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을 살아도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짧은 시간 속에서도 새로운 경험은 당연히 여겼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로마에서의 하루는 경찰차와 응급차의 “삐오삐오” 소리로 시작된다고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을 방문하던 중, 관광객이 쓰러져 응급차가 출동한 사건 외에는 교통사고나 부상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반복되는 사이렌 소리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흥미로운 것은, 도로가 꽉 막혀 있을 때에도 응급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차량들이 즉시 길을 터준다는 점이다. 중앙선을 넘어서서도 다른 차량의 주차 공간까지 생각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혼잡한 교통 상황에 불만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배려를 보면서 선진국의 면모를 실감하게 된다.
로마의 도로와 주차 상황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역사와 문화가 얽힌 도시는 오랜 세월 동안 주차장 없이 빽빽하게 지어진 건물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결과 골목과 도로는 사실상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도로는 넓지만 절반 이상이 주차 공간으로 차량이 운행할 수 있는 곳보다 주차 공간이 훨씬 넓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도로는 제 기능을 잃고 교통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신호 체계가 정교하지 않은 이곳은 일방 통행로와 회전 교차로가 많고 신호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도로에서 차량보다 사람이 우선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운전자는 갑자기 나타나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우선시되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교통 체계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오토바이는 자동차 다음으로 로마에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아무 곳에나 세우지 않고 따로 마련된 오토바이 전용 주차 공간에 한다. 복잡한 출퇴근 시간에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엉켜 있어도 교통경찰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실타래가 풀리듯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위험하다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많은 가정에서 아빠가 출근길에 오토바이 뒤에 아이를 태우고 등교시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구별하기 어렵지만 안전하게 헬멧과 복장을 갖춰서 입은 오토바이 여성 운전자를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제한 속도가 우리보다 느리기는 하지만, 운전자의 양보와 배려로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초행길에 5방향 회전 교차로를 역방향으로 진입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때 뒤따르던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위험을 알리고, 거의 동시에 마주 오는 차량과 4방향 차량이 정지하여 우리 차가 후진해서 제 방향을 찾을 때까지 모든 차량이 경적 소리 하나 없이 기다려 주었다. 신호를 잠시 지체해도 클락션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던 때와 달리, 위급 상황에서는 모두가 이해와 배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통 후진국이라는 비판보다는 오히려 선진국다운 운전자들의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속도로 상황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제한 속도는 있지만 단속 카메라가 없고, 대부분의 고속도로를 오토바이도 달릴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국가 경찰인 고속도로 순찰대 차량이, 우리가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벤츠”와 “람보르기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교통 수단으로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차량을 잡기 위해서라고 한다. 도로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전문성을 고려해서 공권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모습이 부럽고 놀라웠다.
로마의 교통 문화는 단순한 관찰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교통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고, 그 안에서 우리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