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스토리 #1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
‘비행기’ 동요를 불렀던 어린 시절, 나에게도 비행기 타는 날이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그 기억들이 희미하게 사라지기 전 드디어 20대 초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하늘 위를 난다는 설렘과 첫 비행기 탑승 경험의 기억은 모두가 잊지 못할 것이다. 비행기 탑승 전 일주일간 나의 심장은 두근거림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초등학교 시절 사생대회의 경험이 나의 첫 비행기 탑승 전 설렘과 같았다고 말할 수 있다.
‘풍경이나 실물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려 실력을 겨루는 대회’를 사생대회라고 한다. 이런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마냥 야외에 나가서 그림을 그린다는 자체만으로 설레어 스케치북, 물감, 붓 등 준비물을 챙기던 전날 밤은 쉽게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사생대회에서 주로 그렸던 그림은 풍경화, 상상화, 실물화를 그리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잠들기 전 사생대회에서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정확하게 어떤 장소에 도착해서 그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파란 하늘에 봄과 여름 사이의 초록색을 가진 나무들이 있었고 저 너머에는 집들과 전봇대가 눈에 띄었다.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나는 스케치북을 펼치고 한참을 고민했다. 저 멀리 친구들이 서로 “넌 뭘 그릴 거야?”, “산을 그릴 거야!”, ”나무를 그릴까?” 여러 의견들이 들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연필을 들었다. 먼저 스케치한 것은 처음에 보았던 저 너머의 집들과 전봇대 그리고 좁게 보이는 골목길도 함께 그려 넣었다. 그렇게 스케치를 끝나 갈 때쯤 선생님께서 시간이 다 되어가니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
“선생님... 저 아직 채색을 다 못했어요 … “울먹이며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셨고 집에 가서 마저 완성하라며 나를 달래었다. 완성 못한 친구들이 많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거였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오늘 스케치한 스케치북을 꺼내 채색을 하려는 순간 내 눈앞에는 낮에 보았던 그 풍경을 볼 수 없어 어떤 색을 가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물감과 붓을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낮 풍경의 색은 기억나지 않지만 옥상에서 바라본 지금 이 시간의 노을빛과 어둠이 내려가는 색을 담기로 했다. 그렇게 열심히 그리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해졌다.
완성한 그림을 제출하고 며칠 뒤 생각지도 않았던 상을 받았다. 1등은 아니지만 3등이라는 소식에 기분이 너무 좋았지만, 그보다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왜 낮에 스케치를 하고 낮 풍경을 그렸는데 완성된 그림은 저녁일까? “라는 질문에 “낮의 색이 기억나지 않아서 옥상에 올라가 그 시간의 색을 담았어요”라는 대답에 선생님께서는 “넌 그림도 잘 그렸지만 그리는 동안 너의 생각과 고민을 색으로 잘 담아냈구나, 앞으로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면 더 멋지고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야! “라는 칭찬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처음 받아 본 상장과 칭찬의 순간을 잊지 못할뿐더러 내 생각과 고민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화가가 되어야겠다!” 이때부터 화가의 꿈을 안고 살아나갔던 것 같다. 특히, 학교 내 미술활동을 실습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미술실 풍경에 반해 미술 활동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미술 학원처럼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몇 개의 나무 이젤과 의자만으로도 충분했고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미술실만의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그 냄새를 좋아했다.
향기는 한 시절의 정서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일상 속에서 특정한 냄새를 맡으면 과거로 돌아갈 때가 있다. 깨끗하게 빤 실내화를 꺼내 신을 때 비누 냄새에 새 학기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듯이 4B연필을 깎을 때 뿜어 나오는 향긋한 나무 냄새와 도화지에 수채화 물감을 칠했을 때 아련하게 올라오는 물감 냄새를 잊을 수 없다.
마들렌의 냄새, 맛, 감촉 그 후 마냥 행복하고 유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의 상징물이 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에피소드처럼 나에겐 물감과 연필 냄새가 그러했다.
해가지는 풍경, 1913, 에곤 쉴레, 캔버스에 오일, 그림 출처: 오스트리아 관광청
에곤 쉴레의 작품을 생각한다면 모두가 하나같이 뒤틀린 팔다리와 과장되고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몸을 그린 자화상과 누드화로 인간 본성 내부의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운 현실 및 불안을 표현한 작품을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에곤 쉴레의 도시 풍경화 작품들을 더 좋아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중고등학교 때 그린 나의 풍경화를 생각하면 에곤 쉴레가 그렸던 풍경화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나의 풍경화를 보며 하나같이 쓸쓸해 보인다고 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에곤 쉴레의 「해가 지는 풍경」 그림을 보면 내 마음과 같다.
어린 시절 옥상에 올라가 어둠이 내린 동네를 채색할 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불빛만 하나 둘 켜지고 반짝였다. 쉴레의 동네와 같았을까? 어린 나이에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이 쓸쓸하고 외로워서 그림에 녹아내린 것일까? 사실을 말하자면, 풍경화를 그리는 미술시간은 나에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인물을 그리는 것이 무척 괴로웠다. 인물을 잘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네 마을에 사람들을 그려 넣고 싶었지만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사람들을 그려 넣을 때마다 내 눈에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나는 실망했고 기가 죽었다. 인물 그리기를 회피했고 이후로도 비어 있지만 가득 차 있는 땅과 하늘 그리고 건물들, 어디론가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나의 캔버스 속에서 사라졌다. 꽤 긴 시간이었다. 30살까지 인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