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추적 04] 실리콘의 심장에 지능을 심다,

AI 반도체의 개척자 유회준

by 안녕 콩코드
유회준 교수. 출처: 인공지능신문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에너지'를 길들이는 과정이었다. 불을 발견하며 어둠을 걷어냈고, 석탄을 태워 증기기관의 동력을 얻었으며, 이제는 '전기'라는 무색무취의 혈액으로 디지털 제국을 유지한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인류가 창조한 가장 정교한 신(神)인 '인공지능(AI)'은 유례없는 식욕으로 지구의 에너지를 집어삼키고 있다. 거대 데이터 센터들이 내뿜는 열기는 북극의 빙하를 녹이고, 폭증하는 전력 수요는 국가의 에너지 인프라를 마비 직전까지 몰아넣는다.


​이 절박한 에너지의 병목 현상을 타파하고, AI 제국의 심장부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인물이 있다. 대한민국 반도체 설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저전력·고효율’의 기적을 일궈내는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의 유회준 교수다. 그를 추적하는 일은 단순히 반도체 칩의 연산 속도를 확인하는 공학적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지능의 진화가 필연적으로 환경의 파괴를 동반해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며, 거대한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쥐어야 할 '실리콘 방패'의 실체를 목격하는 일이다.


​폰 노이만의 성벽을 허무는 ‘지능의 연금술’

​유회준의 연구는 반도체의 근간을 이루는 '폰 노이만 구조(Von Neumann architecture)'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에서 출발했다. 지난 수십 년간 컴퓨팅의 표준이었던 이 구조는 연산 장치(Processor)와 메모리(Memory) 사이를 데이터가 끊임없이 오가며 작동한다. 문제는 AI 모델이 거대화될수록 이 '데이터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소모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능이 깊어질수록 에너지는 낭비되는, 일종의 구조적 모순이다.


3차원 공간정보 및 물체인식 시스템 시연 모습(이미지:KAIST)
3차원 공간정보 및 물체인식 시스템 개요
3차원 공간정보 및 물체인식 시스템 결과 이미지


​유회준은 이 장벽을 넘기 위해 ‘PIM(Processing-In-Memory)’이라 불리는 혁신적 설계를 세계 최초로 제안하고 실현했다. 메모리를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창고로 두는 것이 아니라, 메모리 자체가 연산을 수행하는 '두뇌'가 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집으로 가져와 읽는 번거로움 대신, 서가의 책들이 스스로 내용을 요약해 독자에게 들려주는 것과 같은 인식의 전환이다. 그가 개발한 초저전력 AI 반도체는 기존 방식 대비 전력 효율을 수백 배 이상 끌어올렸다. 그는 ‘지능’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막대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춤으로써, AI를 거대한 데이터 센터의 철창 속에서 해방해 우리 손안의 작은 기기(On-device AI)로 내려오게 한 주인공이다.


​2026년의 ‘실리콘 방벽’과 기술 주권

​유회준이라는 가늠자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이 처한 냉혹한 현실과 뜨거운 열망을 동시에 목격한다. 2026년의 세계는 더 이상 무역의 자유가 아닌, 기술의 통제가 지배하는 ‘실리콘 커튼’의 시대다.

​에너지 안보로서의 반도체: 대한민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자원 빈국이다. 만약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의 거대 AI 인프라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데이터 주권뿐만 아니라 에너지의 통제권까지 넘겨주게 된다. 유회준이 쥐고 있는 저전력 설계 기술은 대한민국이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독자적인 지능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최후의 보루다.

​지속 가능한 지능의 증명: 인류는 무한한 발전을 갈망하지만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다. 유회준의 궤적은 ‘성장’과 ‘환경’이라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기술적 타협점을 찾아내는 인류의 지혜를 상징한다. 그는 지능의 확장이 반드시 파괴적일 필요는 없음을, 오히려 지능을 통해 에너지를 구원할 수 있음을 자신의 설계도로 증명하고 있다.

"물리적 한계는 새로운 사유의 시작점이다"

​유회준은 연구실에 갇힌 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결핍을 읽어내는 전략가에 가깝다. 그는 늘 강조한다. “반도체 설계는 0과 1의 조합이 아니라, 에너지라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가장 아름답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라고.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모든 시스템에는 한계가 존재하며, 그 한계를 돌파하는 힘은 단순히 ‘더 많은 투입’이 아니라 ‘구조의 혁신’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며 스스로를 연소시키는 것이 정답이 아닌 시대. 유회준은 우리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하고, 어떤 불필요한 공정을 덜어낼 것인지 묻는 인생의 설계자가 되어준다.


​지능의 민주화: 낮은 곳으로 흐르는 기술

​유회준이 그리는 미래는 명확하다. 전기 코드를 꽂지 않아도, 혹은 아주 작은 배터리만으로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에너지 자립형 AI’의 세상이다.


​이 기술이 완성될 때, 지능은 비로소 민주화된다. 거대 자본이 세운 데이터 센터 근처에 살지 않아도, 전력 인프라가 부족한 오지의 아이들도 손안의 작은 기기를 통해 인류의 모든 지식에 접속하고 AI의 조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회준의 싸움은 결국 기술의 효율을 넘어, 기술의 혜택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영토 확장 전쟁이기도 하다.


차가운 칩 속에 담긴 뜨거운 인류애

​최세훈이 미래의 형상을 그렸고, 이재성이 정보의 영토를 넓혔으며, 김지현이 과거를 번역했다면, 유회준은 이 모든 활동이 지속 가능하도록 ‘기반의 에너지’를 지탱하고 있다.


​유회준의 설계도 위에서 흐르는 전류는 단순히 기계를 돌리는 전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지능이 멈추지 않고 흐르게 하려는 뜨거운 의지의 혈류다. 차가운 실리콘 칩 속에서 단 1마이크로와트(µW)라도 아끼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지독한 고집 덕분에, 우리는 내일도 기후 변화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AI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냉철한 설계자의 궤적 끝에는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기술이 자연을 압도하는 오만한 풍경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지능이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겸손한 미래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에너지의 한계를 돌파한 지능의 시대를 지나, 다음 인물이 기다리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갈등의 지점을 향해 걸음을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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