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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잉그뤠잇 Aug 22. 2024

아들이랑 수원까지 야구 응원 가보셨어요?

“최! 강! 한! 화!”


여기는 수원KTwiz파크. 우리 가족은 한화 이글스의 원정 응원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어느덧 경기는 8회 초.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뒷짐을 진 채 상체를 젖히며 목청이 터져라 소리친다. 마이크 없이 오로지 육성으로만 응원하는 소리가 야구장 전역에 울려 퍼진다. 3루에서 응원한 우리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그 미세한 파동이 다시 나에게 전달될 때 닭살이 절로 돋는다. 우리의 응원이 저 멀리 외야수까지 들리기를, 이 응원소리를 들은 선수들이 다시 힘내기를 간절히 바라며 외치고 또 외친다. 내 옆에는 귀여운 나의 생명체, 아들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일어서서 똑같이 배를 내밀며 응원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며 귀여움과 동시에 내 아들이 야구를 이해할 만큼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 아쉬움이 교차한다. 하늘 높이 뜬 상대팀의 타구를 내야수가 가볍게 잡아내면서 경기가 끝났다.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무려 18대 7이라는 큰 점수 차를 내며 승리했다. 아들과 우리 부부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함성을 지르며 방방 뛰었다.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이날 경기는 거의 이닝마다 안타와 홈런이 쏟아지며 볼거리가 풍성했다. 덕분에 경기 시간이 늘어났고, 수원에서 우리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아들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격한 응원과 흥분으로 행여나 몸살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내가 무색하게 아들의 컨디션은 두말할 것 없이 최상이었다.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율동을 곁들여 한화 이글스의 응원가 메들리를 선보였다. 이 날이 바로 아들이 응원하는 야구팀의 경기를 직접 야구장에서 처음으로 관람한 기념적인 날이었기에 더 강철 같은 체력이 솟아났나 보다. 우리는 야구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야구장을 더 방문할 것을 약속하며, 아들의 여름 방학을 기념하는 첫 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사실 작년까지는 손흥민 선수를 좋아해 토트넘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매일 아침 챙겨보던 아들이었다. 카타르 월드컵, 아시안컵을 보며 그간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는데, 아들의 취향이 순식간에 야구로 바뀌었다. 지난 5월, 아들이 우연히 유튜브채널 ‘채널십오야’에서 제작한 <찐팬구역>이라는 야구 응원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찐팬구역>은 프로야구팀 중에 하나인 한화이글스를 응원하는 연예인 4명이 상대팀을 응원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야구를 보며 응원하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한화 이글스는 대전을 연고지로 하는 팀이다. ‘빙그레 이글스’에서 ‘한화 이글스’로 이름을 변경한 후,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고, 이후로는 아직까지 우승 기록이 없다. 오랜 기간,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주로 하위권에 머무는 성적에 그치고 있다. 때문에 ‘한화 이글스 팬은 인성이 좋다, 보살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나는 승부욕 강한 아들이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게 된 것이 의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화 이글스 정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곁에서 많이 지지해주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즐겨 보면서 자랐다. 또 나는 2002 한일월드컵의 신화를 직접 보고자란 월드컵 세대가 아닌가. 4년마다 치르는 월드컵뿐 아니라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중계를 재미있게 봤다.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한 적은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나 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한 치의 결과를 알 수 없는 스포츠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 시속 150km/s로 날아가는 빠른 공을 타이밍에 맞춰 타격하는 장면, 숨이 차도록 달리고 몸을 던져 슬라이딩하는 선수들, 담장에 부딪히더라도 끝까지 공을 놓치지 않는 모습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나의 흥미를 아들이 고스란히 닮았나 보다. 아들도 나처럼 스포츠를 좋아한다. 


“오늘 한화 야구 채널 몇 번이에요?”


