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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잉그뤠잇 Sep 12. 2024

뮤직, 스타트!

나를 찾아가는 여정

“원, 투, 쓰리, 포! 투, 투, 쓰리 포!” 


이곳은 헬스장 한쪽에 마련된 GX프로그램실. ‘다이어트 댄스’ 수업이 한창이다. 반짝이는 거울 앞에 선 사람들이 강사의 구령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탱크톱에 레깅스를 입은 사람,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티셔츠에 힙합바지를 입은 사람, 아이돌 무대의상처럼 차려입은 사람도 보인다. 가지각색의 차림에도 모두 하나같이 열정 가득한 눈망울이다. 어린 아기를 겨우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와서 운동하는 젊은 엄마, 은퇴 후 취미 삼아 운동하는 아주머니까지 모두 연령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 팀의 일원이 되어 박자 하나, 동작 하나 놓치지 않으려 다들 열심이다.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노래를 따라 하며 각기 움직이는 사람들. 한 시간 동안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은 물론 트로트, 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한 곡, 두 곡 연이어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내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고, 운동복은 이내 땀으로 흠뻑 젖어든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라도 상관없다. 앞서 안무를 외운 이들을 보며 함께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내 리듬으로 승화시키고 신나게 춤추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비록 춤선이 제대로 안 살면 어떠한가. 때론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의 한계를 느끼고 웃음이 터지지도 한다. 하지만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긴 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움직인다면 외운 안무를 틀리지 않고 춤출 때의 그 성취감이란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다이어트 댄스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3월. 아이가 새 학기를 맞아 학교와 학원을 혼자서 오가며 내게 시간적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아이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한동안 나는 방황했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 없이 시간을 허비하기를 몇 주.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냄과 동시에 내 몸과 마음을 가꾸기 위해서다. 사실 나는 일평생을 마른 몸 한번 가져본 적이 없는 ‘모태 통통족’으로 살아왔다. 임신을 하게 되면서 20kg 가까이 몸무게가 늘었고, 출산 후에도 몸무게는 크게 감량되지 않았다. 아마도 혼자 육아하면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챙기기가 어려워 라면, 컵밥과 같은 인스턴트식품을 자주 먹은 탓이 크다. 또 밤늦게 들어온 남편의 식사를 따로 요리해 줄 시간이 없으니 함께 배달 음식을 종종 시켜 먹은 결과다. 게다가 산후우울증으로 꽤나 힘든 일과시간을 보낸 터라 먹는 것에 있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는 생각이 지금의 내 덩치로 불어나게 했다. “맛있는 건 0kcal!”라는 말로 자기합리화하면서 나는 어마어마한 칼로리를 섭취한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내 마음의 상태였다. 살찐 내 몸이 내 마음까지 병들게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산후우울증을 거치면서 낮아진 자존감은 이내 바닥을 드러냈다. 거울 보기도 싫고, 사진 찍는 것은 더 싫었다. 자주 만나는 가족, 동네 지인 외에 경조사 자리에서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도 꺼려졌다. 나를 보자마자 뚱뚱한 내 몸에 대해서 언급할 것만 같고, 걱정을 가장한 농담을 주고받는 오지랖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울, 렌즈, 타인의 눈동자까지 내 모습을 비추는 모든 피사체를 피하고 싶었나 보다. 당시 유행하던 페이스북도 한창 예쁜 내 아이의 사진을 올리며 꽤나 내 행복을 과시했었지만 몇 년 뒤 자연스레 삭제했다. SNS를 끊음으로써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낮은 자존감, 사라진 자신감의 회복을 위해 나 스스로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여실히 느꼈다. 꼭 날씬해야 예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의 내 모습이 내 마음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내린 첫 번째 결단은 바로 다이어트다.


여자의 평생 숙제가 다이어트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다이어트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유행하던 연예인 다이어트들을 많이 따라 해 봤다. 고구마, 바나나, 방울토마토 등 각종 ‘원푸드 다이어트’를 시도하다 결국 억눌린 식욕을 못 이겨 과자, 떡볶이 등 밥을 대신할 간식을 더 많이 먹게 된 적도 많았다. 작년 초에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도 새 마음, 새 몸을 가져보겠노라 야심 차게 ‘덴마크 다이어트’에 도전했다. 다이어트 관련 책에도 자주 등장하고, 다른 다이어트보다 성공후기가 많이 보였던 터라 나름 기대감에 부푼 도전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짜놓은 식단만을 먹으면서 2주 동안 총 6kg이라는 최대 감량 치를 얻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중대한 사실이 있었다. ‘덴마크 다이어트’가 끝나는 날이 바로 설날이었다. 본가와 외가를 오가며 나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명절음식을 흡입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본 최저 몸무게는 단꿈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나는 온갖 다이어트 방법을 많이 시도해 봤으나, 모두 실패했다. 아마 나에게 맞지 않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잘못 실천한 탓이었을까. 내 몸은 다이어트와 요요를 반복하며 점점 망가져갔다. 조금만 먹어도 배로 살찌는 체질이 됐고, 기초대사량은 떨어져 갔다. 조금만 다이어트해도 몸 안에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각종 경고등이 켜진다. 잇몸 안쪽으로 동그랗게 입병이 생기고, 찌릿찌릿한 방광염이 시작된다. 예민해진 탓에 숙면하기도 어렵다. 부족한 수면 시간을 시작으로 아침부터 식욕과의 전쟁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망가져간 내 몸의 변화를 되짚어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살을 뺄 수 있을까 고민이 생겼다. 그러던 중 우연히 TV프로그램을 보다가 마땅한 해답을 얻게 됐다.


