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프리랜서
하루를 읽고, 마음을 다독이는 사람.
현재는 만 4세 아이의 하루를 읽고, 엄마의 삶을 다독입니다.
그렇게 오늘을 배워가는 하루다독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엄마에게 서운했던 순간과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을 함께 담은 글입니다.
일상의 작은 사건, 부모님의 손길, 그리고 내 마음과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기록합니다.
"엄마는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지만, 서운함만 있는 글은 아닙니다.
이해와 감사, 놀람과 따뜻함이 뒤섞인 순간들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세대를 잇는
고요한 사랑의 기록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이젠 염색 안 하려고. 염색하는 속도보다 흰머리가 더 빨리 나네.”
그 말이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이 한 문장이 이 화의 전부를 말해준다.
작가는 “엄마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결국 “이해한다”는 답으로 나아간다.
동전보다 따뜻했던 손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 모두의 기억 속 장면이 열린다.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흰머리를 한 올 한 올 찾아 뽑던 어린 시절.
작가는 그 장면을 아주 단순하게 그리지만,
그 안에는 세대의 온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어린 나는 동전 몇 개에 들떴고,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깊은 사랑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이 짧은 문장은 모든 엄마의 마음을 닮았다.
엄마의 행복은 언제나 ‘내가 즐거운 순간’이었다.
그 작은 동전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화폐였다.
“그 염색은 내 결혼식을 끝으로 멈추셨다.”
결혼식은 자식에게는 ‘새로운 시작’이지만, 부모에게는 ‘역할의 완성’이다.
엄마는 나의 하객 중 한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의 배경 그 자체였다.
그날 이후 엄마는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았다.
그 말속에는 담담함이 있다.
오랜 세월, 엄마는 ‘자식을 위해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살아왔다.
그 염색약 냄새 속에는 세월의 흔적과 사랑의 노력,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사랑의 완성은 수용이다
보통 부모의 흰머리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제 많이 늙으셨구나.’
엄마의 흰머리를 처음 발견했을 땐 놀라움이었지만,
그 흰머리가 늘어갈수록 작가는 평온해졌다.
‘엄마가 늙어서 슬픈 게 아니라, 이제 편안해 보여서 좋았다.’
세월이 고요히 비추는 순간
이제 그 모든 시간을 염색으로 덮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이다.
세월의 무게는 빛으로 바뀐다.
그 빛은 강하지 않다.
그저 창가에 스며드는 오후 햇살처럼 잔잔하고,
눈부시지 않게 오래 머문다.
절제된 감정, 깊은 울림
이 화의 문장은 짧지만 여운이 길다.
감정을 과하게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준다.
이 한 줄에는 유머, 현실감, 그리고 삶의 지혜가 함께 들어 있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절제 덕분에 글은 오히려 더 따뜻하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지만,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 균형이 이 글의 미학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한 장면
작가는 묻는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언젠가 나도 아이에게 같은 부탁을 하게 될까.”
이 질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줄로 이어준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단절이 아니라 순환이다.
흰머리를 통해 이어지는 그 순환은
결국 사랑의 형태다.
늙음은 쇠퇴가 아니다
흰머리를 감추지 않는 부모의 모습은 자유롭다.
그 자유로움은 나이 듦을 인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평화다.
그 선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엄마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의 새로운 정의를 본다.
화려함이 아니라, 단정함과 진정성으로 완성되는 미학이다.
꾸밈이 아닌 수용
《엄마는 왜 그랬을까》 07화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다.
사랑은 ‘무언가를 계속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만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엄마는 더 이상 염색하지 않는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충분하다.
그 모습에서 자식은 평온함을 배운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일임을 깨닫는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된다.
“당신의 부모는 언제 염색을 멈추셨나요?”
“그 순간,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리고 당신은 언제부터 흰머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요?”
이 질문들은 단순히 부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맞이할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흰머리는 늙음이 아니라, 삶이 천천히 빛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고요한 빛의 선물
염색을 멈춘 날은 슬픔의 날이 아니라,
자유의 날이다.
자식의 독립을 축하하는 날이자, 부모가 자신을 되찾는 날이다.
이 글을 덮고 나면,
우리는 부모의 뒷모습이 새삼 눈부시게 느껴진다.
그 빛은 세월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 세월을 견뎌온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다.
흰머리는 늙음의 표시가 아니다.
그건 “너 덕분에 나는 나로 돌아간다”는 고요한 감사의 빛이다.
“흰머리는 늙음이 아니라, 사랑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