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정
“아들아, 이런 장난은 앞으로 하지 않도록 하자!”
“알겠어요. 근데요. 엄마, 울어요?”
“엄마가 널 엄청 사랑하니까, 흐엉엉엉….”
“혼나는 건 난데, 엄마가 왜 울어요?”
이런. 또 울고 말았다. 난 엄청나게 눈물이 많은 편이다. 어린 아들을 훈육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내 눈물 참기다. 아이의 눈망울에 눈물이 슬슬 차오르는 모습만 봐도 내 눈에서는 더 빠른 속도로 눈물이 차오른다. 내가 혼내는 입장이 맞는데, 내가 먼저 서럽게 울고 있다. 다른 이가 이 장면을 봤다면 명명백백하게 엄마의 잘못으로 상황이 종결된 느낌이다. 아이를 훈육하기 싫은데 억지로 훈육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내 아이를 훈육하는 일은 언제나 속상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안전과 직결되는 장난이나 예의 없는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훈육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이런 내 원칙에 가장 큰 걸림돌이 나의 눈물샘일 뿐. 내가 먼저 울지 않겠노라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아이의 눈물보다 나의 눈물 속도가 훨씬 빠르다. ‘눈물샘에 문제가 있나? 병원 진료를 받아봐야 할까?’ 혼자서 가끔 고민해 볼 정도. 하지만 요즘 이런 정도의 눈물은 약과다. 한때 나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에 파묻혀 지낸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의 일이다. 나는 출산 후에 양가 부모님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산후조리원을 나온 직후, 정부 지원 산후도우미를 신청하여 2주 동안 우리 집을 출퇴근하며 살림을 도와주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만난 산후도우미는 경력이 그리 많지 않으셨다. 나도 아기 돌보는 일이 처음이었지만, 그런 나를 도와주는 손길도 어렵긴 마찬가지.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노력하셨으나 결국 내 손을 거쳐야 정리가 되는 행태였다. 밤낮으로 모유수유하며 피로가 고스란히 쌓인 데다가 내가 아기도 돌보고, 어르신 도우미까지 모시는 느낌이었다.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점점 지쳐갔다. 그래도 내 끼니를 차려주고, 치워주는 걸 호강으로 여기자 싶어 꾸역꾸역 산후도우미 이용기간인 2주일을 잘 버텼다. 해방감도 잠시, 나에겐 이제 끝나지 않을 고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산후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남편이 출근하면 집 안에는 나와 아기 둘 뿐. 남편이 집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14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때까지 온전히 나와 아기 둘이서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데…. 이미 낮아진 자존감에 체력도 한계에 다다르고, 갈피를 모르는 초보엄마로서는 숨 막히고, 살 떨리는 시간이 돼버렸다. 나는 아기 두 돌 때까지 미디어 노출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일찍이 TV를 가려두었었다. 때문에 우리 집은 아기의 울음소리와 아기를 달래는 소리 이외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기를 예민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클래식을 틀어놓으려고 했으나, 음악을 재생시킬 여유도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이 고요했고, 난 고독했다. 아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아기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막막함, 엄마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아기가 왜 우는지, 내가 잘 보살피고 있는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어느 것 하나 확신이 없는 나 자신에 대해 하나 둘 의구심이 생긴다. 엄마로서 갖추어야 할 모성애와 육아 지식도 모자란 것 같아 자괴감마저 든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새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홀로 일어나 새벽 수유를 하고 아기를 재우면서도, 아기가 낮잠 자는 사이 부엌 구석에 서서 밥을 뜨면서도 눈물은 쉼 없이 흐른다. 그립고 반가운 친정 엄마와의 통화도 차마 길게 할 수가 없다. 목소리만 들어도 눈앞을 가리는 눈물에 자꾸 목이 메는 것을 들킬까 봐 나의 대답은 점점 짧아진다. 일상 중에 눈물 흘리는 빈도가 점점 많아졌고, 나중엔 반복되는 눈물을 자각하기도 어려웠다. 기나긴 어두운 터널에 나만 바라보는 아기를 들쳐 매고 혼자 걸어가는 기분. 걸어갈수록 더 어두컴컴하고 끝이 안 보여서 무서웠다. 하지만 이렇게 눈물로 뒤범벅된 나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찾아왔다.
“이 냄새? 설마 커피야?”
