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정
요란하던 새벽비가 그쳤다. 덕분에 맑은 하늘이 반겨주는 아침이다. 글쓰기를 앞두고 긴장과 설렘으로 번잡했던 내 마음도 새로워진 기분이다. 아주 오래간만에 글을 쓴다. 출산 전까지 지겹고도 고되게 일했던 방송작가 일에 학을 떼고,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나를 움직인 건 역시나 아들이다. 아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엄마, 엄마는 직업이 엄마예요?”
아들의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웃음이 빵 터졌고, 이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질문을 되뇌었다. 나란 사람의 직업은 뭘까, 과연 엄마도 직업일까…. 출산 직후, 양가는 물론 주변에서 육아와 관련해 어떠한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 자연스럽게 나는 전업주부가 됐다. 그렇게 쭉 나의 직업은 ‘엄마’였나 보다. 노트북에서 떨어질 일이 없었던 내 손은 이제 아기 젖병과 공갈 젖꼭지가 차지했다. 더 이상 시간에 쫓겨 방송 대본을 쓰지 않아도 되고, 전화 한 통에 벌벌 떨며 섭외 전화를 걸 일도 없었다. 그 대신 24시간을 비상 대기조처럼 매일매일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삶이 시작됐다.
자그마한 신혼집에 어느새 하얗고, 아기자기한 살림은 온데간데없다. 가구마다 모서리 보호 쿠션이 덕지덕지 붙었고, 생전 알지 못했던 아기용품이 가득 채워졌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덩그러니 남겨진 아기와 나. 나는 아기가 잠들어있는 안방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내 영혼을 깨워주던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모유 수유를 위해선 꾹 참아야 한다. 매 끼니 먹으래도 마다하지 않을 최애 메뉴인 매운 떡볶이도 마지막으로 언제 먹었나 싶을 만큼 뇌리에서 지워야 한다. 이렇게 하나, 둘 내 생활 패턴의 모든 것을 아기에게 맞춘다. 하지만 내 의욕과 달리, 내 노력과 상관없이 엄마가 된 나는 내 삶이 너무나 힘들었다. 출산 전에 익히 들어온 산후우울증을 피할 길이 없었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단 20분, 주말에 미리 끓여둔 미역국에 밥 한 덩어리를 말아 후루룩 들이마시다시피 하면서 내 눈에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이게 맞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엄마로서 내 자질을 끝없이 고민하고, 나중엔 내 모성애의 유무까지 따지고 든다. 결국 하루의 마무리는 곤히 잠든 아기에게 ‘엄마가 미안,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래.’ 사과하는 것으로 끝나기를 수개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굴레도 아기의 옹알이 한 마디, 사랑스러운 눈 맞춤이 반복되며 점차 나아졌다. 어둡고, 외롭고, 고달프기 그지없던 늪에 따스한 볕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내 아이의 탄생 3,000일을 기념하며 집에서 소소한 파티를 열었다. 매일 새로운 육아 고민이 쌓여가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 경력 9년 차가 아닌가. 회사 직급이었으면 과장 짬밥인지라 나도 나름의 여유를 찾았다.
어느덧 아이는 혼자서 샤워도 하고, 시간에 맞춰 학교와 학원을 오갈 수 있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미리 사야 하는 준비물 정도만 챙겨주면 더 이상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대견스러움과 동시에 현저히 줄어든 나의 역할로 인해 나는 방황하는 시간이 늘었다. 혼자서 집에 우두커니 있을 때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문득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아이와 남편이 없는 집에서 짜릿한 해방감을 느끼며 잠깐 휴식을 취하려던 건데, 간혹 정신 차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한다. 넷플릭스에 한 번 로그인하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 어디선가 들어본 신작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노래를 틀어놓으려고 유튜브를 켰다간 내 영혼까지 저격에 성공한 알고리즘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이렇게 시작된다면 그날 하루는 제대로 ‘자유부인’이다. 이런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여지없이 나의 낭비된 시간을 되짚어본다. 물론 내가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여느 전업주부와 마찬가지로 주부가 해야 할 대부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업주부의 생활도 직장인처럼 무한 반복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익숙해지면 점차 간단해지지만 그렇다고 생략할 수 없는 작업의 연속이다.
