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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잉그뤠잇 Aug 15. 2024

다시, 글이다.

나를 사랑하는 여정

“너, 빨리 안 나와? 치질 걸려!”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나는 엄마에게 혼날까 봐 잔뜩 긴장한 채로 빼꼼히 화장실 밖을 살펴본다. 바지춤에 숨긴 책이 행여나 떨어질까 쭈뼛쭈뼛 슬금슬금 내 방으로 들어간다. 어느새 엄마는 내 방에 쫓아 들어오셨다. 


“너, 또 책 숨겨서 들어갔지?”

‘앗, 어떻게 아셨지? 이번 책이 너무 커서 티 났나?’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책을 숨기고 화장실에 오랜 시간 앉아 있다가 크게 혼쭐이 났다. 그 정도로 나는 책을 엄청 사랑하는 아이였다. 화장실에 씻으러 갈 때도, 잠들기 직전에도 내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있었다. 이렇게 내가 책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순전히 엄마 덕분이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부모님 그리고 오빠와 나까지 모두 합해 여섯 식구. 대가족인터라 부모님 모두 쉼 없이 일하셨지만 살림살이는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도 책은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는 엄마의 지론으로 따라 내 방에는 벽면 가득 책장이 차지했고, 다양한 책들이 즐비했다. 비록 또래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책만으로도 좋았다. 나에게는 책이 가장 좋은 친구이자 장난감이었다. 책장 왼편부터 차례로 쭉 읽었다가 다음엔 오른편부터 쭉 반복해서 읽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면 얇은 종이를 위에 덧대어 삽화도 따라 그려도 보고, 나는 그렇게 놀면서 자랐다. 그러던 나는 대학 입시를 목표로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초등학생 때보다 확실히 독서의 양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해리포터 신간을 대여하려고 학교 도서관 앞으로 새벽 등교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즐거운 추억이 남아 있다.


그렇게 책을 사랑하던 아이는 커서 방송작가가 됐다. 정확히는 시사교양프로그램 구성작가. 부모님의 권유로 진학한 나의 전공은 점차 내 적성과 맞지 않음을 느꼈고, 부모님을 설득해 국가자격증 취득을 끝으로 관련 전공 공부를 마무리했다. 그 후,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어떤 게 있을까 고민했다. 그 고민 끝에 방송 일을 해 보리라 결심했다. 나는 문예창작이나 국문학 관련 전공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방송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어릴 적부터 아빠와 즐겨보던 다큐멘터리에 많이 매료된 터라 나의 새로운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직접 대본을 쓰는 데다가 내가 쓴 글을 성우가 그대로 읽고 방송에 나간다니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졸업 후, 방송아카데미를 수료하며 나는 곧바로 방송작가로 취업했고, 그렇게 방송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불 들어옵니다. 3, 2, 1 큐!”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PD의 큐 사인에 나는 방청석을 향해 소리 없는 몸짓으로 박수를 유도한다. MC의 오프닝 멘트로 프로그램 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난 중앙 카메라 옆에 앉아 MC와 출연자, 방청객들을 살핀다. 시간에 맞춰 대본대로 잘 흘러가는지는 물론 출연자의 얼굴 각도와 시선 방향, 졸고 있는 방청객은 없는지 꼼꼼하게 챙긴다. 수정할 일이 생기면 커다란 글씨로 스케치북에 적어 번쩍 들어 올린다. 몇 시간을 훌쩍 넘긴 녹화를 마치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이구나 싶다. 

나는 방송작가로 일하는 동안 참 행복했다. 프로그램 출연자를 섭외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분의 삶을 들여다보며 인생을 배웠다.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받을 때도, 내가 도움이 되기도 하면서 인연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시야가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또 프로그램 끝날 때쯤 자막에 내 이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부모님의 지인들이 알은 체하시면 부모님의 어깨가 태평양처럼 넓어지는 것도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난 매일 녹초가 되기 일쑤였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매우 바빴다. 시간당 스케줄이 넘어서 분당 계획을 세우고 빽빽하게 줄지은 ‘To do list’를 지워나갔다. 녹화가 없는 날에는 몇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만 들여다보는 탓에 목부터 허리, 손목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쉬는 날에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방송작가 생활에서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바로 압박감. 완벽한 대본을 위한 부담감은 기본이고, 시간에 대한 강박, 실수에 대한 압박이 상당했다.


