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잉그뤠잇 고객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나왔습니다.”
언제 들어도 반가운 소리다. 난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 커피를 물처럼 자주 많이 마시는 탓에 내 몸엔 피 대신 커피가 흐를지도 모르겠다. 카페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커피가 추출되면서 풍기는 커피 향기를 맡을 때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카페가 너무 많다는 것. 여기저기 가는 곳곳마다 카페가 있어서 커피의 유혹은 하루 종일 계속된다. 나는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나 커피 종류를 특별히 가리지 않는 편이다. 커피에 있어서는 도전정신이 살아있어서 새로 생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도 먹어보기도 하고, ‘여기는 역시 이거지!’ 하는 단골 메뉴도 있다. 보통 오전 시간에 그날의 첫 카페인으로는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요즘 같이 더운 날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마시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실 때면 내 몸 구석구석이 카페인으로 충전되는 짜릿함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면 얼음 때문에 커피의 맛이 연해지는 것이 싫어서 얼음이 녹기 전에 커피를 먼저 충분히 들이켜기도 한다. 자작자작해진 커피와 함께 남은 얼음을 녹여가며 커피의 여운을 즐기면 되니까 말이다. 오후에는 시나몬 가루가 솔솔 뿌려진 따뜻한 카푸치노를 즐겨 마신다. 커피 향 대신 시나몬 향이 먼저 내 코를 간질인다. 머그잔 가장자리에 입술을 살짝 대고, 조심스레 컵을 기울여본다. 따뜻한 우유거품 아래 숨겨져 있던 커피가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나오듯 입술에 거품이 살짝 묻는 게 대수일까. 입술에 묻은 우유 거품을 혀로 쓸어내릴 때면 어느새 내 입 안은 시나몬 향으로 가득해진다. 이렇게 하루에 커피 두 잔은 기본. 카페인 없는 하루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커피를 못 마신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게 됐을까.
내가 고등학생일 때, 나는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봤다. 나의 인생 첫 커피는 바로 커피믹스. 노랗고 길쭉한 봉지에 흔들면 쌔액쌔액 소리가 나는 커피믹스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잠이 미친 듯이 쏟아지던 어느 늦은 밤이었다. 난 식탁 위에 놓여있던 커피믹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커피였지만 난 아주 익숙하게 커피를 만들었다. 식사를 마칠 때마다 내게 커피 심부름을 자주 시켰던 할아버지 덕분이다. 커피믹스는 종이컵에 마시는 게 제일 맛있다던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난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부었다. 뜨거운 물을 쪼르르 따르자마자 커피와 설탕, 프리마가 한데 어우러진다. 첫맛은 달짝지근하고, 끝맛은 처음 느껴보는 씁쓸함이었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쓴맛이랄까? 커피가 맛있게 느껴졌다. 뜨거운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다시 공부에 집중해 본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드는 생각 한 가지. ‘내일 공부할 때 또 마셔야지!’
그 뒤로 독서실을 갈 때마다 혹은 집에서 밤늦게 공부할 때마다 내 손엔 커피믹스 한 개가 들려있었다. 평소 엄마는 내게 커피는 어른이 되면 마시라고 만류하던 터라, 엄마가 몰래 하나둘 커피를 챙겨 먹게 됐다. 그렇게 커피믹스를 노리던 고망쥐도 결국 꼬리가 길어 밟히고 말았다. 어느새 커피믹스 박스가 동이 난 것을 눈치챈 가족들이 커피믹스를 주목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렸을 때 커피 많이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는 잔소리를 실컷 들은 뒤로 나는 더 이상 집에서 커피믹스를 손댈 수 없었다.
‘대학만 가봐라. 대학 가서 커피 실컷 마셔야지!’
