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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신은 물을 주고, 인간은 맥주를 만들었다”

- 맥주의 놀라운 역사 여행​

by 콩코드


맥주를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지금 우리가 마시는 맥주 한 잔에는 약 7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햇살과 이슬, 흙냄새가 숨어 있다. 인간이 곡식을 재배하고 저장하는 기술을 익히면서, 우연히-혹은 축복처럼-발효가 시작되었다. 곡물이 물에 젖고, 햇볕에 데워지고, 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 거품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 맥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곡물의 신비, 맥주의 기원

기록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맥주의 흔적은 기원전 5000년경 수메르 지역의 점토판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맥주를 ‘신이 주신 음료’라 불렀고, 실제로 맥주 여신 ‘닌카시(Ninkasi)’를 위한 찬가도 남겨두었다. 흥미로운 건, 그 찬가는 단지 노래가 아니라 맥주 양조법을 담고 있는 일종의 레시피였다는 점이다.


“곡식을 빻아 물에 담그고, 발효된 거품을 걷는다. 여신의 숨결이 머무는 곳, 거기서 기쁨이 시작되리라.”

- 닌카시 찬가 中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신과 교감했고, 고된 하루의 노동을 잊었다. 물이 오염돼 마시기 어려운 시대에 맥주는 비교적 안전한 수분 공급원이었고,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이집트와 맥주: 피라미드를 세운 건 거푸집이 아니라 거품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맥주는 필수품이었다. 피라미드를 만든 노동자들은 매일 빵과 함께 맥주를 지급받았다. 무려 하루 4리터. 신전에서 맥주를 바치는 의식도 있었으며, 파라오조차도 맥주를 즐겼다.


여기서 맥주는 단지 음료가 아니었다. 노동의 보상, 종교적 의식, 그리고 국가경제의 기둥이었다. 이쯤 되면 맥주는 고대 사회의 ‘연료’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 유럽, 수도사들의 발효 실험실​

시간이 흘러 중세 유럽. 뜻밖에도 맥주의 주역은 수도사들이었다. 금욕적인 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은 맥주를 ‘액체 빵’이라 부르며 단식 기간 중에도 마셨다. 그렇게 수도원은 유럽 최고의 양조장이 되었다.


특히 독일과 벨기에의 수도사들은 맥주의 품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고,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홉(hop)’이다. 이 식물은 쓴맛을 더하고, 맥주를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했다. 홉의 등장은 맥주 세계에 작은 혁명이었다. 이제 맥주는 단지 농부의 음료가 아닌, 정교한 과학이 된 것이다.


근대, 맥주가 산업이 되다​

18세기 산업혁명은 맥주에게도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증기기관이 양조 시설에 도입되었고, 냉장 기술과 살균법의 발전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라거 스타일의 맥주가 등장하면서 맥주는 더욱 투명하고 시원한 형태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의 소규모 양조장들-즉,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가 다시 맥주의 다양성과 개성을 되살려내기 시작했다. 이제 맥주는 거대한 공장 생산품이 아닌, 다시 예술이자 실험, 그리고 하나의 표현 수단이 되었다.


한 잔 속의 시간 여행​

지금 여러분이 들고 있는 맥주잔 속에는, 보리밭의 바람, 수도사의 손길, 산업화의 기계 소리, 그리고 오늘 저녁의 기분까지 담겨 있다. 맥주는 단지 술이 아니다. 그것은 발효된 시간이자, 기억의 액체다.


그러니 다음에 맥주를 마실 때는 그냥 들이키지 말고, 그 안의 역사를 한번 떠올려 보자. 이토록 오래된 친구를 만났으니,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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