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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Aug 16. 2021

이상한 선생님

저는 이상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망이 있던 건 사실이지만 담배를 피고 싶었을 뿐이지 학원 선생님을 이런식으로 만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트위터에서 담배 대리 판매합니다. 청소년 환영 이라는 문구를 봤을땐, 이 사람도 어지간히 돈이 궁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보니 우리 학원의 영어 선생님일 줄이야.




선생님은 누가 보더라도 선생님이었다. 대중이 만든 선생님이라는 이미지에 아주 적합한 사람. 까만 머리에 적당한 단발, 학생들이 험한 말을 할 때마다 얘들아 좋은 말을 써야지 라고 말하고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하릴없는 잡담에 웃어주는 그런 고운 선생님




그 선생님과 어쩐지 어두운 아파트 앞 공원에서 만났을 땐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서로 흠칫 놀라버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때부터 자신의 허물을 벗어 던지듯이 나에게 먼저 물었다.




“말보루 레드는 처음 피기 좀 힘들텐데”

“제가 처음 피는 줄 어떻게 알아요?”

“말투를 보면 알아 그리고 너는 담배 필 아이가 아니잖아.”




담배를 필 아이가 아니라는 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어요? 나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물을 시간을 주지 않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입 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숨 섞인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씨발같은 인생”



선생님도 여간 어이가 없는게 아닌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3학년 학생과 바깥에서 이런 식으로 조우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

“왜”

“저 담배 피고 싶어요”



선생님은 눈이 조금 동그래지면서 자신이 피던 담배 한 개비를 주었다. 레종 휘바였다. 피기 전에 먼저 터뜨려. 앞부분을 어금니로 눌러. 그렇게 누르니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대로 한 입 마셨는데 사이다를 머금은 듯한 맛이 났다.



“이 일을 학원에 말하든지 말든지 알아서해. 그런데 말이야. 나는 차라리 이런 일이 일어나길 바랬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나도 드디어 일을 그만둘 수 있겠구나 싶어서”

“일을 그만 두고 싶었어요?”

“그래. 나는 일을 그만 두고 싶어.”



일을 그만 두면 그냥 그만 두면 되지 왜 잘릴때까지 버티는 걸까? 어른들의 세상은 정말로 이상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할 수 없다. 나이도 먹었으면서. 자유로우면서. 공부를 할 필요도 없으면서. 공부를 가르치면서. 이상하게 나는 처음의 오묘한 감정과 다르게 선생님이 선생님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인생이 궁금했고 그녀가 왜 이 일을 하게 된 건지가 궁금했다. 이건 불법인 거 아세요? 그런 물음에 선생님은 퍽 웃으면서 나중에는 깔깔거렸다. 그게 그렇게 이상해 보였다.




“돈이 좀 되거든”

“돈을 그렇게 벌어서 뭐하려고요?”

“미국가려고”

“미국에 가서 뭐하려고요?”

“미국에 가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볼거다 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면 뭐하려고요?”

“그럼 인생이 조금은 재밌지 않겠니”




나는 선생님이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 당장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미국에 가서 즐겁게 놀다오면 되는 것이지 왜 학생들한테 돈을 받고 담배를 팔고 있는 걸까. 학생한테 이러면 안되는거 아니에요? 라고 묻기에는 나 자신도 담배가 너무 궁했다. 담배를 펴서 이 스트레스가 사라진다면 담배를 피고 폐를 건네려는 속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우스꽝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3학년 생으로 곧 고등학생이 되기 전 마지막 일탈에서 그녀를 만나버렸으니 그녀가 우리 부모님에게 말을 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소문이 나면 어떡하지라는 뭉게구름이 머리 위에 피어올랐다. 연기처럼.




“은재야 너는 왜 우울하니?”

“뭔 소리에요?”

“우울하지 않으면 담배를 찾지 않아”

“저는 우울하지 않아요 그냥 일탈이 하고 싶었어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녀는 일이 끝났다는 듯이 자리를 뜰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가지 못하게 담배를 한 개비 더 달라고 말했다.



“너 공짜 좋아하구나?”

“네”

“선생님 실격인데”

“그런가요”



“어짜피 난 선생님이랑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이었어”



그건 아니었다. 그녀가 자조적으로 말하는 모든 말이 틀렸다. 그녀는 누구보다 선생님하고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학생을 사랑하는 게 눈에 보이고 수업도 잘 했다. 그녀가 대학을 보낸 학생들이 그녀에게 인사하기 위해서 학원에 여럿 찾아왔었다.