한 번은 특강 프로그램을 할 때의 일이다. PD와 작가를 비롯해 카메라, 음향, 자막, CG 그 외 제작진에다가 출연자 아나운서 1명, 강연자 1명 그리고 방청객 80명까지. 특강 프로그램 녹화에는 어마어마한 인력이 동원됐다. 겨우 시간을 쪼개어 출연하시는 강연자를 모시고 매주 1편씩 녹화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하루에 방송 2회분씩 녹화를 진행했다. 때마침 우리 팀에는 나와 동갑내기 막내 PD가 새로 입사하여 함께 녹화를 하게 됐는데…. 


“으악! 큰일 났다!”


모든 녹화를 마치고 촬영 파일을 편집용 컴퓨터로 옮기던 막내 PD가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2회 차 녹화분이 1회 차 녹화 분량 위에 덮여서 녹화가 된 것이었다. 그저 메모리카드의 이름을 제때 써놓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메인작가, 메인 PD는 오늘 촬영을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며 강연하신 교수님을 모시고 회식 장소로 가던 길에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저녁식사를 했다. 뭐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무슨 맛인지 기억에도 없다. 그리고 다음 주 주말, 우리는 또다시 첫 번째 분량의 녹화를 진행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연자 모두 똑같은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80명의 방청객과 전체 제작진이 모여서 똑같은 내용을 몇 시간에 걸쳐 다시 녹화했다. 그날 이후로 막내 PD는 두 번 다시 회사에서 볼 수 없었다. 자책감에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었단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더 큰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방송작가로 일한 지 7년 차, 나는 출산을 앞두고 방송국을 그만뒀다. 이제 7년 차 방송작가로 경력 단절된 채 나는 9년 차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방송작가를 그만둔 후,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쓸 여유도 없었지만 글을 써야 할 목표도 없었기에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글이라고는 육아정보를 얻으려 들락날락한 맘카페, 아이 일상을 간간이 올리던 SNS 외엔 전무했다. 독서도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육아도서만 간신히 읽을 뿐, 내가 좋아하던 에세이, 시, 소설 모두 제대로 읽은 지 꽤 오래됐다. 하지만 이런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아들 때문이다. “엄마는 직업이 엄마예요?”라는 뜬금없는 아들의 질문에 나는 스스로 질문의 늪에 빠졌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지금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내게 남는 건 글이었다. 지금은 아들 챙기느라 바쁜 엄마로 살아가는 중이지만 과거의 난 책을 좋아했고,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아들은 내가 동화책을 써줬으면 좋겠단다. 내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아들의 소원을 접수하고, 꾸준하게 글을 써보기로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글쓰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작가 트라우마’일까. 방송작가로 일할 당시 힘들었던 기억이 내 마음속에 아직도 생생한가 보다. 방송작가 일에 학을 떼고, 두 번 다시 글을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랬던 내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다시 한글프로그램을 켜고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니 여전히 얼떨떨하다. 게다가 7년 차 방송작가에서 경력 단절된 지 9년 차의 직업이 ‘엄마’인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자신감도 떨어진다. 그러던 중 나는 글쓰기의 부담감을 떨쳐낼 소중한 글귀를 발견했다.


“배산임수한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한 평 고시원에 사는 사람에게 나오는 글이 있다. 같은 여자라도 아이 둘 키우며 일하는 주부인 내가 감각하는 세상과 연구실에서 종일 보내는 교수가 접속하는 세상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쓸 수 있는 글도 다르다.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가 발 디딘 삶에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된다.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뿐이랴. 글쓰기는 만인에게 공평하다.” 

- 은유 <쓰기의 말들>




위의 문구처럼 글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나의 글은 나에게서 나온다. 글감도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들 중에, 나의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경력단절녀’이고, 외부 사회활동이 없는 ‘전업주부’라고 해서 글을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저자 소개에 쓸 그럴듯한 직함은 없지만 글쓰기는 만인에게 공평하므로 어떤 것도 핑곗거리가 될 수 없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기에 나만이 쓸 수 있는 나의 글이 있다. 새삼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다잡자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담백하게 나 자신을 써보리라…. 이제 나의 세상을 가득 담은 글로 다시 시작하자 다짐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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