는 달에게서 벗어난 달무리를 사랑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꽃을 사랑했고 침울에 빠진 X세대를 사랑했고, 윤해선을 사랑했다. 그애는 나 이외에 모든 걸 사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 아니 이경윤. 달보다 더 빛나는게 사실 달무리야. 달보다 더 큰게 달무리라고. 달무리가 있으면 비가 온대. 날씨가 추워져서 하늘에 빙정이 생기면 거기에 빛이 반사되어서 나타나는게 달무리거든. 달무리는 얼음 결정때문에 빛날 수 있는거야. 넌 더 보잘것 없는 걸 사랑하진 않은거야. 바로 나 말이야. 그 빙정은 지금 여기 있어.


경윤이 혼자 춤을 출 수 있는거 아니냐고 말했을 때, 나는 둘이서만 춤을 출 수 있다고 답했었다. 지금은 혼자서도 춤을 출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 애는 평생 빙정의 존재를 모를 거고 나는 경윤이 아니면 아무하고도 춤을 추고 싶지 않으니까. 끝끝내 빙정으로서 그애가 좋아하는 달무리를 보여주고 싶다. 인터넷에 검색해야만 나오는 과학적 이론의 하나. 경윤에게 나는 그 정도로만 존재한다. 나는 윤해선의 노래를 곱씹는다.


다 같이 웃어봐/사랑도 사람도 이제는 가라고 해봐/오늘은 그냥 웃는거야/웰컴 투 마이 하우스


그네의 회전이 멈추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답장이 왔다.


미연아. 요즘 하고 있는 일이 끝나지가 않아. 이번에는 강진에 간대. 윤해선도 이 일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그런데 나는 네가 조금 걱정돼. 다음에 내려가면 같이 이야기하자. 예전으로 돌아가고싶어. 보고싶다 김미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오늘도 잘 자 미연.




너의 보고싶다는 말은 나의 보고싶다는 말과 다르다. 알고 있다. 사람들은 옛것을 그리워한다. 당연한 것인데도 너와 내가 생각하는 옛날은 이미 변색됐다. 나는 네가 늘 절망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데 나를 절망시키는 건 다름아닌 너였다. 사랑도 사람도 이제는 가라고 해봐. 신디사이저가 촤르륵 울렸다. 윤해선의 전성기도 그 노래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촤르륵. 맨드라미도 곧 시들 것이다. 머리 위에 있던 나무가 잎중에 하나를 갈색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고 나는 나무를 응원할거다. 오늘은 그냥 웃는거야. 웰컴 투 마이 하우스. 나는 네가 내 애인이 되었으면 좋겠어. 애인이 된 네가 보고싶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잘자 라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러나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웰컴 투 마이 하우스를 끝으로 집 안은 정적이 되었고, 미연을 생각하며 춤을 춰도 우스꽝스러운 서커스 밖에 되지 않았다. 채찍을 맞는 코끼리가 예쁜 모자를 쓰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제 동물들은 벌판에 뛰어놀게 해야 한다. 사랑도 사람도 동물도 모두 가라고 해야한다. 서커스는 모바일 세대, 즉 M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것들의 취향이 아니게 되었다. 밖에서 내리는 소나기를 맨드라미가 먹고 자란다. 더 붉게. 가을이 오기전에 더 함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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