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무대 위, 청년들은 오늘도 서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얼굴에 드리운 불안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도, 토익 점수와 자격증으로 무장해도, 면접장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언제쯤이면 취업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단순한 미래의 걱정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고통의 언어다. 구직 포털에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이력서가 쌓이고,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공채 경쟁률은 수백 대 일에 육박한다.
반면 정부가 발표하는 고용지표는 수년째 답보상태다. 실업률은 개선되었다는 수치를 내놓기도 하지만,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취업 포기자’나 ‘단기 비정규직’의 숫자를 보면 실상은 더 절망적이다. 문제는 단지 일자리 숫자의 부족만이 아니다. 청년들이 꿈꾸는 ‘괜찮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비정규직, 파견직, 단기계약직 등의 형태로 존재하는 일자리의 질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노력하면 된다", "스펙을 더 쌓아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잃은 시대다. 그렇다면, 이 고용절벽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
고용 없는 성장의 그늘
오늘날 한국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이에 비례한 고용 창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노동집약적인 산업 구조에서 기술 중심, 자본 중심 구조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이전처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이다.
AI, 로봇, 자동화 기술의 확산은 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끌고 있지만, 동시에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주문을 받던 아르바이트생 대신 키오스크가 들어서고, 제조업 현장에서는 인간 노동자를 대신해 로봇이 조립을 수행한다. 기술 발전이 긍정적인 면만을 지닌 것이 아님을 고용 시장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기업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고정비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규직 채용보다 아웃소싱, 프리랜서, 단기계약 등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성장의 혜택이 기업의 이윤으로 집중되고,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의 정의를 다시 묻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한 일자리 수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안정적 고용, 정규직, 높은 연봉이 좋은 일자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청년들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하고, 자율성과 성장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일자리 정책은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 공공기관의 채용 확대, 기업에 대한 고용 장려금 지급 등의 정책은 단기적인 효과만 있을 뿐, 청년들의 일자리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1인 창업, 디지털 노마드, 콘텐츠 크리에이터, 플랫폼 노동자 등 전통적인 고용 형태를 벗어난 다양한 경로가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이 새로운 노동 형태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노동을 택한 이들은 종종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에서 소외되고, 불안정한 수입에 시달린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노동 형태에 맞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자리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청년, 지역에서 길을 찾다
고용 문제를 수도권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한계다. 수도권에 인구와 자원이 집중되면서, 청년들의 일자리 역시 수도권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수도권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지역이기도 하다. 반면 지방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며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과 일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지역 사회가 서로를 외면한 채 존재한다.
이제는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예컨대 로컬 크리에이터, 지역 창업 인큐베이팅, 가치 창출형 기업 모델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몇몇 지자체에서는 ‘청년 마을 만들기’나 ‘로컬 창업 지원 사업’을 통해 청년과 지역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일자리 제공을 넘어,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실험적 사례를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고,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해법은 새로운 상상에서 나온다
청년 고용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수치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를 묻는 거울이다. 경쟁만을 유일한 생존 방식으로 강요하는 사회, 창의성과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교육과 노동 시스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청년들을 고립시키고 있다.
따라서 해법 역시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년 도전지원금 제도의 도입은 청년이 보다 자유롭게 진로를 탐색하고, 창업이나 실험적 활동에 도전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 고정된 소득이 없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일정한 기회를 보장해 주는 방식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정책은 사회 전체의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고용의 분산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의 목소리를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 일이다. 고용정책은 더 이상 일방향의 시혜적 조치가 되어선 안 된다. 청년들이 자신들의 노동, 삶, 미래에 대해 능동적으로 발언하고, 그것이 정책으로 반영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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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으며: 희망은 연결에서 피어난다
지금 청년들은 외롭다. 무거운 책임만을 요구받고, 미래는 불투명하며, 사회는 이들의 불안을 ‘나약함’이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청년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공동의 과제로 인식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해법은 어쩌면 숫자 속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 있다. 청년과 지역, 정부와 민간, 기업과 노동이 서로 손을 잡고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낼 때, 일자리 없는 시대에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희망이 피어난다.
오늘의 청년이 좌절을 넘어 설계할 수 있는 내일을 위해, 이제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