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비에리. 필명은 파스칼 메르시어다. 페터 비에리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이름을 알렸다. 2004년에 발표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독자가 그의 작품에 열광할 정도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23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어 큰 갈채를 모았다. 2020년 발표한 ‘언어의 무게(소설)’를 끝으로 2023년 사망했다.
페터 비에리는 소설 외에 철학에도 밝아 ‘자기 결정’, ‘삶의 격’,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 ‘자유의 기술’을 남겼다. 소설로는 앞서 소개한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언어의 무게' 외에 ‘레아’, ‘페를만의 침묵’, ‘피아노 조율사’가 있다. 페를만의 침묵은 그의 첫 소설이었고, 피아노 조율사는 두 번째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페터 비에리는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했다. 두 번째 소설을 낸 후 그만 정체가 탄로 나고 말았다. 당시지역엔 “베를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베른 출신 선생님”이라는 식으로 폭로되었다. 이때가 그의 나이 쉰한 살 때다. 그는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동료 철학자들 사이에 철학자가 소설을 쓰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해 불가피하게 필명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페터 비에리는 1971년 독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독일 마르부르크대와 베를린자유대 등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까지 베를린자유대 총장을 지냈다.
페터 비에리 소설의 강점은 밀도 높은 사유에 있다. 수채화처럼 잔잔히 흐르는 스토리와 거기 녹진하게 내려앉은 사유에 젖어본 독자라면 페터 비에리의 작가적 매력에 흠씬 빠지고 만다.
방앗간 참새처럼 들른 헌책방에서 잘 간수된 ‘언어의 무게’를 정말 우연히 발견하고는 바로 구입했다. 작가를 확인한 것이 주효했다. 나로선 믿고 보는 파스칼 메르시어, 페터 비에리라니. 공전의 히트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시작된 페터 비에리 앓이가 ‘삶의 격’에서 다시 발화하던 중이어서 더 반가웠는지 모른다. ‘언어의 무게’는 이전 소설보다 사유의 폭과 깊이가 더 직접적이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 레이랜드를 빌려 문학을 삶의 지침으로 삼은 수많은 인물들, 작가와 출판인, 번역가를 통해 창작의 열망을 다시 불태운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언어의 무게'를 발표하고는 3년 뒤에 홀연히 세상을 떠난 페터 비에리. 그래서 더 안타깝다.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는 이 작품에 이어 대표작을 여러 번 바꿔가기를 그나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고대했을지. 그의 졸(卒)에 가슴이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