‘돌밥’이라는 줄임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린다.”는 요즘 엄마들의 일상용어다. 들을 때마다 참 웃프다. 엄마라고 해서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요리가 뚝딱 완성되고, 청소기를 들자마자 집이 반짝반짝하게 깨끗해지겠는가. 우리 가족 먹일 생각에 재료부터 꼼꼼하게 준비하고, 많은 시간 동안 땀과 정성을 요구하는 게 바로 엄마다. 게다가 아이의 식단표를 참고해서 겹치지 않는 식단을 차려내는 세심함과 미술이나 체육활동을 고려한 의상을 골라 입히는 센스도 필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어느새 9년 차 엄마가 아니던가. 안타깝지만 이 정도의 살림은 이미 익숙해지고도 남은 세월이다. 그럼에도 내 삶의 질은 스스로 불만족스러운 상태다. 특별한 일 없이, 작은 계획 하나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나의 하루가 질적으로 궁핍해짐을 느낀다. 온전한 나의 시간이 늘어남에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투루 소비한 나의 잉여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이다. 지금껏 이렇게 지내왔는데 왜 지금의 나는 내 잉여 시간이 왜 이렇게 아까운 걸까? 왜 스스로 자책하게 되는 걸까? 답답한 고민을 이어갔다. 그 결과, 그 원인 또한 나에게 있었음을 알게 됐다.
"당신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낭비하지 마세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한 연설이다. 나는 엄마로서 내 가족 챙기는데 살았을 뿐,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내가 오늘 해내야 하는 집안일에만 몰입했다. 내가 나의 자투리 시간을 나를 위해 충분히 잘 활용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자책하고 후회하진 않았을 테니까. MBTI 중 계획형인 J 성향이 강한 나는 엄마로서 할애하는 시간 이외에 남는 시간마저 가족 걱정, 살림 준비에 치여 살았던 나다. 자고로 집안일이란 평생 끝나지 않는 과제가 아니던가. 정말 피곤할 때도 이것까지만 하고 쉬어야지 하다가 금세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되곤 한다. 끝내 나의 여유는 오가는데 없이 잡념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잠깐의 틈마저도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틀었다간 제대로 된 휴식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킬링타임이 돼버린다. 하지만 이제야 아이가 자립하면서 더 많이 허락된 시간적 여유 덕분에 나는 이제부터 나를 찾아보려 한다. 더 이상 엄마 역할에만 국한된 ‘나’가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이기 전, 한 아이의 엄마이기 전의 ‘나’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30대 후반, 결코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 늦지 않은 나이의 나는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한 나에게 한줄기 깨달음으로 다가온 책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내 한계를 빨리 알아내고 인정해야 한다. 그 순간부터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내 한계를 알아내는 방법은 도전하는 것이다. 도전이 성공하면 더 큰 목표를 향해 도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실패하는 순간이 온다. 그 지점이 나의 한계점이다. 거기서 머무르지 말고 나의 한계치를 키우면 된다. 모든 성공한 사람이 이 과정을 거친다.”
- 고명환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의 저자는 도전하기 이전에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부드럽고 따뜻한 카푸치노를 좋아하고, 우리 가족 입맛과 달리 육류보다 해산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까지 전반에 걸쳐 뉴스를 자주 찾아보고,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예전에 방송작가로 일하게 된 계기 역시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게 하고, 뜨거운 감성을 자극하는 사람 냄새가 폴폴 풍기는 다큐멘터리가 좋아서였다.
잊고 지냈다. 나는 글을 써왔던 사람이라는 것을. 쓰는 순간 울컥 눈물이 났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하는 아들 바보로 아들 수발에 공들였지만, 이제는 나를 사랑하는 일에도 나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도전하는 엄마가 되어보려 한다. 행여 가정을 돌보는 나의 모습이 누군가 보기에 부족해 보일지언정 난 오늘을 살아낸 나를 칭찬하고 아껴주련다.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으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을 떼 본다. 나는 도전하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