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쉼 없이 흐르는 강물 위로 새기는 정직한 눈금

by 현루

시계


​벽면의 중앙이나 손목 위에서 묵묵히 제 몸을 돌리는 '시계'를 가만히 응시합니다.

시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면서도 무자비한 기록자입니다.

시계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기쁜 순간이라 해서 걸음을 늦추거나 슬픈 순간이라 해서 걸음을 재촉하지도 않습니다.

톱니바퀴의 맞물림과 진자의 흔들림이라는 엄격한 논리 아래, 시계는 찰나의 순간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내어 우리 앞에 '현재'라는 이름으로 부려놓습니다.
​시계의 초침이 내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째깍거리는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경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있다는 맥박 소리와 같습니다.

시계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무형의 존재에 눈금을 그려 넣어,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를 세워줍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시계가 정해준 공통의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하나의 시간 속에서 조우한다는 것, 그것은 시계가 빚어낸 거대한 질서 안에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시계의 바늘을 관조합니다.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은 각기 다른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결코 서로를 앞지르려 경쟁하지 않습니다.

초침이 예순 번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분침이 비로소 한 칸을 옮겨가고, 분침이 다시 한 바퀴를 온전히 돌아야 시침은 묵직하게 다음 숫자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낮은 곳에서의 수많은 움직임이 모여야만 비로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는 삶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나를 앞세우기보다 내가 맡은 속도를 충실히 지키며 뒤따르는 존재를 기다려주는 마음.

시곗바늘들이 보여주는 이 정교한 협력은, 우리가 타인과 발걸음을 맞출 때 지녀야 할 인내의 깊이를 가르쳐줍니다.
​시계의 태엽을 감거나 배터리를 교체하는 행위를 생각합니다.

시계는 영원히 스스로 움직이는 장치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관심과 손길이 닿아야만 멈추지 않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 또한 이와 같습니다.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흘러갈 것 같지만, 주기적으로 마음의 태엽을 감아주고 정성을 쏟지 않으면 신뢰의 시계는 어느 순간 멈춰버리고 맙니다.

멈춘 시계는 과거의 어느 한 점에 고립되어 현재와의 연결을 끊어버립니다.

부지런히 시계를 살피고 시간을 맞추는 일은, 우리가 속한 이 세상과 타인의 삶에 끊임없이 주파수를 맞추겠다는 능동적인 의지입니다.
​세월이 흘러 유리가 흐려지거나 숫자가 지워진 낡은 시계를 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골동품이라 부르지만, 그 안에는 주인이 견뎌온 수만 번의 기다림과 찰나의 환희가 켜켜이 배어 있습니다.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를 넘어, 한 존재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는 동반자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바라보던 시계의 얼굴,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며 멈춰버렸으면 했던 그 바늘의 무게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낡은 시계일수록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째깍거림 속에 삶의 애환이 녹아들어 숙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계는 자정이 되면 다시 영점(零點)으로 돌아갑니다.

어제의 영광도, 어제의 후회도 시곗바늘은 움켜쥐려 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과거를 뒤로하고 다시 깨끗한 백지 위로 첫발을 내딛는 그 결연한 회귀는, 우리에게 '다시 시작함'의 용기를 줍니다.

시계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선물합니다.

내가 가진 시간을 쪼개어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나눔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누군가의 시간을 존중하고 그들의 속도를 기다려주었는지 묻습니다.

나만의 시계로 세상을 재단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이 공평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정하게 발을 맞추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를 자명종 삼아, 어제보다 조금 더 맑고 정직해진 세상의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물 위로, 오늘도 우리는 사랑과 배려라는 이름의 눈금을 정성껏 새겨 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