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가여운 것들》을 통해 본 포스트모던 고딕의 전복: 젠더 윤리, 과학적 오만, 그리고 진실의 해체
앨러스데어 그레이(Alasdair Gray)는 영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아티스트였습니다. 소설가인 동시에 직접 책에 삽화를 그리는 화가였고, 날카로운 사회 비평가이기도 했죠. 1934년생인 그는 제임스 켈만 등과 함께 스코틀랜드 문학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주역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늘 유머, 환상, 그리고 스코틀랜드 특유의 삐딱한 시선이 뒤섞여 있어 독자들을 매료시킵니다.
그의 대표작 《가여운 것들 (Poor Things)》은 1992년에 나왔지만, 지금 봐도 너무나 실험적이고 충격적인 소설입니다. 배경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과학의 광기가 판치던 시절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20세기 포스트모던 예술 그 자체입니다. 이 작품이 종종 '여성판 프랑켄슈타인'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메리 셸리의 원작처럼 생명 창조의 윤리 문제를 다루지만, 그레이는 여기서 '괴물'을 강인하고 해방된 여성으로 바꿔버립니다. 과학을 오만하게 휘두르는 남성 중심의 빅토리아 시대를 통째로 비틀어버리는 셈이죠.
우리가 이 책을 파헤치려는 핵심 이유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가?'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소설은 무려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각기 다른 '진실'을 주장하고, 심지어 작가 자신이 그린 것처럼 보이는 삽화와 서체까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이 복잡한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젠더와 과학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믿는 '역사적 진실'이 얼마나 허술하게 기록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 탐구의 목적은 《가여운 것들》이라는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책이 어떻게 문학의 규칙을 깨부수고, 여성의 주체성과 사회의 위선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지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레이의 천재적인 예술 세계를 통해 독자들이 이 소설을 더욱 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가여운 것들》이 포스트모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서사 구조에 있습니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하나의 '진실'을 제공하는 대신, 세 명의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주장하며 진실 자체를 해체하는 미로 속으로 안내합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역설: 그레이의 서사적 장난
소설은 독자를 속이는 '편집자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후기(Epilogue)로 시작합니다(또는 끝납니다). 이 후기는 소설 전체가 '진짜 역사적 기록'이라고 주장하며, 곧 이어질 두 개의 문서(맥캔들리스의 회고록과 벨라의 편지)가 어떻게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마치 학술적인 논문처럼 설명합니다.
그레이는 이 장치를 통해 서사의 신뢰성을 처음부터 뒤흔듭니다. 작가가 스스로 '편집자'를 자처하며 진실을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행위 자체가 포스트모던적 농담이자 서사의 진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입니다. 독자들은 '이것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문서다'라는 주장을 접하면서, '책 속에 기록된 모든 것의 진위'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됩니다.
맥캔들리스의 회고록 (1부): 로맨틱한 왜곡
소설의 핵심 줄거리 대부분을 담고 있는 1부는 맥캔들리스가 서술하는 '회고록' 형식입니다. 맥캔들리스는 벨라 백스턴을 창조주인 고드윈 박사로부터 구해내고 그녀와 결혼하는 인물로,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시선으로 벨라의 삶을 기록합니다.
화자의 신뢰성 문제: 맥캔들리스의 서술은 벨라를 '사랑스럽지만 순진한 창조물'로 대상화하고, 그녀의 급진적인 행보를 자신의 낭만적인 구원 서사에 끼워 맞춥니다. 그는 벨라의 성적 해방이나 던컨 웨더번과의 관계를 자신의 질투와 상실감을 중심으로 해석하며, 그녀의 주체적인 성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딕 서사의 재현: 이 1부는 빅토리아 시대 고딕 소설의 특징, 즉 광기 어린 과학자, 비밀스러운 실험, 그리고 공포와 낭만의 결합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그러나 그레이는 이 서사 자체를 맥캔들리스라는 '편향된 남성 화자'의 시각으로 한정함으로써, 독자가 이 이야기가 전부가 아님을 끊임없이 인지하게 만듭니다.
벨라 백스턴의 반론 (2부): 주체의 서사적 반격
맥캔들리스의 회고록이 끝난 후, 독자들은 벨라 백스턴(후에 벨라 맥캔들리스) 자신이 쓴 '편지 및 기록' 형태의 2부를 접합니다. 이는 1부에서 맥캔들리스가 주장했던 '진실'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서사의 주도권을 여성에게로 옮깁니다.
