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진 Aug 06. 2024

넋두리, 번개처럼 떨어지거나 그 반대거나


1. 빗길이라도

스콜이다. 온대기후가 사라진 곳, 아열대성 기후대에서는 장마가 아니라 스콜이 온다. 일기예보는 오후에나 비 소식이 있었다. 햇볕 쨍쨍한 하늘에 빗줄기라니. 우기인 요즘엔 흔한 일이다. 보슬보슬 내리는 폼이 영락없는 가을비였다. 아차 싶었다.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철 개찰구 앞이었다. 발걸음을 돌렸다. 쉽게 그칠 빗줄기가 아니었. 난감했다.



지갑을 챙기고 우산을 들었다. 폭우가 쏟아졌다. 바쁜 아침 시간에 이만하길 다행이다. 전날처럼 호기롭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태그 했다면 종착지에서 난감할 뻔했다. 다행이다. 빗속을 뚫고 내달렸다면 출근길에 다소 여유가 있었겠지만, 비 맞은 생쥐 꼴을 못 면했겠지. 환승지에서 전철을 갈아탈 즈음 아들에게 카톡이 왔다.



아빠 우산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는데.



장했다.



깜빡하는 증세가 도움이 됐네. 생각하기 나름.



2. 재회

요 며칠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여러 권의 책에서 지적 세례를 뭉근하게 맞았다. 쉬었다 갈 찬스를 쓸 때가 된 다. 전두엽을 강타한 대체불능의 작품에서 놓여나기를 바라는 건 사실 노욕에 가깝다. 목적지 끝에 당도할 때의 쾌감에서 그런 작품들에 견줄 책이 많지 않다. 잔뜩 우회하며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여백을 독자의 언어로 채워가는 또 다른 독법을 포기하기란 무척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기왕이면 오랫동안 그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책이든 인생이든 끝은 늘 앞에 있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 다시 첫 장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은 미학적으로 아주 훌륭하죠.



정서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가요? 젖은 머리를 말리고 뒤돌아선 곳에 때마침 책을 가득 쌓은 선반이 있던 터라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내친김에 손에 얻어걸린 책을 들고 대문을 나섰다. 표지가 포장지로 덮였다고 손에 쥔 책이 어떤 책인지 모를 리 있을까. 포장지라고 해봐야 A4용지 두 장을 붙여 책을 둘둘 말아 싼 정도밖에 안 되었다. 이런 형태의 포장은 남들에게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들키고 싶지 않을 때-그렇다고 그 책이 속칭 ‘빨간 책’ 일 거라는 생각은 금물^^-와 소중히 다뤄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 때-이 역시 근거 없는 편애이니 과분한 의미를 두지 말길!- 기꺼이 동원하는 포장 기법이다.



간편하기로 치면 그것보다 수월한 게 없고, 포장지 표면이 누렇게 뜰 때 언제든 손쉽게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다. 책은 책대로 베일에 쌓이는 효과가 있고. 한참 뒤 포장지를 벗겼을 때의 기분이란!



더러 포장지 앞날개와 가운데 날개에 책 제목을 써넣기도 하지만 문제의 책은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한 귀퉁이가 누렇게 변색된 포장지를 걷어내자 표면이 드러났다. 우아한 비취색의 표지를 보고 새삼 놀란다. 촉감만으로 어떤 책인 줄 알아맞히고도 책 표지가 어떤지는 전혀 몰랐다. 허술 그 자체.



이것 하나만은 잊지 않기로 했다. 표면 아래 속살을 보고 기억하고 떠올릴 때라야 비로소 작품이 값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을. 휘파람 소리가 흥겹게 울려 퍼지는 걸 보니 새삼 어깨가 가볍다.



3. 세대

단도직입적으로 세대를 어떻게 나눌 수 있나,라고 시작하는 글. 그거면 되었다. 생각이 같으면 뜻은 서로 맞춰보면 된다. 여지는 늘 있다. 《제너레이션: 세대란 무엇인가》는 진 트웬지가 썼다.





작가의 이전글 통제 없이 운영되는 유연근무, 벽장 속 곶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