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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 1년 , 은사스님 시봉

독일군 헬멧, 목검, 샌드백, 禪무도, 산사음악회 출연

by 현루


강원(전통 사찰內 학교) 졸업​비구계를 수지하고 마침내 얻은 자유는 물리적인 자유가 아닌 마음의 자유였다.

이제 수행의 선택을 나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깊은 산, 속세의 소리가 닿지 않는 작은 암자. 은사스님이 사시는 곳.

강원(전통사찰에서 4년 공부)에서의 빡빡한 일정을 끝낸 후 비구계 수지 후 정식 승려가 된 내게, 이곳은 오랜만에 들이마시는 맑은 숨과 같았다.

이 고요한 1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사미계를 받은 후 곧장 공부에 들어가 은사스님을 제대로 시봉 할 기회가 없었던 내게는,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놓여 있던 '빚'을 갚는 시간이자 수행의 연장선이었다.


​암자에서의 일과는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고 정갈했다.


새벽, 어둠을 가르는 예불 소리로 하루를 열고, 밥을 짓고, 은사스님의 옷가지를 손질하고, 법당을 닦았다.


스님의 일정에 비서처럼 따라나서는 것은 기본이었고 각종 의식 절차와 순서, 그리고 사찰 행정과 신도와의 예절을 배웠다.

나는 은사 스님 옆에서 말로 배운 것보다 말없이 보고 배운 것이 훨씬 많았다.


은사스님은 수백 년 된 고목처럼 묵직하고 과묵하셨다.

한 번 움직이시면 그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나는 젊은 혈기를 억누르며 그 묵직한 하루의 리듬에 맞춰 잔잔하게 흘러가려 애썼다.

​문제는 그 ‘고요한’ 암자의 위치였다.
​깊은 산속, 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을 법한 외딴 암자.

주변에 동네나 가게는커녕, 버스조차 하루에 서너 번밖에 다니지 않았다.


시내를 나가는 날이면 이건 외출이 아니라 작은 원정 수준이었다.

암자에서 큰절까지 걸어 내려가 매표소에서 다시 대중교통을 기다려야 했고,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여정은 몇 시간을 족히 잡아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을 가는 것조차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젊은 상좌가 산길을 뛰어다니며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시던 은사스님이 어느 날 묘수를 던지셨다.


​"멀기도 하고, 상좌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도와줘야지."

​스님의 마음 쓰심이 감사했지만, 곧 나는 예상치 못한 스타일 문제에 봉착했다.

은사스님이 내어주신 스쿠터와 함께 장만해 주신 헬멧 때문이었다.


헬멧은 묘하게 둥글면서도 묵직한 철제 윤곽이 살아 있는, 흡사 2차 대전 독일군 병정이 쓸 것 같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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