여성 주체의 목소리: 벨라는 맥캔들리스의 회고록을 읽고 "터무니없는 망상과 왜곡"이라고 일축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경험을 스스로의 언어로 다시 정의하며, 자신이 맥캔들리스의 '수동적인 창조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의지와 지성을 가진 주체임을 선언합니다.
정체성의 재구성: 벨라는 자신의 과거(자살한 빅토리아 시대 여성 빅토리아 블레싱턴)를 받아들이되, 맥캔들리스가 씌우려 했던 '순수하고 미성숙한 괴물'의 이미지를 벗어던집니다. 이는 '기억'과 '정체성'이 서사에 의해 어떻게 조작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남성 서사가 여성의 삶을 왜곡하는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됩니다.
서사적 진실의 교란과 포스트모던적 해체
《가여운 것들》의 서사적 미로는 두 개의 상충하는 '진실'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화자의 이야기가 모두 불완전하거나 거짓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최종적인 진실 찾기를 거부합니다.
신문 기사, 삽화 등 증거물의 진위: 소설 중간중간 삽입된 듯한 '공식 기록'처럼 보이는 신문 기사, 해부학 도표, 사진, 손으로 쓴 서체 등은 독자에게 '객관적 증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레이의 후기는 이 모든 증거 역시 조작되었거나 오류가 포함되어 있음을 폭로합니다.
포스트모던적 질문: 그레이는 이 다층적 서사 구조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포스트모던적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누가 승리하여 기록한 이야기인가? 우리는 책에 쓰인 내용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결국 《가여운 것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경험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관찰하고 비판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문학의 규범을 깨고 독자를 능동적인 해석자로 만드는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천재적인 서사적 전략입니다.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가여운 것들》의 진정한 혁신은 중심인물 벨라 백스턴(Bella Baxter)을 통해 메리 셸리의 고딕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완전히 전복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 벨라는 단순히 과학적 실험의 결과물이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 가부장제의 억압과 여성 신체에 대한 통제에 저항하는 급진적인 해방 서사의 주체입니다.
젠더 전환: 창조물에 대한 과학과 가부장제의 비판
《가여운 것들》은 '프랑켄슈타인 서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 즉 '괴물(The Creature)'의 젠더를 바꿈으로써 비판적 통찰을 시작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몸: 벨라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빅토리아 블레싱턴이라는 여성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하여 탄생한 존재입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성인의 신체를 가졌지만, 뇌는 '백지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 남성들이 여성에게 요구했던 이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육체적으로는 성숙하고 매력적이되, 지적으로는 미성숙하고 순진무구하여 통제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과학적 오만의 전복: 고드윈 박사는 벨라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이지만, 그의 창조 행위는 과학적 호기심과 소유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벨라의 존재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이 사회에서 거부당하고 비참하게 몰락하는 대신, 지성과 주체성을 획득하여 사회로 편입하는 정반대의 경로를 밟습니다. 그녀의 성장은 과학이 여성에게 덧씌운 '객체(Object)'로서의 운명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벨라의 성장 서사: '백지상태'에서 '주체'로
벨라의 서사는 단순한 학습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도덕률을 해체하는 급진적인 여정입니다. 그녀는 어른의 몸을 가졌지만 아이의 뇌로 세상을 인식하며, 기존 사회의 억압적인 기준들을 무시합니다.
순진무구한 지성의 급진성: 벨라는 성(性)과 관련된 질문이나 행동에 대해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수치심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과 지성을 탐험하며, 사회가 규정한 금기(Taboo)나 관습(Convention)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 '순진무구함'은 역설적으로 가장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성적 해방과 사회적 학습: 던컨 웨더번과의 관계를 통한 유럽 여행은 벨라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던컨은 벨라를 소유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벨라는 이 관계를 통해 사회를 배우고, 자신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며, 던컨의 소유욕을 조롱합니다. 특히, 그녀가 목격한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은 그녀의 지성을 자극하여 단순한 쾌락을 넘어선 사회 개혁의 의지를 불태우게 합니다.
가부장적 통제에 대한 저항과 던컨 웨더번의 몰락
소설에서 던컨 웨더번은 벨라를 '여성 괴물'로 통제하려는 가부장적 소유욕의 전형을 상징합니다. 그의 몰락은 벨라의 주체성 획득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유욕의 좌절: 던컨은 벨라의 아름다움과 '길들여지지 않은' 성격을 탐하지만, 그녀의 예측 불가능한 지성과 독립적인 행동에 의해 점차 무력화됩니다. 벨라를 통제하려 했던 그의 시도는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그는 그녀에게 끌려다니며 정신적, 물질적 파멸을 맞이합니다. 이는 여성을 객체로 만들려는 남성적 욕망이 결국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드윈 박사의 모호한 역할: 창조주 고드윈 박사는 벨라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하지만, 그의 과학적 윤리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라는 그의 인정을 받으며, '창조물의 반항'이 아닌 '자녀의 독립'이라는 형태로 관계를 정리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되, 그들의 통제 아래에 머물기를 거부합니다.
