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이 적당할까? 전 평일엔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반면 상대적으로 시간 확보가 쉬운 토요일과 일요일엔 자연과학 서적과 산문집을 섞거나 인문과학서와 소설을 적당히 안배하는 식으로 그날 읽을 책을 선정합니다. 평일엔 2권 내외, 주말엔 4,5권 정도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는데 간간이 신간 서적으로 구성에 변화를 주면 은근히 달뜨는 기분과 새로운 재미를 챙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 경우 그런 방식으로 한 달에 20권 정도를 읽습니다. 주 독서 장소는 버스나 전철 안입니다. 환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외 약속 상대를 기다리며 무료하게 보낼 시간이라든지 티브이를 시청하거나 청소할 때 독서를 겸할 시간까지 포함하면 자투리 시간이 상당합니다.
대략 그 시간만 하루 평균 2시간으로 추정되는데 한 권을 2,3시간 안에 읽는 속도를 감안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3권 정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공휴일에 평균 2권을 읽는다고 치면 합산해서 한 달에 20권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한 달 평균 공휴일에 16권을 읽는 것과 비교하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평일 12권의 독서량은 적지 않은 수치입니다. 개인차가 있지만 자투리 시간만으로 매월 12권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을 활용한 독서에 남다른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투리 시간은 순간 몰입도를 높일 최고의 훈련장
사회현상에 허기가 졌던 대학생 시절, 정말 게걸스럽게 책을 읽었습니다. 토플 등 시험 준비나 취업 준비로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재 외에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으려면 현실적으로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에 책 한 권을 필히 들고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책장을 펼치면 되겠다 싶었는데 처음엔 몰입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차츰 나아지면서 집중력이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필요가 공급을 만든다고 물리적 시야 폭이 크게 향상되었는데 예를 들면 책을 읽는 동시에 사방을 두루 볼 수 있어서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목적지를 지나치는 등의 곤란을 한 번도 겪지 않았습니다. 책만 펴 들면 바로 몰입하게 되면서 독서량이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당시엔 통학 시간이 주 대상이었다면 직장인이 된 후로는 출퇴근길과 약속 시간 사이는 물론 집 안 청소나 티브이 시청 시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물걸레질을 하면서 책을 읽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물걸레를 잘 펴서 바닥에 놓은 뒤에 발을 올려 미는 동안 손에 펴 든 책을 읽는 것입니다. 허리를 숙여 선으로 걸레를 미는 동안 언제 다 마치려나 싶으신 분께 권장할 만한 청소법입니다. 물론 아내에게 그렇게 하면 잘 닦이겠느냐는 핀잔을 들어야 하지만 효과로 치면 손으로 문지르는 것보다 발로 문지르는 것이 더 낫다는 점은 제 임상으로 충분히 입증된 바 있습니다. 아내도 더 이상은 싫은 소리를 하지 않더군요. 티브이를 시청하면서 책을 읽는 방법은 책에 8할의 주의를 주고 나머지 2할은 티브이 모니터에 시선을 두는 데서 시작합니다. 티브이 프로그램은 대부분 소리만으로도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드문드문 봐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점을 노린 겁니다. 역시나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할 수 있습니다. 일석이조라는면에서도 매력적인 독서법입니다.
왜 읽는가?
뭐 그렇게까지 읽을 필요가 있느냐, 고 핀잔하실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호들갑 떤다고 눈살을 찌푸릴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하는 것보다 훌륭한 분들의 말을 인용하는 편이 나을 거 같습니다. 서울대 교수 서영채는 《왜 읽는가》에서 “왜 읽는가라는 질문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고,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과도 다르지 않다”라고 썼습니다. 예를 더 들면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에게 당신이 읽은 것을 말해 달라. 그러면 내가 당신이 누군지 말해주겠다.” 문장의 형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뜻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미래의 내가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다고 돈이 들어오느냐는 말을 빈번히 들었습니다. 기왕이면 돈 되는 책을 읽으라는 조언(?)도 받았습니다. 당장의 필요에 있어선 돈 한 푼의 가치가 대단하고,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투자서나 주식 길잡이 등의 실용적 지식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런 말이나 조언이 함의하는 바대로 우리가 돈으로만 우리를 살찌우면 그만인 존재냐라는 부분에 먼저 답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돈으로만 충분한 존재라면 그 흔한 학문이며 도리며, 이상과 같은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학교 갈 시간에 돈 벌러 나가는 게 훨씬경제적이겠지요. 선현의 말이 사변적으로 들린다면 독서신문 기자 이세인의 말은 곰삭은 맛이 있어서 눈에 잘 들어올 겁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이라는 제하의 기사 일부입니다.
"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또한 책을 통해 할 수 있다. 그러니 조금씩 책과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너무 두꺼워 손대지 않았거나 보고 싶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닐 것 같아서 미뤄둔 책을 한 번쯤 집어보는 것으로 그 시작을 해보는 것이다. 그 책이 내 마음에 쏙 든다면 나라는 사람의 폭을 넓힐 것이고, 아니라면 나의 취향을 확고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또는 이런 사람도,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고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