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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지 Jul 09. 2022

200404



철쭉 꽃밭에 휘말리고 싶다. 일반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철쭉이 너무 빨개서, 너무 보라색이라서. 이 철쭉을 처음에 심은 사람은 기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집 강아지는 다른 집 강아지를 보면 숨거나 소리를 지른다. 자기보다 큰 개면 쫄고 작은 개면 물려든다. 실제로 물지도 못하면서 강한 체를 한다. 강약약강은 짐승으로부터 내려왔으니 인간에겐 얼마나 잘 적용될까. 짐승의 피라미드 체계 맨 위에 있는 인간은 철쭉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스테이크를 썬다. 이제 고기론 모자라 크릴 오일까지 쪽쪽 뺏어간다. 철쭉과 쪽쪽이란 단어는 이란성 쌍둥이같다. 나는 그저 이름 모를 언덕에 올라 풀밭 위에 누워 있고 싶다. 연봉이 몇인지 결혼은 언제 해야 이상적인건지 남편이 바람을 피는 것 같다던지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바람의 가닥을 세어보고 싶다. 결을 어루 만지고 패스츄리처럼 부숴뜨리고 싶다. 꽃밭에 누웠다가 꼿발을 세우고 춤을 추다가 사람을 껴안고 울어버리고 싶다, 방금 태어난 아기처럼, 곧 죽을 노인처럼. 꽃밭에 살고싶다. 뇌가 꽃밭이니 라는 욕은 어쩌면 칭찬이 아닐까. 나의 머릿속은 회색도시의 말로. 신호등 윗칸 우직히 서있는 빨간 남자. 당신을 감시하고 나를 옥죄는 붉은 색 아. 빨간 철쭉을 밟고 싶다. 빨간 철쭉의 꽃잎을 따서 단물을 빨아먹고 싶다. 빼앗기기 전에 나의 낙원을 내가 먼저 밟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4월 4일이다. 2곱하기2는 4, 4가 2개인 날. 200404. 낮에도 가슴 속엔 뿜어내지 못하는 눈물뿐이라 이런 글을 쓴다. 이런 글을 쓴다.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쓴다.


이민휘의 노래 꿈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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