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의 그림, 한 편의 시, 한 장의 편지. 그 곁에는 늘, 조용히 놓인 와인 잔 하나가 있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왜 그렇게 와인을 사랑했을까요? 아마도,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감정을 깊이 데워주는 불빛 같은 것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고독한 잔
붓질로 감정을 뿜어내던 고흐는, 생트레미의 정신병원에 머무는 동안 와인을 마시며 그 불안과 고독을 잠재우려 했습니다. 그가 자주 마시던 술은 압생트(Absinthe)와 함께 한 남프랑스의 저렴한 레드 와인.
“이 와인 한 잔은 내 안에 들끓는 노란 해바라기를 잠시 눕히는 힘이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헤밍웨이와 파리의 낮술
“와인은 병 속에 든 병렬된 풍경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보르도 와인과 브루고뉴의 피노 누아를 사랑했고, 라틴 쿼터의 햇살 아래, 흐릿한 눈으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써내려갔습니다. 와인은 그의 글을 흐르게 하는 잉크였고, 그의 감정을 직진하게 만드는 용기였죠.
파블로 피카소와 술잔 속 기하학
피카소의 작품을 찬찬히 보면, 수많은 술병과 와인잔이 화면 속에 숨어 있습니다. 입체주의의 각진 테이블 위에도, 항상 놓여 있던 그 잔. 그에겐 와인이 삶과 예술, 사랑과 고통을 잇는 균형의 선이었는지도 모르죠. 잔의 곡선, 거품의 흐름, 색의 깊이, 그 모든 게 그의 그림을 닮아 있거든요.
마르게리트 뒤라스와 와인의 침묵
“와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장이다.” - 마르게리트 뒤라스
프랑스의 작가 뒤라스는 포도주의 ‘침묵하는 깊이’를 사랑했습니다. 그녀가 쓴 문장엔 늘 잔잔한 와인의 숨결이 배어 있었죠. 그녀는 말했습니다.
“와인을 마시는 순간, 나는 침묵하는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
이처럼 와인은 예술가들에게 ‘생각을 풀어내는 통로’였고, ‘마음을 담는 투명한 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오늘 저녁 식탁 위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도 누군가에겐 충분히 예술이 됩니다. 그날의 풍경, 말없이 나눈 눈빛, 혹은 혼자서 바라본 창가의 어스름. 그 모든 순간이 한 편의 작품이니까요.
자, 다음 장에서는 우리가 직접 그 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와인과 음식의 마법 같은 궁합’, 그 궁합의 과학과 감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11장: ‘입 안에서 춤추는 짝꿍들, 와인과 음식의 궁합’이라는 주제에서 와인 한 잔이 단순한 매칭을 넘어.어떻게 요리를 빛나게 만드는지 함께 탐험해 볼 겁니다. 이제 맛의 하모니를 찾아, 와인과 음식이 만나는 그 완벽한 순간으로 여행을 떠나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