야구가 우리 집 분위기를 변화시켰다.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는 야구 예능을 찾아보고, 야구 경기가 있는 날 저녁은 무조건 야구 중계를 본다. 이제까지 내 취향대로 올드팝이 잔잔히 깔리던 우리 집에는 이제 한화 이글스의 응원가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아들은 받고 싶은 선물이 모두 한화 이글스 관련 상품으로 바뀌었다. 아들은 몇 년에 걸쳐 모은 소중한 용돈으로 한화 이글스의 유니폼과 응원도구를 하나 둘 사기 시작했다. 평소 아들이 자기의 용돈을 대단히 아까워한 탓에 평생 그 돈은 쓸 일 없어 보였는데, 아들의 지갑을 열게 하다니…. 아들의 대단한 야구 사랑을 새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야구는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남편마저 변화시켰다. 남편은 흔히 말하는 ‘군대 축구로 휴가증 받았다’는 영웅담도 없었다. 학창 시절에도, 군대에서도 남편은 응원만 담당했단다. 한 번은 우리가 신혼일 때, 목동야구장에서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함께 야구장을 찾았었다. 남편은 야구 규칙을 모르니, 내가 곁에서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줘야 했다. 그것도 잠시 그저 우리는 식당을 찾은 사람들처럼 야구장에 들고 간 먹거리로 배를 채운 채 돌아왔었다. 이랬던 남편이 아들에게 축구나 야구 규칙을 제대로 배워나가는데 열심이다. 

남편이 이렇게 야구에 빠져들게 된 것은 오로지 아들을 향한 사랑 때문이다. 아들이 친구들을 불러 함께 야구하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야구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소프트볼과 소프트야구 배트, 어린이 글러브를 여러 개 구매했다. 그리고 남편은 매주 주말마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의 야구 경기를 함께하고 있다. 또 남편은 주말에 쉬는 시간을 기꺼이 희생하면서까지 아들의 취미를 함께 공유하기 위해 2시간, 3시간에 걸쳐 같이 야구를 한다. 때로는 심판을 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잘 타격할 수 있도록 투수 역할도 자처한다. 그리고 챙겨간 구급품으로 다친 아이들을 돌봐주고, 얼음물을 가득 채운 주전자를 챙겨가 아이들의 목도 축여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제는 주말 아침이 되면 아들 휴대폰으로 오늘은 야구 몇 시에 하냐는 아들 친구들의 연락이 쇄도한다. 남편은 아들에게 “오늘 하루는 쉴까?”라면서도 “오늘은 누구누구 온대?”라며 금세 아들과 나갈 채비를 한다. 이런 남편을 옆에서 지켜볼 때면 ‘남편이 참 가정적이구나. 내가 결혼을 잘했구나.’ 싶다. 


우리는 주변에서 대부분의 자녀들이 무의식적으로 부모를 닮아가는 모습을 쉽게 목격하곤 한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의 또 다른 자화상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성품은 물론 손가락, 발가락 모양 그리고 곱슬머리까지 전혀 닮지 않은 부분을 찾기가 더 어렵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친정아빠, 그런 아빠를 닮은 나, 또 그런 나를 닮은 내 아들까지. 관심사, 취향까지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렇게 다음세대가 앞선 세대를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한편 자녀가 부모에게 끼치는 영향도 상당하다는 것을 요즘 들어 더 깨닫고 있다. 나는 불현듯 그림책 하나가 생각났다.


“태어날 때부터 닮은 곳도 있고,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닮아 가기도 해.

닮고 싶어서 따라 하기도 하고.


가족을 보면

다들 닮은 곳이 있어.

너는 누구를 닮았니?

또, 어디를 닮았니?”


- 정준영 <가족은 서로 닮아>



나는 위의 글에서 “닮고 싶어서 따라 하기도 하고”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 모두는 유전적으로 닮기도 하고, 오랜 시간 같은 환경에서 지내며 닮는 습관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닮고 싶어서 닮아가는 것이 가족 아닐까. 부모도 자녀를 닮아간다. 우리 부부의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아들이 관심 있는 것에 우리도 궁금증이 생기고,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든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아들의 도전으로 인해 우리 또한 새로운 경험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아들의 취향이 곧 우리의 취향이 되고, 우리 가족을 변화하게 만든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일 테다. 서로의 취향을 배우고 중간에서 만나는 과정을 반복하며 그렇게 우리는 한 가족으로 똘똘 뭉치게 된다. 공통된 관심사 하나로 우리 가족의 결속력이 더 생겨나고, 함께 하는 시간으로 우리 가족의 추억이 쌓여간다. “야구 원정 응원” 이런 것은 고생도 아니다. 행복한 우리 가족만의 추억을 만드는 여정 중 하나일 뿐이다. 한화 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도 멀지만 수원 원정이 대수랴. 우리가 사는 수도권 구장은 이미 다 도장을 찍었고, 더 멀리도 충분히, 기꺼이 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의 행복한 시즌이 더 이어지길 바라며, 한화 이글스의 가을야구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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