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침묵하지 않는다
작가는 세상의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다. 그들은 말의 결을 알고, 말이 만들어내는 파장과 무게를 체감하며 살아간다. 그러기에 어떤 시대에서든 작가가 정치나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가 어두울수록,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수록, 가장 먼저 나서는 이들이 작가였다. 조지 오웰은 파시즘에 맞섰고,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현실을 지적했으며, 백석과 윤동주, 김남주 같은 한국의 시인들 역시 시대의 고통을 언어로 직시했다. 문학은 언제나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려고 애썼고, 그것이 문학의 윤리라 믿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 한강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탄핵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며 입장을 표명한 것은, 작가로서 시대에 응답한 태도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을 통해 국가폭력과 진실에 대한 문학적 책임을 묵직하게 다뤄온 작가이기에, 그 목소리는 단순한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윤리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작가의 말과 선택의 자유
하지만 작가도 시민이다. 그리고 시민의 정치적 자유는 어느 방향이든 가능하다. 작가가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의 편에 서건, 아니면 그저 침묵하건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권리다. 다만 이 자유는 '책임'이라는 단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말은 언제나 파문을 남기고, 침묵은 때로 더 큰 파장을 남긴다.
지금의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특정 정권의 권력 남용이나 탄핵 정국에서는 목소리를 냈던 작가가, 현재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거대 야당 대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는 모습. 이는 일부 독자나 시민들에게 일종의 '선택적 정의'로 비칠 수 있다. 즉, 정치적 비판의 기준이 보편적 윤리보다는 정치적 진영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말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침묵의 책임, 혹은 전략
물론 한강 작가를 포함한 많은 문인들이 굳이 모든 사안에 대해 말해야 할 의무는 없다. 정치적 발언은 때때로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비난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오히려 문학적 메시지를 희석시키는 위험도 따른다. 그렇기에 침묵을 택한 것이라면, 그것도 하나의 전략이자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보편적 가치'나 '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해 발언한 이상, 그 가치의 수호는 특정 정권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 권력의 남용이든, 정당 권력의 부패든, 시민의 자유와 정의를 해치는 모든 위협에 대해 동일한 태도로 응하는 것이 '윤리적 일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침묵은 전략이 아닌 회피로, 혹은 진영에 따라 말을 고르는 이중적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학과 정치, 그 사이의 경계
문학은 결코 정치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정당이나 이념에 소속되거나 복무하는 순간, 문학은 진실과 상상력이라는 본래의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은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될 수도 없다. 작가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어떤 현실을 외면했는지는 작품보다 오래 기억된다. 그러므로 작가가 정치를 말한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보편적인 가치, 사람, 고통, 진실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한강 작가의 발언이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되었든, 윤리적 확신에서 비롯되었든, 그 말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러나 그 말이 온전히 설득력을 가지려면, 현재의 침묵에 대한 물음에도 응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 지금은 말하지 않는가. 같은 잣대로, 같은 분노로, 같은 연민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목소리는 진영을 위한 언어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작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작가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도 인간이고, 판단을 그르칠 수 있으며, 침묵이 더 나은 선택이라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를 꿰뚫는 예민한 감수성과 윤리적 직관을 가진 이들이라면, 더 많은 성찰과 응답을 기대받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한강이라는 작가가 그려낸 문학의 힘을 기억한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불균형과 침묵에 대한 질문도 함께 품고 있다. 작가의 말이 다시 빛을 가지려면, 그것은 시대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말이 ‘문학’이 되고, ‘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