벨라의 최종적 선택: 실천적 페미니스트 주체로의 완성
소설의 후반부에서 벨라는 궁극적으로 '스스로 선택한 여성'으로 완성됩니다. 그녀는 단순한 '아름다운 괴물'이나 '사랑스러운 아내'의 틀을 거부합니다.
직업적 주체성 획득: 벨라는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며, 이는 여성이 남성의 신체와 지식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금기를 정면으로 깨는 행위입니다. 그녀는 '관찰 당하는 몸'에서 '치료하는 주체'로 거듭납니다.
서사의 해피 엔딩 전복: 벨라의 이야기는 낭만적인 결혼으로 끝나는 빅토리아 시대 소설의 해피 엔딩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거부하고, 자신의 전문성과 사회적 실천을 통해 독립적인 삶을 구축합니다.
윤리적, 사회적 의의: 벨라 백스턴은 여성이 과학의 대상에서 주체로, 로맨스의 객체에서 사회 개혁의 주동자로 전환되는 서사적 모델을 제시합니다. 《가여운 것들》은 벨라를 통해 여성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쓰고 '자신만의 진실'을 주장할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는 강력한 페미니즘 문학의 기념비입니다.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가여운 것들》은 서사적 복잡성 외에도, 스코틀랜드의 지역적 정체성과 그레이가 화가로서 직접 주도한 독특한 편집 및 시각 예술을 통해 문학적 규범을 전복시킵니다. 이 요소들은 텍스트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 뿐 아니라, 독자가 '책'이라는 물리적 매체 자체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도록 만듭니다.
글래스고와 스코틀랜드성의 역할
소설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인 글래스고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영국 중심주의(Anglocentrism)에 대한 그레이의 비판적인 시각을 담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의 연결: 벨라를 창조한 고드윈 박사는 글래스고 출신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배출한 과학적 탐구열과 급진적인 지성의 전통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고드윈 박사의 실험은 이 지성이 광기와 비윤리적 오만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스코틀랜드의 지적 유산에 대한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재평가를 시도합니다.
지역적 현실주의: 그레이는 벨라의 회고와 맥캔들리스의 서술 속에 글래스고의 사회적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이는 소설이 다루는 빅토리아 시대의 계층적 모순과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며, 영국 문학의 주류 서사에서 자주 배제되던 스코틀랜드 노동 계층의 현실을 전경화합니다. 그레이는 런던 중심의 낭만주의 서사에 대해 스코틀랜드 특유의 냉소와 현실주의를 투영합니다.
그레이의 시각 예술가 정체성과 편집의 미학
그레이는 작가이자 화가로서, 책의 외형과 내부 디자인을 서사의 일부로 활용하는 '편집의 미학'을 완성했습니다.
서사의 시각적 교란: 소설에는 그레이가 직접 그린 삽화, 지도, 도표 등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 삽화들은 때로는 조악하고, 때로는 비현실적이며, 심지어 내용과 모순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도나 인물 사진은 '진짜 문서'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 깔린 서체나 디자인은 그 문서가 조작되었거나 신뢰할 수 없음을 은연중에 암시합니다.
서체(Font)와 문서의 진위 논란: 소설은 맥캔들리스의 '회고록' 부분에서는 깔끔한 인쇄 서체를 사용하고, 벨라 백스턴의 '편지' 부분에서는 손으로 쓴 듯한 필기체를 사용하며, 다른 '공식 문서'들은 낡은 활자체로 인쇄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서체의 사용은 각 텍스트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화자에 의해 작성된 '실제 문서'임을 위장하며, 독자가 텍스트의 진위 여부를 시각적으로 판단하도록 강요합니다.
물리적 매체의 전복: 그레이는 이 모든 시각적 장치를 통해 소설을 텍스트의 집합체 이상으로 만듭니다. 독자는 글을 읽는 동시에 책을 '물리적인 아카이브'로 인식하게 되며, 책의 디자인과 서사 구조가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는 책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전복하는 포스트모던적 실험이자, 하이퍼텍스트적 사고를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편집자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연출
소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앨러스데어 그레이(편집자)'는 작가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허구의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는 서사 해체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권위의 가장: '편집자 그레이'는 자신이 이 두 상충되는 문서(맥캔들리스와 벨라의 기록)를 발굴하고 편집한 '학술적 권위자'임을 주장합니다. 그는 각 화자의 기록에 "몇 가지 오류와 편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독자들에게 객관적인 진실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서사의 최종적 조롱: 그러나 이 '편집자'의 주장은 "결국 이 모든 것이 한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허구"라는 사실과 충돌합니다. 작가 그레이는 '편집자'라는 가면을 쓰고 독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보여준 이 모든 증거와 주장은 조작되었을 수 있다'는 최종적인 조롱을 던집니다. 이는 진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권위 자체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장치입니다.
