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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정원 Jun 26. 2023

나의 꿈, 나빌레라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모든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더 이상 나는 없었고 존재감은커녕  땅 속으로 사라져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때였다.  누구에게 도움을 받거나 말하지 않아도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고 즐겁게 해 주던 돌파구는 소설책이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책상 밑에 놓고 읽었던 책들은 상상의 날개를 가져다주었고, 주인공을 만들어 주며 울고 웃게 해 주었다. "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며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에 설레기도 하고, O.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읽으며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을 조이기도 했다. 또 "헬렌 켈러"가 되어 역경을 딛고 성공을 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아무도 엿보지 못하는 머릿속 상상은 핀잔이나 잔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었고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나도 이렇게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지만 왠지 자꾸 움츠려든다. 글은 쓰면 쓸수록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움추러든다. 글의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며칠 동안 머리를 굴리다가 겨우 어설프게 쓴 나의 글과는 달리 기발한 소재 속에 매끄럽게 써 내려간  다른 사람의 글들.

  “어떻게 저런 생각이 떠올랐을까”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창작력과 상상력 부족을 탓해 보기도 한다.

 남들은 ”시작은 작으나 결과는 창대하다"라고 하는데 나는 창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은 하지만 결과는 항상 중도 포기이다. 매일 지각을 하던 사람이 ‘지각을 안 하려고 일찍 나갔는데, 하필 자동차 바퀴가 펑크 나서 또 어쩔 수 없이 지각을 했다’는 것처럼, 이런저런 이유 속에 결국 포기하기를 몇 번. 그러나 스스로의 포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미련들이 남는다.

 지금까지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나의 인내심과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남편의 역마살” 때문이라며, 핑계를 대고 위안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핑곗거리가 없다.


 “나빌레라”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이다. 그럼에도 나이 일흔에 꿈꾸어왔던 “발레리노”에 도전을 한다. 몰래 배우기 시작한 발레는 아내에게 들키고 반대에 부딪친다. 노인이 발레를 배운다는 주위의 우려와 비웃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오로지 꼭 이루고 말겠다는 열정 하나로 꿈을 이룬다. 드라마의 내용도 좋지만 주인공 역할을 한 노배우의 열정이다. 발레를 배운 적이 없는 일흔 중반의 배우는 다리 찢기를 하면서 발끝으로 서고 발레에 도전하며 그럴듯하게 연기를 한다.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연습을 했을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비하면 좋은 환경과 여건 속에 있는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글을 제일 먼저 읽어주고 칭찬해 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칭찬을 남발하며 격려해 주고 글을 쓰게 하는 아이들. 나도 이번에는 결코 포기를 하지 않고 끝까지 글을 써 볼 것이라고 다짐하며 소문을 내 본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글 잘 쓰는 작가가 되어 지금의 부족한 글을 읽고 부끄러워하며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몇 년 후 그동안 틈틈이 써서 저장해 놓은 글이 알려지면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전에도 몇 번 남편과 아이들이 출간하자고 했지만 부담스럽다며 즐겁게 글을 쓰고 싶다고 사양을 했었다. 글과 더불어 제목 옆에 그려진 작가의 독특한 삽화가 글을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는 평이다. "대기만성"이라더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인내하며 노력을 하니까, 오늘 같은 결실도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며 입가에 웃음을 짓는 상상을 하면서 오늘도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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