그렇지만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그녀의 눈빛에 흐리멍텅하게 잠겨있던 우울을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것일까. 나는 일개의 학생으로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담배를 피는 법도 몰라 어쩔 줄 모르는 상태였다. 그녀가 차 문을 열더니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너 집 여기서 멀잖아. 담배 살려고 여기까지 온거니? 너도 참 대단하다. 그 의지가 대단해. 뭐라도 될 애야. 정말로. 나 거짓말은 안하는 사람이야.”



나는 그녀의 조수석에 탔는데 거짓말처럼 담배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아서 여전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섬유유연제 향기가 났고 조수석엔 귀여운 라이언 방석이 깔려 있었다.


정말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차로 집에 가는 길에 빨간색 신호등이 달이 뜨듯 피어올랐고 차 안은 온통 붉은 색이 되었는데 그것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창가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나? 스물 여섯”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스물 여섯은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내일부터 학원 안나오실거에요?”
“몰라 니가 꼰지르지만 않는다면”

“전 그런 짓 안해요”



“열 여섯 살 말 누가 믿니. 그리고 금방 그만두고 싶었어. 나 선생님이란 직업이랑 안맞아. 더 다양한 걸 하고 싶어. 외국에도 가보고 싶었고. 고양이도 기르고 싶었어. 그러니까 타이밍이 딱 좋아”



선생님이 하는 말이 앞뒤가 안맞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일을 하면서도 고양이를 기를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잘 모르는 어른의 세계가 있는걸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은 자신의 능력을 한참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다 왔어.”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집 앞에 도착해버렸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를 내려주고 창문 바깥으로 소리를 질렀다.




“은재야! 너무 우울해하지마!”




“...뭔 소리에요 진짜”




“너무 우울해하지 말라고”




“안 우울하다니까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선생님이 차를 타고 떠나자 나는 집 앞에서 담배를 폈다. 담배 한 개비 두 개비 세 개비를 피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답답해서 담배를 피는데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질 않는다니. 집 안에 들어가봤자 아무도 없다. 믿을 만한 어른같은 건 신기루같은 존재로, 차라리 방금 나에게 담배를 판 선생님이 제일 믿을 만한 것 같았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정말로 우울해졌어요.




거봐, 내가 말했잖아. 그래도 그 우울에 너무 잠식되어서는 안돼. 그건 곧 꺼질 우울이거든. 그리고 은재야. 나는 별로 좋은 어른이 아니니까.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엄마 밥을 챙겨먹어. 그게 더 나을거야. 친구들도 좀 보고. 너는 친구도 많고 성격도 좋으니까 담배같은 건 필요없을거야. 그리고 이런 선생님이라 미안해.




선생님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별로 좋은 어른이 아니라는 사과는 어른들이 한 번도 내게 한 적이 없었다. 나를 두고 며칠 밤을 외근을 나가는 부모님도,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 담임 선생님도, 주변의 지나가는 말로 넌 잘되어야 만 한다는 친척들도 내게 그런 사과는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왜인지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상한 밤이었다. 이상한 선생님과 이상한 밤과 이상한 마음들이 다 혼재되어서 나는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내일 학원에 해갈 숙제를 다 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다음 날 학원에 가자 선생님은 여전히 초등학생 아이들과 부질없는 농담을 하며 웃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 쪽을 힐긋 보더니 은재야 어서와 하며 인사했다. 나는 그녀의 인생에 도대체 무엇이 결핍되어있는 지 그 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올바른 어른, 올바른 사람, 아이들에게 꿈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강박. 하지만 꿈 없이 사는 사람이 더 많고, 엉망 진창으로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녀는 그 중에 하나였고, 빛나는 사람이었다. 멋진 어른이라는 건 환상이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좋은 어른이 되라는 말 보다 그녀가 준 담배 한 개비가 더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학원 수업이 끝난 후 그녀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학원 그만두지 마세요. 저는 선생님이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거는 영판 딴말이었다.




“선생님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그녀는 그 말이 꼭 자신의 삶에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는지 서글픈 웃음을 헛헛하게 지으면서 대답했다.



“은재야”

“네”

“그 말이 나한테 좀 필요한 말이었어.”




그 뒤로 그녀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는 담배를 피지 않았다. 왜냐하면,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들이고 나는 우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 선생님의 삶이 궁금해져서 그 뒤로도 수소문을 해봤으나 영 찾아지질 않았다.



이후 내가 그녀의 소식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미국 타임스퀘어에서 웃긴 광대와 사진을 찍은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선생님이 행복해보여서 나는 그 날 이후로 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상한 어른이 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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