“사람들이 보통 내가 한번 운동을 좀 해봐야겠다, 다이어트를 해봐야겠다, 건강해져야겠다고 하잖아. 오늘부터 운동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산다고 생각해야 돼. 너의 삶에 운동이 추가된 게 아니고 삶이 변하는 거야.”


SBS방송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김종국 씨가 다이어트가 시급한 매니저에게 진심을 다해 전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이 마치 나에게 하는 조언처럼 와닿았다. 살을 빼려면 이전보다 덜 먹고, 대신 더 많이 움직이는 것이 진리. 하지만 지금까지 난 이 간단한 명제를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앞두고 매일 큰 결심하고, 혹독하게 채찍질하면서 다이어트란 내게 너무 어렵고도 해결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김종국 씨의 말처럼 ‘오늘부터 운동해야지, 운동이란 할 일이 추가됐어.’가 아니다. 너무 거창할 것 없이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은 채 그냥 한 번만 더 움직이고, 한입씩 덜 먹다 보면 내 삶이 변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생활 습관이 변하고, 내 몸도 변할 것이다. 극단적인 단식이 아니라 서서히 더 움직이고 점차 소식하는 습관으로써 살이 알아서 빠져나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어떻게 하면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더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뇌리를 스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댄스다.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내 인생의 첫 아이돌 HOT를 보면서 나는 내 안에 그간 알지 못했던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춤을 빨리 익혔다. 한번 보면 비슷한 느낌으로 바로 출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음악방송을 보면서 각자 좋아하는 멤버의 춤을 보고 같이 연습했다. 학급 내 장기자랑은 물론 수학여행 장기자랑에도 출전했다. 마냥 수줍고, 쉽게 긴장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난 제일 흥이 넘치는 댄서였다. 중학교 때는 학교축제 때 있을 장기자랑 결승에 진출하면 체육 실기 점수 대신 댄스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안에 친구들과 한 달가량을 연습하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체육 실기 때문에 학교에 오래 남아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뜀틀 실기시험을 피하기 위한 장기자랑을 준비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방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 결과 학년별 장기자랑 오디션에 통과하고, 나는 중학교 축제 무대에서 춤을 췄다. 우리를 동그랗게 에워싼 전교생 무리에서 “오! 000! 000!”하고 곳곳에서 내 이름을 연호하던 그 짜릿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나는 춤을 춰 본 지 꽤 오래됐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댄스 동아리가 있었지만 학업 이외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내가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었다. 하지만 강력한 몸의 기억은 머리의 기억보다 오래가지 않는가. 그렇게 나는 본격적인 다이어트의 일환으로 ‘다이어트 댄스’를 선택했다.


“어떤 사람도 육체적 훈련의 문제에 있어서 아마추어가 될 권리는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강함을 알지 못하고 늙어버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초역 소크라테스의 말>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내가 이 모습 이대로 늙어버린다면 그것만큼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다행히 다이어트 댄스를 시작하며 나의 체중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안 쓰던 근육들을 스트레칭하면서 몸이 개운해지고, 빠른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은 어느새 사라진다. 또 아이의 인간관계와 상관없이, ‘누구 엄마’가 아닌 나의 인간관계가 새로이 형성됐다. 몇 년 만의 일이었다. 그저 한 댄스 팀의 일원으로서 오롯이 내가 맺는 인간관계다. 새로운 인간관계도, 땀 흘려 내 몸을 움직인 덕에 얻는 자긍심도 지금의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거울 앞에서 춤추는 내 모습에 바닥으로 곤두박질하던 자존감도 꿈틀꿈틀 이내 서서히 피어오른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는 다이어트에 도전 중인 엄마다. 다이어트가 실패해도 어떠한가. 나는 지금의 나 자체로 충분히 행복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뮤직,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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