결론적으로, 《가여운 것들》은 스코틀랜드의 비판적 지성을 배경으로 삼고, 시각 예술가로서의 그레이의 역량을 극대화하여 서사와 디자인, 그리고 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듭니다. 독자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시각적 단서와 편집의 속임수까지 해독해야 하는, 매우 능동적이고 지적인 독서 경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가여운 것들》은 단순한 고딕 소설의 패러디를 넘어, 1990년대 포스트모던 문학이 도달한 가장 복잡하고 도발적인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탐구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그레이가 다층적 서사 구조, 페미니즘적 전복, 그리고 시각 예술의 통합이라는 세 가지 축을 사용해 문학의 규범과 사회 윤리를 동시에 흔들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분석 종합: 구조와 비판의 시너지
《가여운 것들》의 힘은 각 요소가 서로를 강화하는 시너지 효과에서 나옵니다.
서사적 미로 (본론 1): 맥캔들리스와 벨라라는 두 명의 상충하는 화자, 그리고 '편집자 그레이'의 개입은 진실이 화자의 편향성, 기억의 왜곡, 그리고 기록의 의도에 의해 결정되는 상대적인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독자들은 수동적으로 이야기를 수용하는 대신, 누가 더 믿을 만한지, 그리고 '진실이란 결국 승리한 서사'가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페미니즘적 전복 (본론 2): 벨라 백스턴이라는 캐릭터는 빅토리아 시대 과학의 오만함과 남성 중심의 도덕률을 뒤집는 급진적인 여성 주체였습니다. 그녀의 성장은 여성이 과학의 객체에서 주체로, 낭만주의적 소유물에서 실천적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페미니즘적 해방 서사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200년 전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가장 성공적인 현대적 응답으로 평가받습니다.
편집의 미학 (본론 3): 그레이는 스코틀랜드의 지역적 정체성을 배경으로 삼고, 삽화, 서체, 편집 디자인을 서사적 진실 교란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이 시각적 장치는 독자들에게 책이라는 물리적 매체 자체가 어떻게 권위를 가장하고 진실을 조작할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합니다.
소설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 진실과 주체성
《가여운 것들》은 독서 경험을 통해 두 가지 근원적인 윤리적, 인식론적 질문을 던집니다.
진실의 상대성: 역사와 기록의 비판
소설은 '사실'과 '기록'에 대한 우리의 맹신을 조롱합니다. 맥캔들리스의 로맨틱한 망상과 벨라의 냉철한 반박, 그리고 그레이 편집자의 모호한 결론은 "우리가 읽는 역사와 진실은 결국 누군가가 선택하고 재단하여 기록한 서사일 뿐"이라는 포스트모던적 인식론을 강화합니다. 이는 독자들이 모든 텍스트, 특히 권위를 가진 역사서나 공식 문서를 비판적으로 읽도록 유도합니다.
젠더 윤리: 여성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허하라
벨라 백스턴의 존재는 젠더 윤리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생명을 창조하고, 길들이고, 정의하려는 남성 중심의 과학과 사회에 맞서, 벨라는 자신의 몸과 지성, 욕망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소설은 여성에게 타인의 시선이나 기록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쓸 수 있는 주체성의 가치를 강조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젠더 담론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현대 문학사에서의 의의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가여운 것들》은 20세기 후반 문학에 세 가지 중요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스코틀랜드 문학의 국제화: 이 작품은 글래스고의 지역색과 스코틀랜드 지적 전통을 세계적인 서사로 확장시키며, 스코틀랜드 문학 부흥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포스트모던 소설의 새 지평: 단순한 형식 실험을 넘어, 편집 디자인과 시각 예술을 서사 해체의 도구로 통합하여 책의 물리적 형식까지도 문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고딕 소설의 현대적 재해석: 전통적인 괴물 서사를 젠더와 사회 비판의 틀로 가져와 고전의 생명력을 현대적으로 되살렸으며, 이는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가여운 것들》은 앨러스데어 그레이가 남긴 가장 지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윤리적인 질문이 담긴 유산입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서사의 힘을 의심하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쓰도록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