비몽사몽 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던 봄날, 평소처럼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커피 냄새가 났다. 얼마 만에 맡는 커피 냄새였을까. 나는 커피 향에 홀린 듯 무작정 아기를 안고 슬리퍼를 끌며 현관을 나섰다. 마지막 외출 날짜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무작정 커피 향에 이끌려 내려가보니, 그곳엔 새로 생긴 카페가 있었다. 다음 주에 정식으로 카페를 오픈하기에 앞서 테스트 삼아 커피를 내리고 있다는 사장님의 인사가 가슴에 사무치게 반가웠다. 냉동실에 얼려둔 모유도 있겠다, 나는 모유수유 걱정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커피를 마셨다. 임신 전에는 하루 2~3잔을 기본으로 마시던,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였다. 먹구름이 낀 듯 우울한 내 마음이 고소한 커피 한 모금에 금세 향기로워졌다. 불현듯 나는 깨달았다. ‘그래. 나는 원래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지. 나에게도 예전처럼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는 있구나!’
그렇다. 나는 엄마가 되기 이전에도 충분히 잘 살아왔고, 세상에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하다. 이런 나의 세계에 귀여운 ‘나의 미니미’가 선물로 찾아왔을 뿐이라는 걸 나는 새로이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나서야 내 기분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잠시 우울하구나, 지금은 아까보다 좋아졌네.’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의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나는 이 날을 계기로 매일 부지런히 외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카페, 슈퍼, 빵집 등 유모차를 밀고 다닐 수 있는 동네 가게들을 빠르게 섭렵해 나갔다. 외출에 있어서 거창한 목표는 필요 없었다. 그저 내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맛있는 커피 한 잔, 귤 한 바구니, 옥수수 스콘 한 조각이 하루하루 내 행복의 소재가 됐다.
“오늘 하늘 색깔은 엄청 파랗구나. 저기 구름 보여? 정말 양처럼 생겼네.”
아기와 나누는 대화의 양도 더 많아지고, 아기를 바라보는 나의 표정도 더 밝아졌다. 아기가 잠시 칭얼대도 무슨 문제일까, 내가 뭘 잘못했나 허둥지둥하지 않았다. 아기와 눈 맞추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보다 여유 있게 아기를 달랠 수 있게 됐다. 수유 텀이 점차 길어지면서 대중교통을 타고 근교에 있는 시장, 백화점 문화센터 등 점점 나의 생활 반경이 넓어졌다. 기저귀, 젖병, 텀블러, 손수건 등 아기용품을 바리바리 챙겨 들어도 난 기꺼이 행복한 마음으로 외출했다. 이전 같으면 내가 집 안에서 나의 온 신경을 아기에게 곤두세우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나는 ‘집 밖’이라는 전혀 새로울 것 없지만, 내게 다시금 특별해진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디뎠다. 아기를 보려고 다가오는 어르신들과 넉살 좋게 인사를 나누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또래 초보 엄마들과 자연스레 소통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점차 웃음을 되찾았다. 이제 아기의 뒤집기나 “음마, 마마”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에 감격의 눈물이 맺힐 뿐, 나는 더 이상 깊은 슬픔에 잠겨있지 않았다.
“여러분, 지금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도 괜찮고 지금 내가 누군지 당장 몰라도 괜찮습니다.
혼란스러울 때는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입니다.
그 안에 답이 있습니다.
일단 지금 감정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 주세요.
그것이 자존감의 시작이니까요.”
- 이요셉, 김채송화 <나만 나처럼 살 수 있다>
나는 지금도 눈물이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렇다고 내가 여전히 우울한 상태는 결코 아니다. 기쁠 때, 슬플 때, 감격스러울 때, 놀랄 때, 화가 날 때, 황당할 때… 나의 눈물은 모든 감정과 맞닿아있다. 눈물이 내 감정의 밑바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주위에 유독 잘 웃는 사람이 있고, 잘 놀라는 사람도 있지 않나. 나는 그저 잘 우는 사람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느끼는 비슷한 감정 수준에 눈물 한 방울이 더해진 것일 뿐. 그렇다고 감정이 엄청나게 격해지거나 과한 감정이입을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위의 책 구절처럼 ‘울보인 나’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하기로 했다. 이 눈물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계속해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고여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눈물을 부정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우울감에 더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결국 울보가 눈물을 극복하는 방법이란 따로 없다. 애초에 눈물이란 내가 아무리 울보이건 아니건 애당초 이겨내야 하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눈물 좀 흘리면 어떠한가. 그만큼 솔직한 표현이 어디 있다고. 주위에서 울보로 불리는 이들을 응원의 말을 남기고 싶다. 당신의 눈물 한 방울이 당신의 솔직한 기분을 알아주어 다행이라고, 그 눈물 덕분에 당신에게 보다 개운한 내일이 찾아올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