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많은얼룩말 May 19. 2022

나는 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1)

첫 번째 질문


나는 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몸이나 마음이 나에게 완전히 토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의(禮誼,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얼마 전부터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불만족 감(感)'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고 마음에게 물었지만, 마음은 내게 쉽게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알아볼 테면 알아보라지.'


마음이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감의 안개가 마음과 생각의 연결지점을 온통 뿌옇게 만들어버렸다. 어쩌면 내 마음의 신호를 내가 놓쳤을 수 있겠다 싶어 몇 가지 점검을 해보기로 했다. 일명, '자가 안녕 점검'.




첫 번째 점검 질문, '충분히 잘 자고 있는가?'


20대의 한 자락에서 나는 잠자는 시간을 종종 아깝다고 느꼈다. 깨어 있는 동안 더 많은 걸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 처리해야 할 일을 하든 말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비교적 시간이 넉넉하고 잠을 적게 자도 힘이 넘치는 한 때에 일던 생각이라는 걸 그때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수면 시간이 짧아질수록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공식이었다. 늘어날 순 있어도 줄지 않는 근무시간에 묶인 직장인으로 7년을 살 땐, 깨어있는 시간은 물론이고 잠자는 시간까지 모두 소중했다. 아무리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어도, 내적 충전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이라도 제대로 가져보자 하면 취침 시간은 곧잘 자정을 넘기곤 했다. 아무리 마음이 잘 회복되어도 몸이 회복되지 않으면 금세 마음이 지쳐버리는 법. 결국 카페인이 줄 수 없는 개운함을 찾기 위해 어떻게든 수면 시간을 늘려보려고 애를 써야 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가 계획한 기상 시간까지 몇 시간을 잘 수 있는지 확인하며 하루는 ‘희(喜)’, 또 다른 하루는 ‘비(悲)’하였던 날들. 뒤돌아보니 늘 잠이 고픈, 피로한 나날이었구나.



결혼 후 나의 수면의 양과 질은 매우 달라졌다. ‘군인’과 ‘전업주부’의 단순한 생활의 결과랄까.


하루를 남자 친구와의 통화로 마무리하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되니 일단 밤 시간이 넉넉해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대부터 잠이 쏟아지곤 하는데, 남편과 나는 굳이 쏟아지는 잠을 거스를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보통 밤 10시경이면 침대 위에 뻗어 눕는다. 아쉬운 마음에 다 하지 못한 대화를 한참 나누다 잠이 들어도 부담이 없는 건 기상 시간까지 여유가 한참 남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린 매일 평균 8시간을 잠을 자는 데 쓴다. 어린 시절 이후로 이렇게 꾸준하게 긴 수면 시간을 가져본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덕분에 남편과 나는 눈을 뜨고 지내는 시간 동안 ‘수면 부족’으로 인해 찾아오는 피로를 모르고 산다(육아로 인해 잠이 부족해질 미래를 위해 미리 잠을 축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충분한 수면 시간에다가 수면의 질은 또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른다. 잠에 들기까지 보통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드는 터라, 휴대폰이나 TV에서 받았던 모든 자극들이 옅어진 채 '깊은 잠 블랙홀'로 쉽게 진입하게 된다. 매일 밤 깜깜한 방에서 홀로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잠들 던 우리의 지난날들과 이별한 지 1년이 넘었으니, 이 정도면 좋은 취침 습관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지.


게다가 신혼집을 꾸미며 우리가 난생처음 구매한 암막 커튼은 우리를 매일 아주 깊은 밤 속에 가둬버린다. 그래서 알람 소리에 놀라 게슴츠레 눈을 떠도, 아침까지 여전한 어둠은 몸이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 못하도록 우리를 붙잡는다.


그럼에도 남편은 출근을 위해 기어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만다. 남편을 뒤따라 일어나면서 아주 가끔 “커튼이 기상 시간에 자동으로 걷힌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투정을 부려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커튼을 걷어내 어둠을 쫓아내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잠은 금세 달아나버린다.


잠은 충분히, 아주 잘 자고 있다. 나의 수면 시간이 ‘자기 불만족 감’을 일으킨 건 분명 아니었다.


‘충분히 잘 자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고, 내 마음은 스핑크스 마냥 내게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5월의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