커피믹스를 향한 열망이 나를 대학에 합격시켰나 보다. 대학생이 된 나는 카페를 들락날락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이젠 커피믹스 대신 아메리카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씁쓸하지만 깔끔한 그 오묘한 조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를 포장해서 손에 들고 다닐 때면 마치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아서 ‘커리어우먼’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덧입히며 콧날이 절로 높아지는 경험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카페를 즐기며 좀 더 다양한 커피에 입문하게 됐다. 부드러운 카페라떼, 달달한 카페모카, 시나몬향 가득한 카푸치노 등. 커피 브랜드도 여럿 꿰차고, 원두 원산지마다 다른 맛이 난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게 커피에 더 익숙해지며 커피가 내 삶의 지대한 영역을 차지하게 됐을 즈음, 나는 커피 맛의 새로운 차원을 경험했다. 유명 브랜드의 커피, 특별한 원두, 내공 깊은 바리스타의 커피보다도 커피 맛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내가 처한 상황과 공간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송작가로 일하던 때였다. 대본 마감 기한은 코앞인데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 텅 빈 한글프로그램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커피 한잔이 그렇게 사약 같을 수가 없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아이템 회의에서도 나는 커피를 쪼르릅 쪼르릅 연신 마셔보지만 결코 맛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갈등이 깊어진 어느 미팅 자리에서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여줄 커피 향은 나지 않는다. 세상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상황에서 나는 커피를 즐길 수가 없었다. 마주해도 즐겁지 않은 사람과의 커피 타임은 잽싸게 커피를 마시고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미션과도 같았다. 언제나 커피를 맛있게 즐기기엔 나의 내공이 역부족이었나 보다. 난 커피의 씁쓸함이 참 좋았는데…. 내 삶이 씁쓸할 때, 커피는 마냥 썼다.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은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다.
이는 내게 온기를 주고 특이한 힘과 기쁨, 쾌락이 동반된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말처럼 커피는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사람을 각성시키기도 한다. 나폴레옹처럼 나도 나를 정신 차리게 할 방법은 커피 밖에 없었던 듯하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여전히 나는 커피를 찾았다. 커피가 없으면 허전하고, 내 삶이 더 힘들 것 같아 커피에 의존했던 시절이다. 하루에 커피 마시는 빈도가 차츰 늘어났다. 어느 자리에 가도 커피는 기본으로 물처럼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됐다. 목이 마를 때도 물 대신 커피를 마셨으니 나는 늘 깨어있는 상태처럼 지냈다. 어쩌다 커피를 못 마신 날이면 어김없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많은 양의 카페인을 오랫동안 섭취한 탓에 카페인 금단 현상도 쉽게 일어났다. 그러던 내가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임신. 출근길에, 녹화를 마친 후, 나른한 오후를 깨워주던 커피를 하루아침에 금지당했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 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여기니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양수를 맑게 해 주기 위해서 나는 커피 대신 카페인 없는 루이보스를 즐겨 마셨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 커피스틱이 자리하던 회사 책상 위, 우리 집 식탁 위에는 이제 루이보스 티백이 차지했다. 임신 후기에는 하루에 한잔 정도 커피를 마셔도 된다는 산부인과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커피를 다시 마셔볼까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어차피 출산 후에 모유수유를 하려면 또다시 커피를 마실 수 없다는 생각에 이왕 커피를 참아온 거 더 참아보자 싶었다. 그리고 출산 후, 난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게 됐다. 남편이 출근하면 집에는 아기와 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내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과 그럼에도 잘 보살필 방법을 모른다는 자책감까지 더해지며 힘든 시절을 겪었다. 매일 눈물로 감정이 잠잠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유식을 먹일 시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모유수유를 줄여가던 때였다. 여느 때처럼 환기를 하려고 아침 일찍 창문을 열어젖혔는데, 반가운 향기가 났다. 커피였다.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아기띠를 맬 겨를도 없이 아기를 안은 채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내가 살던 빌라 1층 모서리에 작은 카페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내가 바깥을 나간 것이 얼마 만이었을까. 오랜만에 보는 하늘과 내 들숨 한가득 채우는 커피향기가 무척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이 날을 시작으로 난 우리 집 1층 카페 단골이 됐다. 점차 외출 영역도 넓어졌다. 뒤돌아보니 커피가 그 시절의 우울을 치료해 줬다.
이쯤 되니 커피가 내 인생의 동반자 같은 느낌이다. 커피의 달콤함을 느낀 어린 시절부터 커피는 내 하루의 고단함을 안락하게 채워주는 존재였다. 언제나 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어주고, 노동의 윤활유 역할을 도맡아준다. 또 내가 힘을 낼 수 있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게 톡톡히 도와준다. 문득 내가 이런 커피를 닮은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힘이 되어주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동반자 말이다. 커피를 사랑하다 보니, 내가 커피가 되고 싶어졌다. 내 인생이 커피의 크레마처럼 더 깊어지길, 내 일상이 커피 위의 크림처럼 더 달콤해지길 꿈꾸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